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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사랑’

마에스트로 정명훈 & 피아니스트 조성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공연

by 김초롱


# 오랜만에 클래식 공연장에 다녀왔다.


오늘 정말 운이 좋게도 마에스트로 정명훈,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협연으로 이뤄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두 사람의 공연이라서 시작 전부터 너무나 설렜다.

예전에도 나는 이 두 사람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일했을 때가 마침 정명훈 선생님이 서울시향에서 계실 때였고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쇼팽 콩쿠르 1등을 하기 전이라 지금보다 티켓 구하기가 쉬웠을 때였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되면 두 사람의 공연을 봤다.

오랜만에 두 사람이 나란히 한 공연을 보려니 예전 생각이 났고 오늘도 과거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 그들은 왜 연주를 하는 것일까?


공연의 후반에 다다를 무렵, 나는 문득 70세가 된 정명훈 선생님이 대체 왜 여전히 지휘를 하고 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고 교과서에 이름을 실을 만큼 국내에서도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었는데 어째서 이 사람은 여전히 모든 악보를 암기해 가면서 공연을 할까. 정명훈 선생님이 연주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더 나아가 연주자의 삶은 대체 뭘까라는 생각도 했다. 두 시간 넘게 타국 땅까지 와서 땀을 뻘뻘 흘리는 저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대체 어떤 이유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일까.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반복되는 연습을 하며 사는 까닭은 무엇이며 날마다 몇 시간 이상을 피아노 앞에서 앉아 있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진짜 이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한 까닭은 음악을 들으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최근 나의 화두이다.

나를 비롯해 대다수 사람들은 안정감을 얻기 위해서나 돈 걱정 없이 살기 위해서 일을 한다. 반복되는 회사 생활을 참는 이유는 밥벌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오늘 만난 무대 위의 사람들은 단순히 유명해지거나 밥벌이를 위해서만 날마다 연주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 목적은 사랑


음악을 들으며 그런 질문에 머물러 있다가 어느덧 공연의 끝을 맞았다. 엄청난 박수세례가 이어졌고 몇 번의 커튼콜이 오갔다. 정명훈 선생님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멈췄을 때 입을 열어 앵콜곡을 소개했다.


“저는 모든 음악의 끝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담아서, 브람스.”


내가 했던 많은 질문의 답이 어쩌면 이 한 마디에 담겨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명훈 선생님은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랑의 에너지 한가득 담아 아름다운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을 전해주었다.


예전에도 정명훈 선생님이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하고 익숙한 선곡이었지만 오늘은 나는 이 음악을 ‘유명한 지휘자가 연주한 유명한 선율’ 이 아닌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예전보다 훨씬 더 깊은 몰입을 경험했다. 순전히 귀를 기울이며 그 순간에 머물 수 있었다.


# 머리가 아닌 감각의 세계


오늘의 경험이 너무나 생경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이 감정을 어떻게든 남겨두고 싶다.


사랑의 에너지가 담긴 음악을 들었을 때의 느낌은 깊은 명상에 빠진 것과 비슷했다. 노천탕에서 뜨거운 물에 들어갔을 때의 평온한 느낌이기도 하고 어떤 순간에는 오랫동안 키우던 강아지 곁에서 마지막 밤을 함께하는 것과 같은 먹먹한 느낌이기도 했다.


동시에 나는 날마다 같은 장소에서 수십 번 같은 것을 연습할 때의 고독함과 고통을 느꼈고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역으로 내려놓아야 하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계속 이어지는 불확실성과 번민이 음악의 뒤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비로소 음악을 들을 때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공연을 볼 때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다는 것에 빠져 엄청난 분석을 해댔다. 클래식 음악을 공부한 이유에서 비롯된 습관이기도 했다. 템포가 빠르고 느리고, 어떤 악기가 언제 들어왔다 나가고, 조성이 바뀌는 구간과 음색의 크기 등을 분석하면서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이런 예민한 작업을 하고 있는 중간에 누군가 실수를 하거나 관객석에서 기침, 벨소리, 물건 떨어뜨리는 소리가 나면 나를 방해하는 것 같아 엄청나게 화가 치밀었다. 운 좋게 얻은 많은 기회 속에서 나는 일하는 것처럼 공연을 봤다.


이제야 난 그게 음악을 느끼는 태도가 아니란 것을 알았다. 예술가들이 전달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예술가들은 음악을 통해 보이지 않는 가치를 전달 해왔다. 작곡가 브람스에서 오늘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 정명훈 선생님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단원들에게까지 사랑은 이어져 왔다.


# 나는 왜 이런 것에 끌릴까


여전히 나는 예술을 표현하는 사람들 곁을 서성인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음악가, 화가, 작가, 일러스트레이터들을 추종하며 이 사람들이 전하고자 하는 것들에 엄청 매료되어 있었다. 나는 예술가들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마케팅을 시작했고(지금은 전혀 다른 일은 하지만) 한 때는 전시회장에서, 또 사회 초년생 때에는 공연장에서 일했다. 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예술가들을 후원하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오래 살았다.


오늘 문득 내가 계속 비슷한 장소를 떠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인가를 갖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상태로 말이다. 나는 그게 무엇일까를 느껴보았다. 나는 감동을 바란다. 정확히는 나는 감동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어쩌면 내가 제일 바라는 일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걸 언제, 어떻게, 무슨 기회로 이룰지 모르지만... 감동이라는 두 글자만 들어도 설레고 그게 내가 원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오늘의 공연 덕분에 앞으로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좀 더 나의 내면을 탐구해 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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