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호>나의 온도에 맞게 살아가기

포텐셜리스트, 카타르에서 '엠마'님

by 김초롱
저는 '포텐셜리스트'가 아니에요.
엄청 열정적인 사람도 아니고 뚜렷한 커리어 목표도 있는 게 아닌데요.
처음에 엠마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다가 생각해본다고 했고, 결국엔 정성스러운 메일을 보내왔다.



엠마를 만난 건 이탈리아어 어학원에서다. 우리 반에서 가장 이탈리아어를 빠르게 배웠던 우등생, 미리 스페인어를 배웠다며 이탈리아어에도 관심이 생겨 왔다는 그녀가 왠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군더더기 없이 마른 몸에 비치는 잔근육. 우리가 SNS를 교환하고 나서야 나는 엠마가 춤을 췄던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Q. 과거에 했던 일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나는 신방과를 나왔다. 대학 졸업하고 남들 대기업, 언론사에 취업할 때 평소 좋아했던 춤을 추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수입이 거의 없다 보니 대학 졸업하고도 카페 알바, 과외를 뛰면서 돈을 벌다가 결국 디 포기하고 영어교재 만드는 회사에서 잠깐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감 스트레스에 1년도 못 채우고 퇴사했다.

한동안 반백수로 지내다가 우연히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통번역 알바로 근무하게 되었고 좋은 기회로 정직원이 되어 본격적으로 스포츠계에 몸담게 되었다.

사실 평소 스포츠에 관심도 없었고 스스로를 비춰볼 때 조직생활은 어렵겠다 생각했었는데, 국제 스포츠 대회 일이 생각보다는 할 만했다. 그래서 지금은 2022년에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에서 일하고 있다. 물론 카타르에서 살고 있다.


Q.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스스로 선택했다기보다는 어쩌다가 운 좋게 발을 들인 곳에 눌러앉았다고 보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처음 접해 본 국제 스포츠 대회라는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며 재미를 느꼈다. 평창올림픽 대회를 마무리하고 일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연히 카타르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Q. 일을 통해 얻고자 하는 최종 목표가 있는가?

솔직히 말해서 거창한 커리어 목표가 있지는 않다. 최대한 많은 대회를 개최해서 경험을 많이 쌓고 싶은 정도랄까. 확실한 건 어제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조금씩 성장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목표이다.

카타르에서 전 세계 사람들과 일하며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느낀다. 특히 한국에서 조직생활할 때에는 문제 되지 않았던 것들이 이 곳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때가 있다.

어떤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든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질 줄 아는 태도, 다른 사람과 협상하는 방법,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결정에 대해 당당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줄 아는 자세 등이 그렇다. 나는 천천히 배워나가면서 더 노련하게, 또 지혜롭게 일하고 싶다.


Q. 돈, 일과 관계없이 앞으로 해보고 싶은 도전이 있다면?

우선 다른 언어를 배우고 싶다. 그 다음엔 가정을 꾸리고 싶다. 예전엔 결혼, 육아를 여성의 커리어를 옥죄는 것으로만 여겼는데, 이제는 그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물론,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의무적으로 가정을 꾸려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가정을 꾸리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일을 겪어보니 정말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Q5.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것을 무엇인가?

'이 정도면 나도 할 만하겠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한다.

나는 호기심이 많거나 도전정신이 강한 성향은 아니다. 관심분야도 적은 편이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큰 사람이다. 가끔 나만 뒤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우울하기도 한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도전은 '딱 한걸음 더 나아가기'이다.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댄서'라는 목표는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에게 어울리진 않다. 오히려 '춤추는 게 재밌으니까 댄스 학원 한번 가볼까?'라는 작은 한걸음이 새로운 것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게 춤을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선생님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보고 흉내 내었고 흉내 낼 수 있어서 강사가 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이끌어준 무대에 서다 보니 방송 무대에도 설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한 걸음이지만, 그 한 걸음의 힘이 모여서 결국 내가 상상도 못 했던 것들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Q.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스로 가장 잘했다고 생각했던 도전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

대학 졸업하고 춤을 춘 것이다. 우선,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한 것이기 때문에 후회가 없다. 두려움 때문에 춤을 추질 못했다면 영원히 아쉬움으로 남아 계속 후회했을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춤을 포기한 것도 도전이다.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히면서 ‘나의 열정은 여기까지’라고 인정하게 된 것, 생각 끝에 춤을 포기한 것도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사실 나는 어릴 때 어른들 말씀 잘 듣는 모범생이었다. 뭐든지 잘 해내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았고, 포기 같은 건 패배자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 스스로 무언가를 포기하면서 오히려 나 자신을 알아갔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이 막상 내 삶의 일부가 되었는데 그것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고 느끼게 되었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엄청 잘 안다고 확신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그런 경험이 나 스스로를 인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배고픈 예술가여도 그저 행복하다는 댄서들보다 열정이 부족한 나를 알게 되었다.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 물론 멋지고 아름답다. 그렇다고 조금 심심하고 잔잔한 사람들이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다. 각자의 온도에 맞게 살아갈 뿐이다. 춤을 포기함으로 인해 나는 나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았다.



Q. 타지에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나만의 팁이 있다면 무엇인가?

우울해지려 할 땐 빨리 몸을 움직인다. 청소를 하거나 옷장 서랍을 열어 정리하는 등 집안일을 한다. 회사 일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 같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일들은 보통 답이 없지 않나. 해결책을 생각하는 데에도 고민이 많이 되고, 또 나의 판단과 선택이 올바른지에 대한 의심으로 에너지 소모가 크다. 그런데 집안일은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해결이 가능하니까 저는 거기에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다. 쓰레기가 눈에 띄면 치우면 되고, 더러운 얼룩이 있으면 닦아내면 되니까.


Q.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너무 뻔한 이야기 같지만 무엇이든 많이, 그냥 일단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도 20대 때 인생 선배들에게서

정말 많이 들은 이야기이기도 한데, 왜 그때 어른들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스포츠에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나에게 올림픽 관련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 일을 해보지 않았다면 의외로 나에게 맞는 일이 스포츠 세계에 있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겠는가? 회복탄력성이 좋을 때 자기 자신을 여러 환경에 노출시켜 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아는 세계가 결코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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