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상 보는 눈에 따라 글이 바뀐다

by 김초롱
작가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이야기에 반영된다.


어제 책을 읽으면서 본 이 구절이 정말 와닿았다. 실제로 독서를 할 때, 우리는 작가가 만든 캐릭터들이 이끄는 사건에 초대된다. 그리고 작가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건의 결말이 바뀌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에세이, 문학, 비평 모두 다 동일하다. 어떤 때에는 작가를 통해 경험을 하고 나에게 일어났던 비슷한 상황을 대입해 보면서 선택하는 법을 배운다.


당연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최근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는 나에게 이 문장은 책임감을 확 느끼게 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전달된다. 보이는 글을 써서 전달하는 것이지만 그 속에는 늘 관점이 담겨 있다.


어제 동생과 어떤 소재로 글을 쓸 것인가를 두고 수다를 떨었다. 최근 유행하는 주제인 회귀, 빙의, 환생의 주체로 나도 한 번 써볼까 싶었다. 그래서 동생에게 내가 정한 스토리를 들려줬다. 짧게 요약하면, 너무나 착해빠진 여주인공이 배신을 당해 괴로워하다가 자신을 도와주는 영적인 힘을 지닌 존재를 만나 복수를 시작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는 얘기다.


동생이 듣더니 '나는 바로 뒤로 가기 버튼 누를 테야.'라고 했다. 그 대답에 나는 의아했다. 너무 뻔하고 쉬운 스토리라인인 데다가 요즘 유행하는 소재를 딱 넣어 쓴 것인데 보지 않겠다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너무 복잡해. 언니가 쓴 글은 고구마 100개 먹은 여주인공에 바람피운 나쁜 남주인공 이야기잖아. 벌써부터 스트레스다."


듣고 보니 그랬다. 내 주인공은 자신이 겪은 사정보다 더 복잡한 감정을 지녔고 행동이 느렸고 생각이 매우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 캐릭터는 내가 별 생각을 안 해도 너무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돌아보건대, 이 캐릭터의 성격은 나의 성격을 꽤나 닮아있었다. 그리고 스토리의 전개에도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절묘하게 들어있었다. 또 배신을 당하고 복수를 하는 이야기마저 내가 겪은 이야기, 들은 이야기의 적절한 조합이다.


동생은 나한테 "로맨스를 써 봐. 가벼운 것."이라고 했지만 도저히 나는 로맨스를 쓸 수가 없다. 어떤 캐릭터도, 어떤 이야기도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최근에 읽었던 책들을 떠올려보면 로맨스와 아주 동떨어진 것들이다. 심지어 일상에서 로맨스를 느낀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나는 동생의 말에 '와하하하하하' 하고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동생과 통화를 마치고 다시 이 문장을 떠올렸다.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을 이야기에 넣는다면 나는 그 결말을 긍정적으로 만들고 싶다. 복수를 시작한 여주인공이 끝내 모든 것을 용서하고 자신의 삶을 찾는 이야기로. 아니면 복수를 시작하기보다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로. 고구마 100개 먹은 것 같은 주인공이 아닌 역경을 무릅쓰는 강한 주인공으로.


이런 생각을 할수록 동생이 말한 '능글맞은 남자주인공과 새침데기 여자주인공'이 등장하는 서사를 쓰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하지만 동생이 말한 너무 복잡하고 무겁다는 피드백은 받아들여야겠다. 단순하면서 명료한, 그래서 마음이 가벼워지는 그런 글을 써야겠다. 그러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에도 점점 더 변화가 필요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