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편 완결, 10만 자 분량
나는 왜 소설을 썼을까?
지난 2월 8일에서 시작해 3월 12일 소설 초고를 완성했다. 약 한 달 정도 걸렸다. 날마다 2천 자를 써내려 가자는 목표로 시작한 것이 소설 초고의 완성으로 끝이 났다.
과거에도 무엇인가를 써보겠다고 마음먹었던 적은 많았지만 실제로 이야기의 결론을 짓고 완결점을 찍어본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뿌듯한 성취감이 느껴졌다. 퇴고의 과정이 남아있긴 하지만 한 고개를 넘었다는 것에 작게나마 축배를 들었다.
내가 소설 쓰기를 시작한 이유는 미완성에 대한 경험을 극복하고 싶어서였다. 나한테는 미완성 소설 원고 2편이 있다. 그 원고들이 완성되지 못했던 이유는 줄거리의 진도를 빼지 못하고 계속 앞부분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용두사미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앞의 이야기는 내 맘에 들었지만 갈수록 무엇인가 삼천포로 빠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결국 길을 잃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완성을 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중단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맘에 들지 않은 부분이 정말 많았지만 그것을 고치며 시간을 보내는 대신 내가 구상한 것들을 다 써보는 것에 집중했다. 제일 어려웠던 것은 역시 결말 쓰기였다. 어떻게 이야기를 끝낼까 너무 고민되었기 때문에 쓰던 중간에 멈출 뻔했다.
특히나 내가 쓴 이야기가 살인자를 찾는 이야기 었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범인을 밝힐 것인지에 대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했다. 결말을 생각하지 않고 소설을 착수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래서 소설 쓰기 중간에 예상 가능한 결말을 먼저 쓰고 다시 앞을 채워나가는 시도를 해봤다. 다행히 이 방식이 도움이 되었다.
초고를 쓰고 난 후 느낀 점
날마다 퇴근 후 책상 앞에 앉아서 무엇을 쓴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릿속으로는 서둘러 초고를 완성하고 싶었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몸 따로 마음 따로였다. 분명 어떤 소설가는 소설 쓰기를 하면 몰입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는데 나의 경우는 몰입을 넘어 졸고 있을 때도 있었다. 소설을 쓰다가 내가 졸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정말이지 현타가 왔다. 스스로 졸음을 참지 못할 만큼 이야기가 재미없구나 싶어 헛웃음이 난 적도 있다.
그래도 날마다 퇴근 후 다시 작가로 출근해 작업을 한다는 것은 참 소중한 것이었다. 남들이 만든 것을 소비하는 대신, 내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그 기쁨. 물론 피곤하고 졸릴 때도 있었지만 그 밑바탕에 언제나 소소한 기쁨이 있었다. 소설 쓰기는 한 달 동안 나에게 즐거움을 줬다.
앞으로의 할 일 - 퇴고하기
나는 패스트캠퍼스로 김영하 작가의 ‘씀으로써 작가 되는 글쓰기’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거기에는 퇴고하기 파트가 있는데 김영하 작가는 초고를 완성한 사람만 그 강의를 보라고 했다. 초고 완성을 해보지 못한 작가는 봐도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강의를 마저 다 보고 싶은 마음에 초고를 서둘러 완성했다.
그리고 이번주에 ‘퇴고하기’의 강의를 들었다. 그걸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이었다. 퇴고의 과정은 초고 이상으로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작가도 계속되는 자기 의심에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퇴고를 할 때는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읽고 변경하기를 반복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나는 지금껏 완성한 초고가 없었기 때문에 퇴고도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퇴고가 얼마나 어려울지 또 내가 무슨 고민을 더 하게 될지 감이 잘 안 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퇴고를 해보고 싶다.
다시 긴 과정에 착수하기 위해 이번주는 내가 좋아하는 책 몇 권을 더 보고 다른 아이디어도 생각하면서 충분한 여유를 가지려 한다. 이번의 초고 쓰기 목표를 이룬 것에 만족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