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26화 / 3장 여정의 시작
장편소설 빛의 여정 26화 / 3장 여정의 시작
눈을 씻고 찾아봐도 조각이 보이지 않자 화가 끝까지 나버린 네이즈는 호위병들에게 당장 아나티리캄의 검은 비둘기를 데려오라 명했다. 티쿠아린 대륙의 극소수 귀족이나 지배자들은 비범한 지능을 물려받고 고도로 훈련된 새들을 키워냈는데, 아나티리캄에서 예민하게 통제할 정도로 쉽게 사육을 못 시키는 "검은 비둘기"는 비둘기 집배원 역할을 가장 잘 해내는 조류였다. 보통의 전서구 같으면 매나 독수리에게 잡아 먹히거나 험난한 환경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반면에 검은 비둘기는 대륙의 양 극단을 오고 갈 정도로 체력이 좋으며 사육자의 체취가 강하게 묻어있는 곳이 어디라면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해서 메시지를 쌍방으로 주고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영리한 조류들은 여기에 마법이 더 해진다면 더욱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었다.
네이즈는 사람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주저앉거나 눈을 어루만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에는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골똘히 어딘가를 쳐다보며 비둘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에서 비둘기가 새장에 갇힌 채로 들려 오자 자기는 돌바닥을 한 번 쓸고는 양피지 조각을 꺼내고 그를 계속 보좌하고 있는 사제에게는 펜과 잉크를 달라 했다. 즉석에서 잉크와 펜 그리고 비둘기와 양피지가 바닥에 놓이자, 네이즈는 급히 양피지에 펜을 들고 편지를 썼다. 편지의 수신자는 다름아닌 크리넬의 족장, 크리네스의 장로인 크리네스 4세였다. 일이 터져버렸으니 일정대로 진행되지 못하므로 편지를 받는 즉시 경비대를 빨리 끌고 사람들을 데리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내일 오후 혹은 모레가 되어서야 끝날 일이 지금 당장 끝나게 되었으니.
옆에서 지켜본 호위대장은 침대마냥 드러누웠던 아까의 흔적을 털어내기 위해 열심히도 팔을 움직였다가 다시 검자루를 잡으면서 말을 했다.
"계약 위반이 되는 겁니까?"
네이즈는 말이 없었다. 호위대장이 머쓱해질 때 쯤에서야 답장을 했다.
"계약 위반인 동시에, 이들에게 의무가 주어진 것이오"
편지를 다 쓰고 손으로 돌돌 말던 네이즈가 고개를 돌려 호위대장에게 말했다.
"크리넬에 있는 사람이란 사람은 모두 나서서 도망친 그 놈을 살아있든 죽어있든 내게 데리고 와야 할 것이오, 그게 의무요."
가만히 듣고 있던 호위대장이 화두를 돌려 보고할 것이 있다 말했다.
"이미 도착해있던 사제분들이 타고 오신 말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놈들이 훔쳐 달아난 것 같습니다." 이때 말 끝을 살짝 흐리며 소리를 줄이더니 이어서 말했다.
"다행히 저희가 타고온 말들은 반대 방향에 묶여있어 못 보았는지 문제가 없었습니다"
네이즈가 호위대장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시선이 난감한 호위대장은 말을 실수했는 지 얼굴이 붉어질려 할 때 이번에도 한 박자 늦게 네이즈가 입을 뗐다.
"그건 알겠소. 일단 크리넬의 일은 족장이 편지를 받는 대로 처리하도록 하고... 우리 일은 굉장히 난감한 상황이오. 사제들이 시퍼렇게 눈 뜨고 보고 있을 때 조각을 잃어버리기까지 했으니."
네이즈는 지난 핏빛 늑대 야습사건으로 6명의 호위병을 잃은 것과 조각을 잃어버린 것까지 첨가해서 호위대장을 이해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제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네이즈에게 호위대장은 귀를 기울였다.
한편, 데센과 7명의 사제들은 두 눈을 닦아내며 불경한 마법을 탓하고 있었다. 데센이 지팡이로 바닥을 두어번 내리찍더니 짜증을 냈다.
"천한 것이 같잖은 마법을 부리고 도망을 갔구나!"
돌을 선별할 기분이 당장 나질 않으니 네이즈와 대화부터 해야 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사람들이 들고오는 돌을 선별하려하다가 데센이 중지하라고 하자 동행한 사제들은 사람들을 돌아가라 말하면서 자신들도 잠시 숨을 골랐다. 데센은 똑똑히 봤다. 그리고 그와 동행한 사제들도 똑똑히 봤다.
"폐하가 주신 조각은 괜찮소?"
네이즈가 깊은 한숨을 내시며 눈을 감으며 말했다.
"아니오. 모두 가져가버렸습니다. 우리가 쓰러질 때 가지고 도망갔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동반자 2명도 포함이구요"
"아니 그럼 대체 어떻게 하실 거요?" 데센이 말했다.
"찾아야죠, 찾아서 산 채로 불태워버려야겠지요. 그리고 조각을 회수하고 그놈이 가지고 있던 조각도 받아내야 겠습니다"
데센이 지팡이를 만지작 거리며 무언가 측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이즈는 그의 표정을 모른 척 해 하며 말했다.
"선별하신 돌들은 보호령 교단에서 정제토록 하겠습니다. 또한 조각을 찾는 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네이즈에게 일이 종료되었음을 들은 데센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노구의 몸으로 이곳까지 오게 한 네이즈가 굉장히 건방진 녀석이라 생각했으나 더 이상 볼 일이 없어졌고 돌아가서 젋은 애인을 볼 생각에 기운이 차려지는 것 같았다. 반대로 네이즈도 데센을 바라보면서 추잡한 늙은이라 속으로 욕을 하면서 가증스런 가식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마음이 그나마의 위안이 되었다.
"일단 정리는 여기까지 하고 저희와 함께 내일 출발하도록 하죠" 네이즈는 앞서 말들이 도난 당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값비싼 자기 말이 사라진 데센이 노발대발하는 모습이 꽤나 흥겨워서 즐기고 있었다. 입을 닫고 바라만 보던 사제 몇 명도 화를 내는 모습이 꽤나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 안장과 마구는 덤이었다.
네이즈, 아보의 사제들과 한 공간에 마주 서 있던 크리네스의 44명의 남은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잠시나마 로이딘의 동료가 되었던 자가베는 어리 둥절 해 하며 일이 끝났다는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아직도 돌은 천지에 널려있는 데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만 해도 된다하니 자기들로써도 좋은 일이긴 했다. 방금 전에 눈이 멀어졌던 상황과 같은 무리에 속해있던 사라진 3명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각자 지겹게 들고다니던 돌과 저질 천쪼가리와 가죽조각을 내려놓고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들을 나누며 왁자지껄 해졌다. 그 3명이 누구였는지, 왜 도망갔는지 온갖 추측을 하고 있었다.
호위병들도 들고 있던 할버드를 잠깐 옆에 세워놓고 볼 일을 보러간다거나 어디 앉아 쉬는 등 풀어진 모습을 보였다.
잠시 후, 만신전 입구에서 날아오른 검은 비둘기가 날개를 펼치며 발에 매단 쪽지와 함께 크리네스로 향하고 있었다. 하늘은 침침했고 공기는 차가웠다. 변덕스러운 영원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검은 비둘기의 모습은 사뭇 용맹해보였다.
27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