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25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25화 / 3장 여정의 시작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25화 / 3장 여정의 시작


3장로이딘루트.jpg 크리넬에서 헤르논으로 (로이딘 일행)


헤르논, 과거 상단의 무역 거점 중 하나였던 도시국가. 도시의 명성을 부정할 자는 없을 정도로 티쿠아린에서 손에 꼽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번영했던 곳 중 하나였다. 몇 일이면 아보테와 북쪽 왕국들의 권세가들 식탁에 올리브와 체리가 상하지 않은 채로 올라갈 정도로 도로망도 잘 정비되어 있었던 "피데인티 코차", 여명의 도시란 이명을 가지고 있었던 도시. 하지만 백야의 밤이 지나고 영원한 추위가 몰아닥친 후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 영광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히 황폐해졌다. 성벽마저도 무너져 내려 도시 내지는 넓은 마을이 유지가 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했다.


로이딘 일행의 눈에 보이는 좌우로 늘어선 매달린 시체 그리고 죽은 나무들은 피데인티 코차라는 이름이 있었는지도 의심해야 할 것 같은 충격적인 광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돌판으로 다진 도로들은 군데군데 심하게 깨져있었고 앙상하게 죽어버린 숲과 썩고 얼기를 반복하는 땅, 맨들맨들한 시든 풀들이 헤르논의 현 주소였다. 도시국가의 지배하에 활동하는 작은 마을들도 크리네스보다 심각하게 줄어들어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존재했으며 마을 사람들은 누더기를 입고 앙상한 나무처럼 삐쩍 마르고 독기만 남은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들에게 해방이란 오로지 죽음 뿐이었고 과거의 기억마저도 사치로 전락했다.


로이딘은 갑자기 들이닥친 끔찍한 풍경에 얼굴이 하얘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크리네스 땅을 달리고 있었는데 공기가 달라지고 풍경이 달라지고 하늘이 달라졌다. 이 또한 마법인 것일까?

"그렇지, 마법이야. 경계석이 갑자기 보일리가 없잖아"

"마법이라고? 세상에, 눈 앞에 시체들이 떼거지로 매달린 게?"

로이딘의 물음에 시테온이 갑자기 말을 옆으로 몰며 루네와 로이딘 뒤를 지나치며 손을 뻗으며 짚었다.

"눈치 좀 챙겨라, 우리 말 발굽이 여기서부터 이어지잖아. 피데라? 약간의 그의 배려가 아닐까 싶은 데"

또한 뒤를 보자하니 그들이 방금 전 달려올 때 보았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꺾여지는 숲도 없었고 바위산도 없었다. 로이딘은 대면하면 물어볼 게 하나 더 생겼다. 하지만 그건 곁다리의 화두일 뿐. 긴장이 풀린건지 아니면 익숙해진 건지 스멀스멀 이 어두운 땅의 역한 냄새가 풍겨왔다.


로이딘은 비위가 상해 헛구역질을 해서 눈물을 흘렀다. 루네도 동물을 잡고 다루는 데 익숙함에도 쉽지 않은 모양새였고 오히려 시테온이 별 반응이 없었다. 루네가 각자의 반응을 살피다가 시테온에게 물었다.

"어우, 너 괜찮은 거야 아니면 기절해버린거야?"

시테온은 동물의 내장을 가지고 점궤를 돕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며 태연하다는듯이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며 답했다. 그는 텝 오부자의 마법을 부리기 위해서는 그 만한 수고를 해야한다는 일장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화만 하고 더 이상 있을 수는 없었다. 옆으로 새자니 늪이 있는 것 같아 이 시체나무들 사이 도로를 뚫고 지나가야 했다. 박차를 가해, 루네가 팔등으로 코를 막으며 몸을 앞으로 숙인 채 달렸다. 여장부를 뒤따라가는 로이딘은 코를 계속 막았고 시테온은 냄새를 즐기며 달렸다.


