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벌과 황제의 차이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537

by 포텐조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오백 삼십 칠 번째



zq-lee-wBiRh5_CQ2U-unsplash.jpg

중국에 대해 우리는 양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큰 시장이니 무시할 순 없지만 한편으론 한복과 김치 그리고 발해의 역사까지 동북공정으로 접근해오고 있는 중국을 보면 한국인으로써 당연히 부정적인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삼국지를 재미나게 바라보듯이 중국 역사에서 스케일이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교훈으로 삼을 만한 기나긴 서사들을 찾아 볼 수 있다.



A_Seated_Portrait_of_Ming_Emperor_Taizu.jpg

명나라. 명나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 가? 세계사를 공부하면 청나라 직전의 나라!, 임진왜란 때 똥볼을 찼던 나라! 등으로 생각하곤 한다. 원나라의 지배와 분열의 역사 속에 대명이라는 이름으로 제국으로 통일한 "주원장"은 가히 세계사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자수성가의 끝판왕이다. 중동의 많은 산유국들이 군벌이었다가 대박을 터뜨린 건 어디까지나 자원의 행운이 있었던 것만큼 주원장은 본인의 노력과 능력으로 황제가 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본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가족 구성원이 기근과 전염병으로 모두 사망하는 바람에 절망적인 홀로서기를 해야만 했다. 유일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탁발승려가 되는 것이었고, 탁발승이라지만 이때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떠돌이 노숙자였던 셈이다. 이때의 트라우마는 황제가 되어서도 잊지 않았다. 항상 밥을 빌어먹고 살아야 했던 그는 농민반란 군벌 중 한 명이었던 곽자흥의 홍건적 무리에 25살에 들어가 활약을 하게 된다.



jeshoots-com-fzOITuS1DIQ-unsplash.jpg

시간이 흘러 곽자흥의 무리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주원장은 몇십 명의 수하들만을 데리고 혼란기의 군벌 세력들을 하나둘씩 정리해 나가며 몸집을 불려 나간다. 이때 그는 굉장히 혹독한 군기를 확립했다. 이는 다른 무리들은 주민들을 약탈한다거나 횡포를 부리는 반면에 주원장의 무리는 정규군 못지않은 체계와 대민사업을 통해 민심을 사로잡아 나갔다.


원나라의 군대와 싸우더라도 그들을 살려 보내어 반격을 누그러뜨리며 최대한 전력을 보존하려 했고, 사대부들을 기용해서 내치를 위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듣는 귀"가 그에게 있었다. 무엇보다 주원장이 황제가 되는 데에 결정적인 요소는 "전략"에 있었다. 이는 고대사, 현대사 할 것 없이 계속 증명된 군주 된 자들의 자질로써 다른 세력들은 지금 당장의 문제해결이나 부귀영화를 위해서 움직였다면 주원장은 그 나름의 대의를 가지고 움직이고 꾸준히 힘을 쌓아나갔다(마오쩌둥이 주원장을 언급한 것을 보면 분명 그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전략적 안목은 칭기즈칸의 후예인 원나라를 북쪽으로 밀어버리고, 명제국의 최초의 황제 "홍무제"가 되는 데 기여했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

keyword
이전 19화굴욕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