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요가 에세이 <생각은 멈추고 숨은 내쉬세요>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막상 무엇이라도 쓰기까지 버티게 된다. 올해 날마다 글쓰기를 해보자고 다짐했지만 몸은 잘 따라주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한 결심이라도 뭐든 훈련이 되지 않으면 막상 실천이 어려운 것 같다.
무엇을 써야 할지 주제조차 잡히지 않을 때면 뭘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그랬다. 순간적으로 내가 어떤 것을 버팅길 때마다 도피하기 위해 무엇을 먹는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주말에 유독 식사를 오래 하고 또 자주 간식을 먹는다. 평일에 제대로 먹지 못한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간식을 자주 하는 탓은 솔직히 글쓰기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다.
이 습관은 역사가 길다. 어릴 적 입시를 준비할 때 그렇게 엄하던 선생님들도 내가 뭘 먹고 있으면 공부하라는 말보다 '배고팠구나, 많이 먹어.'라고 했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느끼는 바로,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에 너그러운 편이다.
그래서 나는 공부하기 싫을 때면 먹는 것을 핑계로 늦장을 피우거나 더 많이 먹으면서 시간을 벌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식사시간이 유일하게 주변 터치 없이 쉴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도 이 습관은 남아있다. 회사에서는 정해진 시간이 있기에 이 습관이 통용되지 않는다 쳐도 집에서만큼은 자유롭게 먹는 시간을 늘릴 수 있다. 특히 주말 저녁 즈음되면 오늘 하루 글쓰기를 어떤 주제로 할지 고민하다가 마음이 답답해 크래커를 먹게 된다.
뭘 먹는다고 글이 써지는 건 아닌데도 먹는 행위 자체만으로 감격이다. 버팅길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그러나 마지막 크래커를 입에 넣는 순간 펜을 굴려야 하는 순간이 돌아왔음을 느낀다.
김영하 작가의 책에서 작가는 글쓰기 전 성스러운 의식으로 손톱을 깎는다고 했다. 또 내가 자주 읽는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서도 작가들이 저마다 글쓰기 착수 전 자신만의 성스러운 의식을 치른다는 글이 있다. 누군가는 라벤더 향초를 켜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샤워를 하고 사교모임 나가듯 차려입은 후에 글을 쓴다고 한다. 나의 경우엔 성스러운 의식보다 회피의 의식으로 무엇을 먹어볼까에 가깝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커피 한 잔이 꼭 있어야 뭐든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내가 글쓰기를 피하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난 후에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게다가 많은 음식을 먹고 난 뒤 생기는 포만감은 글쓰기의 집중을 방해한다.
대신 오늘은 샤워를 깨끗이 하고 가볍게 펜을 들었다. 뭐든 써보자는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가면 오히려 쉽다. 그리고 뭘 먹고 싶은 마음을 참고 '이걸 다 쓴 다음에 먹자'라고 바꾸니 버티는 마음도 좀 잠잠해진다.
우리는 자신의 습관이 무엇에 의해 비롯된 것인지 모른 채 살아간다. 어떤 일을 하기 싫을 때마다 반복되는 행동을 한다면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객관적인 눈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안 좋은 습관이 있다면 그것을 호기심으로 들여다볼 때야 그 행동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오늘의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