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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퇴고를 시도해 보았다.

초고를 거의 뜯어고쳐야 할 수준 #전지적 퇴고 시점

by 김초롱

#퇴고를 시작하며


지난달에 소설 초고를 마무리하고 퇴고를 하기 전까지 자축하며 초고를 잠깐 잊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4월부터 다시 퇴고를 시작한다는 계획 하에 오늘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그 과정에서 모든 주인공의 캐릭터를 다시 한번 정리를 해봤다. 이름과 나이, 성격과 직업, 그리고 집안 배경까지 내가 설정해 온 세세한 것들을 다 기입했다. 그리고 각 캐릭터가 마주한 갈등상황을 정리를 했다.


그런데 이 과정 속에서 나는 굉장히 낯선 무엇인가를 느꼈다. 개연성이 없다는 것. 주인공이 왜 이런 행동을 했고 결과적으로 결말이 이렇게 정리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근거가 너무나 미약했다. 그래서 나는 이미 결론을 지어버린 이야기보따리를 다시 풀어서 새로운 퍼즐을 짜기 시작했다.


#캐릭터부터 다시 수정해


요즘 스토리텔링과 소설작법의 책을 읽으며 나는 사람들의 행동의 이면에는 또 다른 동기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캐릭터를 움직이는 원동력인 '동기'는 크게 외적인 동기와 내적인 동기와 나누어진다고 한다. 이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그 사람의 동기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오히려 내적인 동기가 더 강력하게 작용해 이야기의 결론을 낼 때도 있다.

어떤 주인공이 회사에서 성과를 내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해보자. 그의 외적인 동기는 '성과'이지만 내적인 동기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그는 성과에 집중하면 할수록 남들의 인정을 구하게 되고 결국 그 내적인 동기 때문에 성과보다는 다른 사건을 만들게 된다.

작법서에서는 어떤 캐릭터를 다룰 때 외적인 동기와 내적인 동기를 미리 설정해 놓아야 이야기가 전개될 때 인물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미리 이런 동기를 정리해 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다시 나의 초고의 캐릭터를 바라보았다. 처음에 캐릭터를 설정했을 당시 나는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캐릭터들의 외적 동기만을 그렸고 그들의 내면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었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캐릭터의 동기가 약해서 이야기가 진행되면 개연성이 떨어지게 된 것 같다.


# 다 지우고, 다시 쓰고, 다 지우고


캐릭터를 정리하고 다시 플롯을 정리해 보는데 순간적으로 '일 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고가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거의 초고 쓸 때와 다를 바 없는 막막함이 시작되었다. 초고의 내용의 절반 이상을 지워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얼마 전에 내가 초고를 완성했다고 외치고 마셨던 샴페인 한 잔의 양만큼 이 초고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생선구이로 치자면 내 초고는 아가미 수준이랄까. 플롯이라는 뼈 마디마디까지 다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서 대대적인 작업이 걸릴 것 같고. 왜인지 시간이 초고 때보다 더 걸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하지만 퇴고하기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면 왠지 내가 끝까지 이 작업을 완료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무릇 퇴고에도 목적이 있어야 하거늘... 기약 없는 퇴고는 무력감과 지루함만 가져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이번 퇴고를 정리하는 대로 소설 공모전에 보내보려고 한다. 마감기간이 있을 때 그 힘으로 글이 마무리되니 다시금 마감이라는 장치를 활용해 보려고 한다.


#그렇다면 당분간 퇴고에 몰입

황금 같은 토요일, 오늘 한 일은 퇴고. 오후 2시부터 지금 9시 30분까지 이 작업을 위해 자판에서 손가락만 두들기고 있는데 그래도 오늘 무엇인가 진척은 있었던 것 같아 마음은 뿌듯하다. 데스크 앞에서 화면만 보고 하루를 보냈다는 것이 좀 아깝긴 하지만 그래도 작가로서의 하루를 보낸 성취감은 있다.


당분간 퇴고에 몰입하면서 즐거운 소설 쓰기를 진행해 나가야지.

그나마 초고를 썼으니까 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오늘도 나를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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