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주인공은 자유를 위해 어떤 도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마음 속에는 자유로워기지 위한 전제 조건이 있다. 가장 먼저 자신을 지겹게 하는 파트너와 거리를 두는 것이고 그 다음은 고정된 스케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런 전제조건의 일부분이 이뤄졌음에도 자유롭지 않다. 그는 그 이상의 도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지금껏 몰랐던 자유로움의 방식이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자유를 얻는 방법을 찾는 것이 주인공의 다음 목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자유를 찾는 방법은 그저 그가 자유로워지면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유를 찾는 어떤 방식이 있을 것이라 집착하고 그 집착은 매우 기이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글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주인공의 행동이 억지스럽고 어이없게 느껴진다. 그러나 주인공은 한없이 진지하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산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경우 그 정도가 지나쳐 자신의 삶에 빠져산다. 요샛 말로 '과몰입' 해서 산다. 그래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정도가 지나칠 경우, 자신이 하는 행동이 모두 정당화 되고 남의 얘기는 들리지 않게 된다.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어떤 것을 놓치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가 된다.
그 때 쯤이면 그 상태를 벗어나겠다고 무엇을 찾게 된다. 아주 간단하게는 술, 담배이고 그 이상으로는 다른 중독에 빠지거나 회피성 행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잠깐의 기분을 좋게할 뿐이다.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그 방식은 사실 너무 간단하다. 무엇을 원한다면 그걸 하겠다는 '선택'을 하면 된다. 원하는 것이 이루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지 발견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로워 지는 법, 사랑하는 법,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법 등은 사실 다 마케팅적인 용어이다. 만약 그런 것들을 원한다면 그저 자유롭기를 선택하고 사랑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된다. 하지만 보통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용기를 내는 것을 대신해 그것을 대신 이뤄 줄 다른 도구가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내 경험상,
그런 도구는 없다.
굉장히 오랜 기간 나도 내 자유를 위해서,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 어떤 도구를 찾았다. 나는 자기계발서에 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어떤 유명한 사람의 강연에서 그것을 캐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요즘의 내가 느끼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줄 도구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결심하고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실마리가 보였다. 바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닌 눈을 감고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집중하고 날마다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 전부다. 그게 나에게 있어서는 자유로워지는 길이었다.
앞서 쓴 주인공 이야기는 내가 새롭게 쓰려고 하는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 주인공의 행동은 너무 기이하고 억지스럽지만 나는 그 주인공의 삶에 애착이 있다. 그건 과거의 내 경험에 바탕한 이야기이다.
나는 과거의 나를 이야기로 표현하면서 묘한 자유를 느낀다. 오늘의 새로운 한 장을 쓰는 것도 자유를 위해 나가는 행동이다. 그리고 이건 내가 선택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