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632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육백 삼십 이 번째
걱정하지 말라? 걱정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 멈추질 않으니까 그게 문제인 거지. 걱정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걱정한다. 비슷한 부정적인 감정들도 마찬가지로 하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한데 계속 떠오르니까 문제가 된다. 한편, 준비는 하면 할수록 좋다는 게 누구나 동의하는 생각일 것이다. 무언가를 대비 혹은 예비는 그것을 마주쳤을 때의 충격을 덜 받거나 때에 맞게 반응할 수 있게 끔 정리했다는 뜻이므로 예비해서 나빠질 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예단의 경우는 다르다. 미리 준비하는 것과 미리 단정 짓는 것. 예비와 예단이 어떤지 문장에서 느껴지시는가? 어떤 경우가 있을 거라 판단하고 그것에 맞게 준비를 하는 경우는 100%는 아니지만 대부분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는 여지를 가진 채 움직이는 편이다. 준비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성실하거나 부지런하다고 생각하는 데, 성실하거나 부지런하려면 심리적인 힘과 컨디션이 초록불인채로 움직여야 그 이미지에 부합한다.
미리 단정 짓는 것인 예단의 경우는 준비와는 비슷하면서 끝이 다른 경우다. 어떤 경우가 있을 거라 판단하는 것은 똑같다. 그런데 거기에만 매몰되다 보니 후속조치를 하지 않거나 준비를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머리만 싸맨 채 온전히 당하려고 있는 모양새가 된다. 그리고 실제로 크기가 예상만큼 크든 작든 당하는 건 매 한 가지다. 이 경우엔 사람은 무력감을 느끼기가 쉽고 예단의 악순환에 갇혀지내기가 쉬워진다. 다시 예단하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위안이 된다.
나는 지나친 걱정을 하는 편이며 예단하기 쉬운 스타일이다. 예비하는 사람은 통제감이 있는 반면에 예단하는 사람은 통제감이 결여된 무력감을 느끼기 쉽다. 어떤 스타일이라도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지만 예비하게 되면 자의적인 안정감을 만들어낸다. 반대로 예단하게 되면 커다란 걱정에 대처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예단이 주는 함정에 자주 걸려 넘어진다.
이 둘이 갈라지는 결정적인 포인트는 사건에 대한 판단도 판단이지만, 판단에 대한 획일화를 하면서 사건에 대한 두 번째 스텝이든 다음 스텝을 밟지 않는, 얼어버리는 동결반응(freeze response)을 보이면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생겨버린다. 판단이 파국적이어도 "끔찍하니까 빨리!"라 생각하며 예단하면서 예비하는 경우도 있지만 예단만 하는 경우는 예단에서만 끝이나서 일말의 가능성조차 묻어버린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