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침략 후 내전 발생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772

by 포텐조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칠백 칠십 이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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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일 순 있지만 그럼에도 일본 내전의 단초를 제공해 준 건 바로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 덕분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통일을 이룬 직후의 상황은 칼은 갈았는데 쓸 곳은 당장 안 보이고 벼르고만 있던 5분 대기조와 같은 상황이었다. 도요토미는 이를 지렛대 삼아 자신의 야욕이 담긴 명나라 정복을 위해 임진년에 난을 일으켰다. 중간에 끼어있는 조선이라는 나라는 정복해야 할 땅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명으로 가는 통로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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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7년간의 전쟁은 도무지 조선이란 늪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었고, 한 살 한 살 나이만 먹어가며 몸이 쇠약해지는 도요토미는 부하들의 전공 다툼으로, 잘라낸 조선인의 귀와 코가 담긴 상자만 계속 받아들고 있을 뿐이었다. 아들인 히데요리는 너무나 어렸다. 왜란이 터진 후 1년 뒤에 출생한 적자라서 도요토미는 계속 살아남아 있어야 했으나 막혀버린 조선의 통로는 열린 가능성이 안 보였고 히데요시는 죽어버린다.


이후 전군 후퇴명령을 받고 되돌아온, 조선에 있던 영주들과 병사들은 눈치게임을 시작해야 했다. 도요토미 가문의 남겨진 어린 아이를 섭정이 되어서 등에 업은 채 기존 정권에 힘을 보탤 것인가? 아니면 눈 앞에 있는 발톱을 숨기고 있던 최대의 라이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밑으로 들어갈 것인가? 이를 동군과 서군으로 나누는 데, 동군은 도쿠가와가 있던 에도(도쿄)를 중심으로, 서군은 도요토미가 있던 교토를 중심으로 뭉쳤다.



1280px-Sekigaharascreen.jpg 운명의 세키가하라

이시다 미츠나리는 도요토미 정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세력 규합을 아무리 해봤자 흐지부지했다. 도쿠가와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였던 지라 조선에 출병했던 영주들을 포섭하는 여러 계략을 펼치기도 했다. 결국 이들의 갈등은 필연적으로 부딪혀 누구 하나가 쓰러져야 끝이 나야만 했었고 그 절정이 도요토미의 조선 침략이 오히려 자업자득이 되어버리고 도쿠가와에겐 천하통일의 꿈을 안겨다 준 세키가하라 전투다.


모리와 이시다라는 두 거물이 지휘하는 서군은 동군과 비교하여 체급에서 크게 문제될 게 없었지만 내부적으로 불안정한 요소가 많았다. 한 인물이 아닌 두 인물이 전장을 지휘하고, 뒤 따라가는 협력 영주들도 각자 주판을 두들기며 적당히 싸우다 빠지거나 여차하면 아예 도쿠가와에게 붙을 생각까지 하고 있었던 다소 막장의 상황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참패를 당한 서군의 영주들은 도쿠가와에게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거나 숙청을 당해야만 했다. 히데요시의 적자인 히데요리도 어린 나이에 오사카성 전투에서 패전하여 살해당했다.


그래서 일본통일을 이룬 지 얼마 안되었던 히데요시는 가능성 없는 전쟁을 일으켜 자신의 힘과 명분을 잃어가다 죽었고 그의 친척들이 고스란히 자업자득으로 돌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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