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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곡차곡 쌓이는 눈과 노래와 경험을 너에게

세상의 모든 예쁜 것을 너에게 줄게~43

by 늘품

긴 설 연휴가 끝났다.

우리 딸은 다시 아침 일찍 일어나 공부하러 나갔다.


명절에도 마음껏 놀지 못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댁 근처 스터디 카페를 다녀온 우리 딸.

이렇게 보내는 설은 올해가 마지막이야.

내년에는 분명 대학생 되어서 신나는 설 명절 보내고 있을 거야.


스터디 카페 다녀와서도 편히 있지 못하고,

전 부치고, 상차림 돕고, 엄마 설거지할 때 옆에서 정리 거들어주어서 정말 고마워.

덕분에 엄마는 아주 편했어.


어릴 적에 엄마 설거지할 때마다 도와주겠다며, 싱크대에 의자 놓고 올라와 엄마 옆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열심히 그릇을 닦던 우리 딸.

몇 년을 그렇게 싱크대 앞에서 함께 설거지하며 까르르 웃으며 살았는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니!

또 엄마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추억이구나.

형태는 즐거운데, 감정은 슬프게 느껴진다.


딸은 기억나지 않는다지만, 그때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딸 내부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

어릴 적엔 명분은 도움이었지만, 사실 옆에서 딸이 설거지하면 엄마 일거리가 더 많아졌단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확실히 도움이 돼.

말끔히 정리가 완료되어서 엄마 손이 1도 안 가.


그래, 경험과 실력의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가 분명 존재하는 거야.

과거 딸의 경험이 있기에 지금의 딸이 요리도 잘하고, 설거지도 잘하게 된 거야.

엄마는 그렇게 믿어.

어떤 경험이든 차곡차곡 쌓여야 실력이 되는 법이니까.

그래야 덜 슬프지.


설 연휴가 끝남으로써 우리 딸 겨울 방학 공부도 끝나간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는 공부, 당연히 해야 하니까 신청해서 관리받았지만,

혹시 못 견디겠다고 탈출하면 어쩌나 걱정이었단다.


그런데 눈 뜨기 힘든 아침, 시간 되면 일어나서 묵묵히 준비하고 집을 나서는 우리 딸 정말 장하다.

단 하루도 결석, 지각 없이 꾀부리지 않고 성실히 공부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 딸은 방학 중 한 달 공부가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지.

그러나 이것도 설거지와 같은 것이 아닐까?


형태는 불분명하지만, 겨울 방학 매일 공부 경험은 딸 내부 어딘가엔 실력으로 자리 잡지 않겠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 듯,

일단 실천한 것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내부에 차곡차곡 쌓여 실력이 돼.


이번 설에 싫은 것 참고, 공부한 것이 차곡차곡 쌓여 우리 딸 실력이 될 거야.

내년 설에는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내게 할 거야.

싫지만 하길 잘했다 생각하게 될 거야.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또 있다.

오늘도 눈이 펑펑 내린다.

몇 시간째 줄기차게 내려 차곡차곡 쌓인다.


엄마도 명절 연휴 동안 여유 있게 집에서 책 읽고, 글을 썼어.

다시 글쓰기 일상 모드로 돌아가야 해서, 카페에 노트북 들고 왔어.


넓은 통창으로 보이는 사브작 사브작 눈 내리는 풍경이 예쁘다.

서두르지 않고 차례차례 내리는 눈이 참 예쁘다.

눈은 차곡차곡 내려서 무슨 실력을 갖추게 될까?


예쁜 눈을 동영상으로 담았어.

비록 바로 옆 아파트 뷰라서 뻥 뚫린 산과 들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는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순간이 귀하게 느껴진다.


이때 엄마 귀에 노래가 들렸어.

그냥 아침부터 쭉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듣고 있던 배경 같던 노래가 새삼스럽게 주인공처럼 인식되었어.

아이유의 <밤 편지> 피아노 버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3XcS0ADvcH4


딸아, 그거 알고 있니?

엄마가 처음 책을 쓴다고 했던 것이 작년 설이었단다.

딱 1년 전이야.


글 쓰는 방법도 모르면서 책을 쓰겠다고 선언했지.

무모한 도전이었어.

주제도 못 정한 채, 불안하기만 해서 친가와 외갓집 갈 때 노트북을 가지고 갔어.


친가에서 딸과 같은 방에서 자며, 엄마 글 써야 한다고 방에 불 켜도 되냐고 물었지.

엄마 글 하나도 못썼다고 걱정하니까, 딸이 말했어.

"글 잘 써지는 노래를 들어보세요."


엄마는 글 잘 써지는 음악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단다.

세상에 그렇게 글 쓸 때 들을 수 있는 아름다운 노래가 많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어.


딸 말대로 '글 잘 써지는 음악'을 틀어놓았어.

바로 이 영상이야.

https://www.youtube.com/watch?v=ov0Mbm6FHu8&t=5624s


참 신기하지?

노래를 듣자, 주제가 떠올랐어.

글이 써지기 시작했어.


결국 엄마가 책을 출간하고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딸이 '글 잘 써지는 음악'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딸 덕분이다.

고마워.


그 후로 글이 술술 안 써지면, '글 잘 써지는 음악'을 틀어놓고 있어.

글쓰기 의식처럼 말이야.

그러면 어느샌가 엄마는 글을 쓰고 있고, 노래는 배경처럼 들릴 듯 말 듯 알아서 재생되고 있었어.


오늘도 엄마가 카페 와서 틀어놓은 음악이 다 재생되어 다음 영상으로 또 다음 영상으로 저절로 넘어가다가,

아이유 노래까지 흘러왔나 보다.


눈 영상을 찍는 동안 또 다음 노래로 넘어갔다.

이 노래도 눈과 너무 잘 어울린다.

태연의 <그대라는 시> 피아노 버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bi5COnzNG2Q


엄마의 글쓰기 경험도 차곡차곡 쌓여 책까지 출간하는 실력이 되었다.


딸아~ 세상의 모든 예쁜 것을 너에게 줄게~

오늘은 차곡차곡 내리는 눈과 노래와 경험을 보내본다.


모든 것이 차곡차곡 쌓인다.

눈이 차곡차곡 쌓이고,

노래가 차곡차곡 쌓이고,

순간이 차곡차곡 쌓이고,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고,

경험이 차곡차곡 쌓인다.


실력이 되고,

추억이 되고,

지금이 되고,

꿈이 되고,

미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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