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예쁜 것을 너에게 줄게~34
딸아~
느낄 수 있니?
세상의 빛깔이 달라졌음을.
우리 딸이 중간고사 준비하는 사이
온 세상이 달라졌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가 끝나고,
어느새 긴 옷을 덧입게 되었구나.
어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오다니!
시간이 부족하기만 한 엄마는 환한 빛을 더 묶어두고 싶다.
가는 계절이 아쉽기만 하고,
시간의 속도가 야속하지만,
이것은 엄마 욕심이겠지?
우리 딸을 위해서는 빨리 시간이 흐르기를 기도해야겠지?
시험이 끝나고 체육대회 다녀오며
세상 빛의 변화를 딸이 직접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갑작스러운 색의 변화는 다음번 계절도 대기 중임을 예고하는 것일까 봐 걱정이 돼.
우리 딸이 혹여 놓쳤을 가을을 엄마의 시선으로 전해본다.
아빠랑 산책하다가 새로 생긴 도서관을 발견했어.
지도 앱에서만 보던 도서관 위치를 확인했으니 들어가 보았어.
도서관 입구에 이렇게 귀여운 가을 풍경이 꾸며져 있었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 뒤 게시판 장식하면 딱 좋겠지?
가을을 상징하는 것들이야.
밖에 나가 가을을 만끽할 수 없으니,
가을 시그니처들이라도 딸 마음에 넣어보렴.
어린 우리 딸은 이런 아기자기한 것을 그리고 접는 것을 좋아했었지.
딸의 작품집을 여태 가지고 있다가
이사하며 정리한 것이 못내 아쉽다.
엄마가 진작 기록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짐이 되지 않고 산뜻하게 영구 보존할 수 있었을 텐데.
퇴근길에 떨어진 감을 발견했어.
마침 핑크 의자에 안착했네.
엄마가 연출하기 위해 올려놓은 것 아니야.
진짜 의자 위에 있었어.
기억하니?
지난번 정체를 알 수 없어 엄마에게 해부당했던 초록 감을?
다 자라지 않은 열매들은 초록초록해서 정체를 알 수 없어.
각자의 색깔을 내며 무르익어야 드디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열매들.
딸도 언젠간 딸만의 빛깔 내기를 희망했던 초록 감.
초록 감이 드디어 제 빛깔을 찾았구나.
이제는 다른 열매와 확실히 구분된다.
초록 감은 꼭지도 없었는데, 주홍 감은 꼭지도 멋지게 달았구나.
곧 펼쳐질 우리 딸의 모습과 생활이야.
초록 감일 때는 나무에 매달렸을 때조차 감인지 의심스러웠는데,
이제는 확실히 감나무가 감나무로 보인다.
시간이 초록 감을 주홍 감으로 만들어 주었어.
정체성을 알 수 없던 열매가 제 빛깔을 찾아
가을을 알려주는 역할도 하게 되었구나.
감나무 옆에는 석류나무도 있다.
여름에도 나무는 있었을 텐데, 석류나무인 줄은 전혀 몰랐다.
짜잔 나타나서 석류나무의 정체성을 밝혀주는 석류 열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는 것까지 증명하는 역할을 맡았구나.
우리 딸의 시간도 흐른다.
걱정 마.
우리 딸의 빛깔 찾을 거야.
우리 딸의 역할해낼 거야.
주홍 감처럼. 붉은 석류처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빛을 낼 우리 딸의 미래를 엄마 믿는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포스터도 발견했어.
詩月詩日 시 낭송의 밤.
10월 10일에 시를 낭송한대.
그래서 행사 이름이 詩月詩日.
이름 너무 잘 지었지?
딱 엄마 스타일이지?
시 좋아하고 낭송에 관심 있는 엄마를 위한 행사야.
가을밤 시 낭송
감성 넘치는 이 행 바로 신청했어.
그런데 목요일에 엄마가 바빠서 참석을 못 했어.
노쇼 하는 사람 되기 싫었는데...
가을밤 시 낭송으로 감성은 채우지 못했지만,
엄마가 그 시간에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으니,
가을밤 허투루 보내진 않았다.
행사 제목 지은 아이디어라도 얻었다.
언젠간 엄마 글 어딘가에 넣어야겠다.
딸아~세상의 모든 예쁜 것을 너에게 줄게~
오늘은 가을을 보내본다.
딸에게 봄꽃을 보여주고 싶어서
포토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가을이 되었다.
다음 계절에도 그다음 계절에도
예쁜 것 많이 보내줄게.
우리 딸 아무리 여유가 없어도
하루에 한 번 하늘 올려다볼 수 있는
가을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