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갑자기 하늘에서 뚝 하고 10억이 떨어진다면?

by 김초롱

내 주변 사람 중 어떤 분은 로또에 당첨되는 상상을 하며 한 달에 한 번 꼴로 로또 한 장씩 산다. 그러면서 '로또에 당첨되면...'이라는 말로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상상을 하는 건 늘 즐거운 일이다. 특히 돈에 관련된 상상을 할 때는 상상의 나래 평수가 넓다. 갑자기 10억이 생기면 어떨까? 나는 잠깐 시간이 나는 틈을 타 이 멋진 상상을 해보기로 했다.



10억으로 할 수 있는 것


맨 처음 든 생각은 부동산이었다. 로또 당첨되면 집 한 채 사겠다는 주변인의 말에 따라 나도 아파트를 사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10억을 다 쓴다고 해도 서울 시내에 살 만한 신축 아파트는 없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운 좋게 얻은 10억을 온전히 다 아파트에 쓰고도 대출을 끌어야 한다니 갑자기 김이 샌다. 아파트를 생각하는 순간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버렸다. 상상의 나래 평수가 원룸만큼 작아져 버렸다.


그래서 아파트를 사겠다는 상상은 잠시 접었다. 집을 사면 좋겠지만 그건 큰돈이 드는 것이니 일단 보류하고 가장 하고 싶은 것들을 먼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진짜 평범한(?) 상상을 해보자. 일단 해외여행을 1년 동안 하는 것과 자동차를 장만하는 것, 또 럭셔리 명품 하나 사는 것, 집에 둘 커피 머신을 사는 것 등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의 최대 사치를 부려봤다. 그런데 계산을 해보면 이 모든 것은 1억에서 2억쯤이면 해결될 것들이었다. 또 막상 산다고 하니 진짜 필요한 것도 아니요, 어릴 때처럼 그것을 가지고 싶은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 인생에서 최대 소비를 한다고 가정하면 2억 정도 쓸 수 있겠다 결론이 났다. 나머지 8억은? 세계 순위권 안에 드는 호텔 식사를 날마다 해볼까 아니면 크루즈 여행이라도 가? 그런데 며칠 안 되어 금방 질려버릴 것 같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자 굉장히 현실적인 지인 한 명은 세금 뗄 것을 생각하라고 돈을 쓰라며 조언을 했다. 순간적으로 푸핫 하고 웃음이 났다. 그 말에 따라 상상 속의 돈을 가지고 세금을 떼고 주식투자로 얼마를 넣었다. 갑자기 생긴 돈이라도 세금 떼고 일정의 저금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억 단위의 금액이 남는다.


결국 나는 내 수준에서 상상할 수 있는 씀씀이가 이 정도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10억을 받아도 어떻게 써야 할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이게 팩트다. 돈을 어떻게 쓸지 계산하며 상상을 해보니 10억이 그리 큰돈이 아니란 생각도 든다. 또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사치도 끽해봤자 고작해야 2억 안팎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억짜리의 사치


나는 어릴 적부터 돈을 잘 '꼼치는' 아이였다. 작은 돈을 어딘가 모아두고 그것이 얼마나 모였는지 몰래 가서 살폈다. 그런 나의 행동을 보며 어른들은 '돈 많이 벌어서 뭐 할래? '라고 물었다. 그때의 나는 '~를 사겠다.'라고 답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돈을 모으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사기 위해서였다. 명품을 사기 위해서, 비행기 티켓을 사기 위해서, 한 때는 유흥비에 쓰기 위해서였다. 솔직한 말로 저금의 이유는 쓰는 재미 때문이었다.


10억의 상상을 통해 내가 생각해 온 큰 소비의 리미트가 2억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약간 허무하다. 돈을 써 본 사람이 잘 쓸 수 있다는 말이 있듯 모으기만 하고 잘 써보질 않았으니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딱 여기까지다. 그리고 이 소비는 그리 의미가 있는 소비도 아니다. 언제쯤 가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넣어둔 장바구니의 물품들이 단박에 생긴다고 하면 그걸 취했을 때 별 감흥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뭐, 생기면 좋겠지만.

