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462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사백 육십 이번째
역사에 대해 관심 없는 사람들 그리고 겉핡기로만 아는 나 같은 사람들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전자는 민주국가, 스파르타는 대치동에서 많이 보게되는 아니.. 빡센 군사국가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나는 최근에 찾아보기 전까지 기원전의 패권전쟁을 하나의 사건으로만 생각하고 관심있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더 확장 해보면 아테네는 해양국가, 스파르타는 육지국가라는 편견도 가지고 있었다.
기원전 5세기경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이들 지중해와 발칸반도쪽의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연합해서 서로간의 힘 겨루기를 했던 사건을 말한다. 전에 앞서 일어났던 제국이었던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그리스 동맹으로 묶였던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사이가 좋았다가 페르시아가 패배하고 물러나자 이견차가 발생한다. 그리고 얼마 못가서 둘은 완전히 갈라지게 된다.
신경전을 벌이던 아테네와 동맹 도시국가들 VS 스파르타와 동맹 도시국가들의 체제로 들어서게 되었다. 하나의 목표아래 단결 하게 해주었던 페르시아가 물러나자 계산기를 다시 두드리며 경쟁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 주제를 들고 오게 된 이유는 과거 우리나라와 북한의 아프리카 외교전을 보듯 이미 기원전에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보였다는 것이다. 흔히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스파르타의 몰락까지 단순화 하기에는 정치역학적인 요소들이 많이 숨겨져 있다.
스파르타가 대단한 군사강국처럼 보이지만 아테네에게 육상과 해상 모두 초반에 깨지는 바람에 그들의 콧대높은 자존심을 내려놓으며 전략적인 노선변경을 해야했다. 아테네는 팽창주의를 지향하며 어느새 갑질을 하려들자 동맹 도시국가들에게 반감을 사고 스파르타는 노빠꾸 상남자처럼 대하던 과거와는 달리 한때 창칼을 겨누던 페르시아에게 물밑접촉을 시도하고 다른 도시국가들을 포섭하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아테네의 몰락은 팽창주의적 노선과 주변 국가들은 배려하지 않은 거만한 외교술이 전술에 패배했던 스파르타에게 전략적으로 대폭망하고 말았다. 결국 아테네는 신변보장을 받은 채 인수분해 수준으로 정치 군사적으로 종속 당해야 했다. 그리스동맹의 맹주였던 아테네가 무너지자 스파르타가 주인이 되었다. 하지만 스파르타도 오래가지 못했다.
문제는 유지력이었다. 그리고 한 때 적이었던 아테네와 똑같이 콧대가 다시 높아지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역사의 큰 흐름에서 추상적으로 보일 만한 한 국가의 태도나 관점을 가볍게 생각할 지는 모르지만, 문제는 그 태도라는 것이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와 정치가들의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기에 이들의 태도가 곧 국가의 태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요소를 가볍게 여기고 논 할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튼 스파르타는 다수의 노예를 부려가며 유지하는 군사국가 체제였으므로 소수의 상류층과 군인들 아래의 노예들 대다수가 괴롭힘과 양아치질에 시달리며 조공과 농산물을 바치며 그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이런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승리한 스파르타가 외교적인 실책을 거듭하고 당시 최고 수준의 전투능력을 자랑하는 스파르타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내리갈굼을 계속하자 결국엔 아테네는 다시 몸집을 불려가며 정상외교를 시도하며 번영을 위해 나아갔지만 스파르타는 혹독한 국내외 관리 스킬때문에 자멸하게 되었다.
이 역사를 통해 하나의 국가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고 외교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