대학원생의 성장일기 26
벽돌 시리즈 이십 육 번째
예비군 훈련 때 땡볕이 더우니까 아무래도 2시간 정도는 강당에 옹기종기 모여서 정훈교육, 대북 관련한 사상교육을 받는다. 가끔 육사나 나오신 분이 하시는 말씀이 "북한군은 정신력이 뛰어나서 우리 군이 긴장해야 합니다." 음... 안보교육이 물론 굉장히 중요하긴 하지만 여전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 나는 답답하다. 군사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그러니 또 연관된 현상들이 도가 지나쳐 현재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정신력운운과 똥군기다.
일본에 아픈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가 누구보다 정신력을 사랑하니 독립군들 원통하시겠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진주만 공습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쟁은 점차 압도적인 미군의 질과 양을 통해 일본이 점령한 영해와 영공을 점령해 나갔다. 중일전쟁에서 오합지졸 중국 군벌 병사들을 상대로 단맛을 본 일본군은 미군에도 이른바 "반자이 돌격"을 시전 한다. 아무런 보급이나 무력지원 없이 총을 든 미군에게 칼을 들고 혹은 소총에 총검을 꽂아 무작정 돌격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전술 아닌 전술을 펼치게 된 일본은 소위 "야마토 정신 혹은 무사도 정신"으로 양키 놈들이 물질적으론 압도하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야마토 일본민족은 정신력이 강하고 무한하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병사들과 국민들을 자살돌격으로 사지로 몰고 결국엔 오펜하이머를 필두로 과학자들이 제작한 원자폭탄 2방을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맞고서야 항복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독립을 했으나, 36년 일본의 잔재는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았다. 군사교육을 받은 장교들은 일본 만주군에 속해 활동했었거나 일본에서 마련한 교육과정을 받고 자란 세대들도 많았기에 초창기 한국군의 장교와 장군들은 일본군의 영향에 좋든 싫든 어딘가는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여기까지 들어보면 아니 그냥 밀리터리 마니아들이 좋아할법한 이야기잖아?라고 생각하실 수 있다. 이게 사회와 문화에까지 퍼지니 문제인 것이다. 북한의 위협과 군사정부가 들어서며 대한민국 남녀노소 할거 없이 군대생활 또는 상명하복의 문화가 널리 널리 퍼지게 되고 권위적이고 경직적인 문화가 이 정신력 만능주의의 토대에서 자라나게 된다.
옛날이야기이고 지금은 다르다라 생각하지만 천만에. 흔히 노력담론이나 의지를 강조하는 직장상사, 웃어른 심지어 대학교내 선배들의 똥군기 그리고 개그맨의 서열과 집합문화에서 간호사의 태움까지 정신력만능주의와 일본식 군대문화가 여기저기 곳곳에 살아남아 있다. 또 아래 것들이 생각하는 윗분들은 정신력만큼 갈구기 쉬운 주제는 없다. 말을 안 들면 "네가 노력 안 하고 질질 짜고 있으니 그런 거다."라며 이야기하며 자기의 책임도 아래 것에 전가하기 쉬워진다. 정신력, 노력, 의지든 이 다양하게 불리고 모호한 개념은 윗분들, 선배들 입맛에 맞게 골고루 채택된다.
사회의 책임과 문제를 온전히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뭐라 비판하면 어느 순간 사상이 불순한 인간으로 의심되는 것. 숨이 막힌다. 우리나라 자살률과 피폐해지는 정신건강의 다양한 원인 중 하나는 나는 무조건 정신력운운과 군대문화의 부조리가 여전히 발목을 붙잡고 있다 생각하며, 개인에 대한, 개인의 의견에 대한 포용과 피드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생각한다. 모두를 만족시키고 끄덕이게 할 수 있는 만능적 해결법은 없다. 프로불편러니 극단적인 정치적 올바름이니 젠더이슈니 하는 민감한 문제들도 서로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나는 오히려 그렇게 공론화되고 치고받고 싸우니까 해결해 나가는 거지. 아예 문제가 없거나 말이 없는 사회보다 너무너무 좋은 세상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대학교 입학 때가 생각난다. 고3 방학이 끝나기 전 신입생들 모여놓고 선배들이 존댓말로 학교를 소개하는데 방학 끝나고 그 선배를 마주치니 반가운 마음에 웃으며 인사했더니 급 정색을 하며 "너 왜 웃으며 인사하냐? 똑바로 서서 웃지 말고 인사해라"라고 했던 시절이 기억이 난다. 지금 보면 헛웃음이 나오는데 그때 보이는 게 그것뿐이니 거기에 복종하지 않으면 큰일 날 거라 생각하고 대학생활 적응 못하다 보니 오히려 그 괴리감 때문에 더욱 위축이 되고 혼자 학교 다니며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열불 나게 하는 건 똥군기와 권위적인 분위기이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상종도 하고 싶지 않다.
나비효과인지 뭔지 모르지만 사회적으로 경직되다 보니 모임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쉽사리 꺼내지 못하고 꺼내면 책잡히거나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시선의 두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요즘 들어 많이 보고 있다. 그러니 수동적으로 변하고 위에선 갈구고 옆에선 "나댄다"라고 뒷담화하니 사람 미칠 지경이다. 싫다 못해 나는 똥군기가 역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