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407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사백 칠번째
내가 썼던 글을 한 번 훑어보고 있었다. 어랍쇼? 감정에 대한 중요성을 서술한 글이 곳곳에 보였다. 그런데 이성에 대해서는 어쩌다 감정을 부각시키려다, 이성을 마치 소홀히 하거나 필요가 없는 것으로 이야기 하는 것처럼 착각하실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쓰는 일기는 내가 뭐 어떻게 쓰든 나만 알고 있으니 굳이 그것에 대해 재차 쓸 필요가 없겠지만 불특정 다수가 보는 현장에서(그렇게까지 해명자료처럼 낼 필요는 없을지라도) 감정도 중요하고 이성에 대한 중요성도 짚어보면 좋겠다 싶었다.
초창기 글에서 인간의 감정을 이해못하는 SF창작물의 "스팍"이란 외계인 동료처럼 이성에 대한 환상 그리고 이성이 모든 것이 아님을 이야기했다. 이성이 모든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결국 원초적으로 따지면 "인간을 고등생물 답게" 만드는 것이 이성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마쪽에 가까운 전두엽(파란부분)과 공포를 관장하는 편도체(초록색 부분의 측두엽 안쪽)가 딱보기에도 위 아래 차이가 있다.
지구의 내핵이 편도체라면 우리가 밟고 있는 지구의 땅은 전두엽인 것처럼 인간의 진화과정에 따라 편도체,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안쪽 부위부터 켭켭히 쌓여 뇌의 영역도 증가하게 된 것이다. 흔히 이성을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거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이성이 가진 힘이라고 말한다. 감정대로 행동한다 상상해보자. 욕망이라는 말을 이성이라는 고삐로 통제하지 못하면 이리저리 날뛰게 되고 기수는 크게 다칠 수 있다.
감정은 집단의 사회생활에서 소통과 자극으로 비롯된 영감을 극대화 할수 있는 방향으로 쓰일 수 있다. 하지만 감정대로 혹은 솔직하고 자유로운 감정을 핑계로 살아가다 보면 광기와 색안경을 낀 편견또한 자라날수 있는 양면적인 현장을 제공한다. 그래서 안전장치로 이성이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분노라는 감정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한번 더 상상해보자. 분노를 투사하기 위해 대단히 스스로 통제하기 어렵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려 하지만 이성이라는 장치가 분노를 절제시킨다.
현재 나의 상황을 제대로(스스로든, 외부의 기준이든) 판단하고 있는지, 그리고 현재 나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이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는지 조율하게끔 한다. 이론적으로는 전두엽이 고등영역이니 만큼 계획과 언어, 통제라는 측면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구분하기 쉬운 분류인 것이고 뇌는 독립적인 부위들의 집합이 아니고 그냥 뇌라는 한 장기 안에서 어떤 위치는 어떻게 특화되어 있다 하는 것이며, 쉽게 서로 연결된 실끼리 끊임없이 뭉치게 되어 한 덩어리로 보이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뇌의 한 부위가 망가지면 다른 부위가 손상된 부위를 대신하여 자극으로 들어온 정보를 처리하게 된다. 단적인 예로 헬렌켈러는 시각도 청각도 그리고 말도 할수 없는 장애인이였지만 촉감을 통해 정보를 처리해 학습하고 사람들과 소통할수 있었다. 감정과 함께하는 이성은 고등적인 언어적 사고와 지각을 통해 감정을 통제하는 역할로 인간이 단순히 오늘만 살아가는 역할로써의 한계를 벗어나게 하는 중요한 축이다.
이성이 주관성과 반대되는 객관성에 비추어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결국 나와 환경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해본다거나 이게 맞는지 아닌지 따지는 것. 실제 현장에 적용해보면 우울한 사람이 계속 우울한 상태로 일상을 보내는 것은 지속적인 감정에 젖어 지내기 때문이다. 여기서 탈피하여 이성은 무언가 새로운 지각과 인식을 하기 위해 다른 정보에 대한 유무와 그것에 대해 재고해볼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