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텐조 Sep 02. 2024

NON PERPECT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381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삼백 팔십 일 번째



나와 우리 그리고 모든 이가 이상을 바란다. 또 나와 우리 그리고 모든 이에게 조건을 부여한다. 마치 그게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그러나 인간 그 자체가 불완전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면 저절로 겸손해지거니와 많은 부분이 자비로워질 수 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합리화에 능한 나 자신이지만 이것 조차 내가 불완전하기에 그렇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보다 튼튼해진다고 생각해본다.



때론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과 현상이 보인다. 불안하기 때문에 더욱 당당한 척하고, 분노하기 때문에 더욱 차분해지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해지려고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완벽이란 무엇인가? 완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흠결 없음. 과연 정말 흠결 없는 인간이 있을 수 있는 가? 정말 순수 그 자체의 존재로써 살아갈 수 있는가?


태어나서부터 탯줄을 제거하고 걸음마를 뗀 순간, 넘어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실수는 시작된다. 완벽하지 않다. 말도 제대로 할 줄 몰라 "맘마..!마..!"라고 이야기한다. 이 또한 완벽하지 않다. 결국 인간은 실수를 통해 학습하고 만들어 나가는 존재다. 그렇지만 그 끝은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 없다. 완벽을 요구하는 순간부터 고통은 시작된다. 실수하지 말아야지 하는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불안의 요소로 보인다.


삶의 여유를 가진다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을 탈피해서, 자기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흠 없는 인간은 없다. 과거로 갈수록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추상적으로 변하지만 근현대로 올수록 정보의 명확성 그리고 보편성, 확실한 출처 때문에 상당히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한없이 관대하게 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저 X일놈이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아주 오래 전의 인물들, 위인들도 그 나름대로의 결점이 없을 리가 없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자기 자신의 평가도 어떤 결점에 의해 상당히 명확하게 엇갈릴 수 있다. 그게 치명적인 것이라면 용서받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완전함의 인간으로 인식하게 되면 어느 정도의 수동적인 죄책감을 내려놓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스스로 이끌어 낼 수 있다. 아무래도 개개인의 인식과 공인에 대한 인식은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자기 판단하에서는 좀 더 스스로에게 여유를 줄 수 있다.


전쟁사에서도 비슷한 가르침이 있다. 적을 추격하여 승리하는 전략에 있어 솔직히 말하면 속된 말로 숨통을 너무 꽉 조여 탈출구가 없는 패잔병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한다는 고대의 전술처럼, 스스로를 너무 꽉 조이면 나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게 된다. 이런 내가 싫기도 하고 이런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이런 내가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완벽의 허울을 벗어던진다면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나는 결코 완벽해질 수 없다. 내일의 나도 결코 완벽해질 수 없다. 99.9퍼센트까지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해도 100프로는 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것을 황금이라고 부르지 못하는가? 그렇다고 그것이 값어치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이고 감사히 넙죽 받아들여야지(?). 마찬가지로 나 자신도 미량의 불순물처럼 실수와 오류투성이의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존재 자체만으로 존귀하다.


[매일의 짧은 글에서 독자와 저를 위한 일말의 영감,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