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을 향하여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536

by 포텐조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오백 삼십 육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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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 갈수록 어쩌면 아집의 근원이 되기도 하는 "체면". 우리는 체면을 중요시한다. 어떤 사람은 귀를 닫고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한다. 자기가 틀렸음을 인정한다 생각하기에 체면의 문제로 거부하곤 한다.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또 하나의 경우는 틀림을 넘어 그것이 낯설며 다른 것이 무섭기 때문이다. 그간의 경험들을 다시 재설정하는 작업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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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위치가 낮다고 인식하는 사람은 무슨 짓을 해봤자 그는 잃을 게 없다 여기지만, 스스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갑자기 훅 떨어진다 생각하면 끔찍해한다. 그간 부유하고 여유로운 상태가 뒤바뀌는 것. 자기 오류에 대해서 틀림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자존감이 낮은 건 정말로 아이러니다. 자기가 맞다는 것을 지키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빼앗기는 것과 제대로 정의하지도 못할 체면이란 녀석이 자리 잡고 있다.


"추태를 부리시네 증말" 나이 먹은 사람이 그 나이대와 달리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면 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현인은 때론 추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는 굴욕을 향하여 오른다. 굴욕을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없지만 커다란 마음을 가지고 굴욕을 받아들인다. 수치스럽고 너무나도 굴욕적인 상황이 닥치면 자다가도 정신이 번쩍 뜨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경험을 통해 익어간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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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학생은 모두 다 굴욕감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치고 모르는 사람은 아는 사람에게 배워야 하니 굴욕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마땅히 배우고 있는 입장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나이도 그렇고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거나 그것도 아니면 자기가 조건부로 걸어놓은 상태에 올라간 사람들은 굴욕은 때로는 배움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교육과 자존심의 상처는 분명 다르긴 하다. 그런데 대체 그 자존심은 얼마나 완벽한지 묻고 싶을 뿐이다. 결국 모든 사람은 완벽해지려 하지만 불완전한 자존심에 의해 매번 눈이 멀어진다. 그 자존심은 결코 완벽해질 수 없을 것이다. 반드시 꺾이는 순간이 오고 반드시 손상되는 순간이 온다. 인격을 거의 완성하려는 사람은 굴욕조차 배움이라 생각하기에 굴욕을 향하여 오른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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