갑자기 하늘에서 10억이 뚝 떨어진다면...!

빚 40억


내가 어떤 가방을 사고 어딜 여행하고를 상상하고 있을 즈음, 지인의 회사 문제와 올해 목표 설정과 관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대화를 통해서 지인의 투자금액을 알게 되었고 빚이 거의 40억 즈음된다는 것도 파악하게 되었다.


빚이 40억이라고?


방금 전까지 상상 속에서 8억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고 있던 내게 40억의 현실은 크게 다가왔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10억이 크게 느껴졌는데 현실에서의 빚이 그 4배라니. 그리고 지인은 개인적인 사치가 아닌 회사를 굴리기 위해서 그 돈을 투자하고 있다니. 그건 나와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이 사람이 40억을 대하는 태도와 내가 10억을 대하는 태도가 다름을 알게 되었다.


지인은 투자를 하고 있었고 나는 소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40억 이상을 투자했다. 자신의 회사가 있고 고용한 직원들이 10명을 넘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실했다. 몇 년간 고생을 했지만 그 과정 안에서 배운 것들이 많다고도 했다.


그리고 어쨌든 그는 CEO다. 투자를 얼마 했든 빚이 얼마든간에 그는 대표로서의 경험을 여실히 하고 있다. 투자한 만큼 벌지는 못해도 그만큼 배우고 있다는 것을 대화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남은 8억으로는 투자를 해볼까?


하늘에서 갑자기 10억이 떨어진다면 나는 정신 못 차리고 2억 즈음을 사치를 할 것 같다. 그러다가 번뜩 정신날 때쯤 남은 8억을 들고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할 것 같다. 그런데 여느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처럼 갑자기 생긴 공돈 냄새를 맡고 오는 사기꾼들에 당하는 일도 생기고 이래저래 지인들에게 퍼주기씩 자선활동을 하다가 결국 별 것이 없이 소비로 10억이 끝날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10억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그전에 내가 돈을 벌게 되면 무엇을 할 것인지가 확실할 필요가 있다. 일단 내가 왜 돈을 모으고 있지를 먼저 생각해 보자. 내가 돈을 벌고 싶은 이유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내가 원하는 글쓰기를 실컷 하고 여행지에서도 글을 쓰고 다른 언어를 배우고 소통하며 사는 일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또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줄이는데도 돈이 필요하다. 생계와 건강, 유지를 위해서는 늘 일정 금액을 소비해야 한다.


시간과 안정을 위해서 나는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돈을 벌면서 얻은 값진 경험들도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성과를 내기 위한 연습, 사람들과의 관계,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등을 체득했다. 또 무엇을 배우는데 투자할 수도 있었다. 이 경험이 모여 새로운 글을 쓰게 만들었고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줬다. 돈을 버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투자이기도 했다.



40억 빚은 싫지만 그래도 성장은 하고 싶다


여러 가지 상상 끝에 나는 남은 8억을 투자하는 것에 쓰기로 했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가 아닌 순수히 나의 성장을 위한 투자로 쓰기로 (상상 속에서) 결정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될 것 같다. 동업자를 찾아 회사를 차린다거나 회사를 보는 눈을 키워 밴처캐피털리스트가 되는 등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상상이니까 이렇게 쉽게 쓴다. 하지만 그럼에도 40억 빚은 진다는 건 여전히 두려운 일이다. 그게 비록 상상일지라도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돈에 대한 나의 태도와 수준, 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어디에 무엇을 쓸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는 아파트, 그다음은 명품과 차를 사겠다는 생각이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투자를 하겠다고 굳혀져 어떤 면에선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현실에서 10억을 딱 모았을 때, 오늘 한 상상의 경험으로 허튼 짓은 안 하게 될 테니까.


언젠가 나도 40억 빚이 대수롭지 않은, 그 보다 훨씬 큰돈을 움직이는 자산가가 될 수 있을까? 빚은 싫지만 그래도 성장은 하고 싶다. 앞으로는 소비보다 투자에 집중을 해보자. 10억이여 오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