다만 눈에 보이는 풍경은 버티지를 못하겠는 지 앞만을 보고 달렸다. 간혹 보이는 시체들은 얼마 되지 않은 시체들과 오래된 시체들이 뒤섞여 있어, 아마 닥치는 대로 빈 공간이 있으면 매달았던 것으로 보였다. 얼마되지 않은 시체들은 혀가 튀어나왔고 감긴 목은 보라색 혹은 검은색으로 번져 있었다. 이들 시체에 걸린 "불경죄"가 쓰인 나무판을 돌려쓰는 모양인지 반쯤 썩어있거나 지저분한 것들이 번져 딱딱히 굳어있었다. 반면 오래된 시체들은 백골이 되어 매달린 지 얼마나 되었나 싶었고 살점이 녹아내려 목에 달린 밧줄은 헐렁했다. 살에서 흙으로. 그러나 그들에게 씌인 낙인 "불경죄"는 그대로 걸려 있었다. 시테온은 점차 눈 앞에 보이는 시체의 자세한 면모를 보면서 미간을 찌뿌렸다.


몇 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찰나지만 끔찍한 죽음의 풍경 속을 벗어나게 되었다. 도로는 이어져 있었고 시체가 걸린 나무에서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나무로 바뀌어져 갔다. 숨을 잠시 참았던 건지 로이딘이 거친 숨을 몰아댔다. 그래봤자 분명 도중에 썩은 냄새를 맡으며 수많은 호흡을 할 수 밖에 없었을테지만. 시테온이 막 벗어나면서 입을 뗐다.

"테오메자시여 저들의 영혼을 만지소서"

그는 이마를 만졌다. 루네도 이마를 긁었는 데 그녀는 가려워서 긁고 있었다. 코만 계속 막느라 닥치는 티끌과 바람을 그대로 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물었다.

"저렇게 난리가 났는데 신전이 있긴 있을 까? 온 세상 사람 다 매달린 것 같단 말이지"

"그럴지도, 사제도 매달렸을지도 몰라. 뭔 일일까 대체?"

로이딘은 맞장구를 쳤다. 점차 저 멀리 보이는 피데인티 코차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황량하고 음산한 대지에 생기를 잃은 도시.


분명 사정이 크리네스보다 훨씬 좋지 않을 게 눈에 뻔했다. 루네가 정확히는 헤르논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헤르논 북쪽 지방의 마을 중 한 곳에서 살았다 이야기를 했고 그곳에서 크리네스로 피난을 왔기 때문이다. 그녀도 이곳 사정을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방금 전 풍경과 눈 앞에 그들을 기다리는 도시를 보아하니 답이 내려진 듯 했다. 헤르논에 발을 들여놨어도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던 루네가 말했다.

"어차피 박살이 났는 데 더 박살이 난 모양이네. 예전에 봤을 때랑 너무 달라"

"예전이 언제였는데"

로이딘이 물었다.


"오래 전. 꼬맹이일 때 말야"

그녀는 계속 헤르논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최근엔 불똥이 튀었어. 우리 마을에도. 저 망할 도시에서 바람이 한번 불었거든. 광기가."

"무슨 광기?" 로이딘이 물었다.

"뭐라 하더라, 이그네움이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있단 개소리?"

로이딘은 순간 자기를 겨냥한 이야기인줄 알고 놀랬다.

"지금도 헷갈리긴 하는 데 아보 쪽인건지, 피데라쪽 인건지 미친 놈 한 명이 기적을 베풀고 있다 하더라고"

그 소릴 들은 시테온이 루네에게 물었다.

"사이비 말하는거야?"

루네가 끄덕이며 답했다.

"응, 그 놈때문에 마을마다 갈등이 좀 있었거든? 아직 살아있나 모르겠네"

로이딘은 사냥할 때 외에는 보기 힘들었던, 냉정함을 넘어선 날카로운 루네의 눈빛을 간만에 보게되었다. 왠지 그 작자를 보게 된다면 활 시위를 여러 번 당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26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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