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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라는 적

by 김초롱

우리는 마음은 두 가지 양상을 띤다. 내 마음속에도 나와 에고라는 두 가지의 버전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진실한 나는 그걸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의 마음이고 에고의 나는 최대한 그 일을 피하려 하는 마음이다.


에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책들에서는 그것을 '에고'라고 지칭하기도 하지만 다른 단어로 치환해서 쓰기도 한다. 마음속에 늘 남아있는 두려움, 회피하고 싶은 감정, 고집스러움 등의 단어로 표현되는데 한 가지 포인트로 요약하면 그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훼방을 놓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또한 그것들은 너무나 강력한 나머지 어떤 식으로든 오해와 고정관념과 어우러져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손 발을 묶어버린다.


내가 좋아하는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책 '빅매직'에서는 에고에 대한 얘기를 다룬다. 그녀는 예술과와 작가들이 가진 어떤 관념, 예컨대 '예술가들은 불행해야 한다'라든가 '멋진 것을 만들려면 무엇인가 중독되어야 한다'라는 관념에 일침을 놓는다. 그런 것들과 에고가 함께 덤비게 되면 도저히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고 결국 어떤 것에도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생각에 빠져버린 사람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가 되면 에고는 '거봐, 내가 못할 거라고 했잖아.'라고 귓전에 와서 낄낄거린다. 이 얼마나 무서운가...


나는 요가를 하면서 에고에 대해 알고 독서를 통해서도 배웠다. 근간은 동일하다. 우리 내부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자기 안에 있는 에고다. 그리고 그건 어떤 방식으로든지 일상에 등장한다.


'저 사람이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아, 나는 이거 원래 못하잖아.'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아 귀찮아. 언젠가 하겠지.'

'괜찮아. 오늘만 먹어버리자' 등등 에고가 하는 말을 다 기입하려면 하루에 5천 자도 쓸 수 있을 정도다.

에고는 그만큼 나와 가깝고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빌런 중의 빌런이다.


그런 것을 알고 있어서 에고를 가라앉히는 연습과 나에게 용기와 의지를 주는 말들을 습관적으로 연습한다.

저 위에 있는 말들을 바꿔서 다시 말해보는 식이다.


'저 사람도 이유가 있겠지. 괜히 오해하지 말고 내 일이나 하자.'

'좀 더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거야.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오늘 목표한 것까지는 해보자.'


이렇게 치환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그제야 다시 평정심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에고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성장할 때마다 에고도 함께 성장한다. 그런 면에서 에고가 마라톤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나를 앞지르려고, 어떻게든 내 앞 길을 훼방 놓으려는 그 감정들이 동반 성장을 하기 때문에 늘 내가 어떤 의도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요즘의 내 상황이 그렇다.

요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힘든 게 싫어'라고 말하는 에고는 자주 등장하고

글쓰기를 하면서도 '그만 좀 하고 쉬자.'라는 귓전의 목소리가 나를 유혹한다.


예전에는 이것들을 어떻게든 이겨버려야지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것보다 에고에게 지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공감하겠지만 언제나 나와의 싸움이 제일 힘들고 어렵다. 그러나 날마다 지지 않고 내 갈길 가려는 마음에 충실한다면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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