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를 함께하던 동생이 지방 취업이 되면서 집을 떠났다. 동생과 함께 구한 빌라의 작은 방 한 칸이 남았다. 나는 동생이 떠난 뒤에 방을 정리했다. 빈 공간이 주는 허전함을 빨리 메우고 싶었는지 동생방은 곧 창고가 되어버렸다. 방은 여러 벌의 옷들과 집기들로 금세 채워졌다. 그간 실감하지 못했던 '1인 가구'에 딱 들어맞는 공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방을 모조리 차지해서 좋았다. 동생과 아침마다 화장실 사용을 두고 벌였던 신경전도 사라졌다. 냉장고에 숨겨놓은 음식이 몰래 사라질 거라는 불안감도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외로움도 생겼다. 주말마다 대화 없이 홀로 시간을 보낸다는 건 고달픈 일이었다. 날씨가 추워 밖에 나가기 어려운 날은 더 했다. 혼자라서 편하다는 생각이 어떤 날에는 혼자라서 외롭다로 바뀌었다.
그 무렵,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는 지인과 만나게 되었다. 나의 근황을 듣더니 대끔 작은 방을 치우고 손님방으로 활용해 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손을 내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고작해야 3평 내외이고 우리 집 꽤나 오래되었어요. 게다가 나랑 같이 지내야 할 텐데 누가 오겠어요?"
내 말에 지인은 진지하게 대꾸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너무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니까. 그냥 해봐. 잘 꾸미면 되지."
이 허름한 방에 누가 머물고 싶어 할까 싶었지만 반면에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란 생각에 솔깃하기도 했다. 지인은 손님이 오든 아니든 상관없이 내가 사는 공간이라도 잘 꾸며보라고 했다.
별 다른 일도 없고 부수입에 호기심도 생겨 나는 작은 방 청소를 시작하게 되었다. 물건을 버리고 페인트를 다시 칠하고 커튼을 달고 나니 꽤 쓸만한 공간이 되었다. 나도 안 쓰는 좋은 침구를 추가 장만했다. 이어서 숙박 어플에 내 방에 대한 소개를 올렸다. 그러다 문득, 옛날에 읽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는 책이 생각났다. 이 작은 방의 정체성이 딱 사랑방 같았다.
역세권 사랑방, 단 주인과 함께 지내야 합니다.
사랑방을 위한 준비가 거진 끝나갈 때쯤 두려움이 확 느껴졌다. 모르는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잠을 자고 간다니... 하지만 이미 시작된 일이었다. 숙박업을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지만 어쨌든 페인트 칠한 비용, 침구 구매 비용의 투자금이 있었기에 멈출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서툴렀지만 사랑방을 시작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지금, 사랑방에는 총 10명의 손님이 다녀갔다.
첫 손님을 받던 날, 누가 올지 불안감이 컸다. 이상한 사람이 와서 괜히 소란만 피우고 가면 어쩌지 싶었다. 내 상황을 알고 있는 직장 동료들은 나의 불안을 더 부추겼다.
'술 마시고 와서 침대에 토하면 어떻게 할 거야?'
'옆 집에서 시끄럽다고 뭐라고 하면?'
'물건 훔쳐가면 어쩔 거야?'
이런 말들을 듣고 있자니 모르는 사람을 방에 초대한다는 결정이 너무 무모한 것이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한 손님의 예약을 받았고 이왕 일어난 일 손님맞이를 잘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사랑방 첫 손님은 미국에서 유학을 하는 대학생이었다. 무려 이틀이나 묵었다. 나는 낯섦을 숨기고 모든 것이 익숙한 경력 있는 호스트처럼 손님을 맞았다. 하지만 대면하지 않은 때에는 맞은편 방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손님의 동선이 어떤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폈다. 낯선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생각에 내 방문을 걸어 잠겄음에도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다음 날, 내 걱정과 달리 사랑방 첫 손님은 너무나 편안한 밤을 보내다면서 칭찬을 해줬고 떠난 이후에도 장문의 후기를 남겨줬다. 그 이후, 주말마다 손님 예약이 생겼다. 대부분 나보다 한참 어린 대학생들의 예약이었다.
처음에는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덧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공간을 꾸미는 것이 즐거웠다. 일주일에 한 번 이불 빨래를 하고 화장실을 치우는 건 너무 당연했고 코코넛 향초를 태운다거나 꽃다발을 사는 등 혼자 일 때 하지 않았던 일들로 내 공간을 채우게 되었다. 사랑방을 찾는 손님을 위해 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내 공간이 안정이 되니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에어비앤비를 시작해 보라고 도움을 준 지인이 물었다.
"요즘 예약 잘 되고 있어?"
나는 끄덕이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첫 부수입을 얻은 것에 대한 자랑도 했다.
부수입도 좋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한 대화 주제로 주목을 받게 되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얻은 가장 큰 것은 낯선 사람을 대할 때 내 마음의 변화였다. 사랑방 운영을 하면서 사람 관계에서의 상호작용을 체감하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감정의 상호작용이다. 내가 마음을 닫으면 상대도 나를 어색하게 대하고 반대로 내가 마음을 열면 상대도 마찬가지로 나를 자연스럽게 대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 것 같다. 후기를 잘 받고 손님을 더 받기 위한 노력 아닌 오는 손님들이 내 공간에서 잘 쉬어 갔으면 하는 쪽으로 내 마음가짐을 바꾸면 되는 것이었다. 마음을 열면 자연스러워지고 괜한 의심이 사라진다.
언젠가부터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내가 마음을 열었던 순간은 손님이 묵을 때도 내 방문을 잠그지 않게 된 순간이었다.
사랑방 손님과 주말을 보내면서 홀로 보내는 주말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래선지 외로움도 차츰 가셨다. 손님들이 왔다 가는 것만으로도 내 공간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다. 방문이 열린 것처럼 내 마음도 열렸고 오가는 인사로 집은 더 따뜻해져만 간다. 사랑방 손님과 보내는 일요일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