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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잘 안 풀릴 때는 잘 먹어봅시다

일요일에는 역시 짜파...아니 더 좋은 것을 먹어봐요

by 김초롱

일이 많고 몰입을 하게 되면 가장 쉽게 놓치는 것이 끼니이다. 특히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빵과 커피로 점철된 일상을 보냈는데 최근에 돼서야 그게 얼마나 내 몸을 힘들게 만들어 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예전보다 많이 신경 쓰고 있긴 하지만 할 일이 많다 싶으면 제일 먼저 스킵하는 것이 요리다.


어제 먹은 것이 떡 한 입과 크로크무슈, 그리고 저녁 8시 즈음에 먹은 밥 몇 숟갈. 무엇인가 서운하고 그렇게 먹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기분과 성이 안 풀린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오늘은 사 먹는 것을 그만하고 이제 해 먹을 때가 되었다고 스스로 기운을 북돋으며 아침 일찍부터 마트를 향했다.


그래서 무엇을 샀냐면 2KG 정도 되는 여주 밤 고구마와 양송이버섯 큰 사이즈로 4개, 파프리카 곁들여진 양상추 샐러드를 사 왔다. 그 양이 꽤나 많아서 에코백에 가득 넣고 그것을 짊어지듯이 매고 걸어와야 했다.


차려진 음식을 먹으면서 지금 먹고 있는 것을 잘 관찰하고 표현할 수 있다면 작업에 도움이 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 그래야 먹으먼서 유튜브를 안 킬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의 글은 먹은 것을 최대한 표현해 써보고자 한다.


# 여름의 맛 : 파프리카를 곁들인 샐러드



빨간색 파프리카가 아주 얇게 썰어져 연두색의 양상추와 함께 섞여 있는 것이 보기만 해도 싱그럽다. 이 색감만 보면 초여름이 떠오른다. 나는 여기에 레몬즙을 두세 번 두르고 가지고 있던 올리브 오일을 접시 바닥에 깔릴 정도로 넣었다. 올리브 오일 때문에 윤기가 흐른다. 우드색 젓가락으로 그것들을 섞으면 오일이 묻어 조금 무거워진다.


나는 얇은 파프리카 한 가닥을 들어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별 노력 없이도 그것들은 금방 잘게 저며지고 그 사이로 단 맛이 흘러나온다. 한 번에 하나만 씹기에는 감칠맛이 나서 여러 개의 파프리카를 넣어본다. 같이 끼어 들어온 양상추에 배어있는 올리브 오일이 풍만한 맛을 낸다. 입술에 올리브 오일이 묻자 나는 혀로 살짝 입술을 핥는다. 그러자 어딘가에서 레몬즙의 상큼한 맛이 살짝 느껴진다.


#나무의 맛 : 양송이버섯

큼지막한 버섯 네 송이를 채 썰어 달군 팬에 넣자마자 그럴 싸한 향이 올라온다. 흰색의 버섯들이 노르스름 해 갈 때쯤 갑자기 어디선가 물이 나온다. 이럴 수가. 너무 익혔나 싶어서 나는 당장 불을 끄고 그것들을 하나씩 들어가며 접시에 가지런히 놓는다.


살짝 익히고 싶었는데 입에 넣어보니 묵직하고 미끄덩한 것이 느껴진다. 길이가 큰 것들은 입천장을 살짝 치고 들어와 내 입의 작은 평수를 차지하고 눕는다. 나는 주의 깊게 미끄덩한 것들을 잘게 씹어본다.

젖은 나무의 향기가 확 느껴진다. 만약에 우리가 나무를 먹을 수 있게 된다면 가장 비슷한 맛은 버섯의 맛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두 가지를 먹는데 30분이 걸렸다. 물론 먹으면서 적잖이 메모를 했다. 먹으면서 쓰기를 동시에 한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그런 행동 자체 만으로 나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것 같다. 먹고 쓰고 먹고 쓰고.


환기를 한다고 집 안의 모든 문을 열어두었다. 오늘은 24도까지 올라간다고 하는데 지금 방문을 다 열어 반팔 차림으로 앉아 있는데도 춥다는 생각이 안 들고 오히려 상쾌하다. 하지만 몸속에는 뜨거운 것을 채우고 싶다는 욕구가 가득하다. 나는 압력밥솥이 자신의 일을 다 마무리하기만을 기다렸다. 뜨거운 김이 서린 밥솥을 열어 그 안의 고구마를 꺼냈다.


#뜨겁고 노란 나의 군고구마


가지런한 나의 병정들, 그중 하나를 꺼내와 껍질을 벗긴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에 가져온다. 달짝지근한 향기. 노란 실들이 입 안을 간지럽히며 돌아다닌다. 씹지 않아도 이것들이 내 혀를 비켜 어디론가 사라진다. 벗기고 입에 넣고를 반복하니 어느덧 나의 왼손 엄지와 검지가 진덕 하다. 한 손으로는 메모를 하고 한 손으로는 껍질을 벗긴다. 그러면서 나는 오늘 또 궁금해했다. 어떻게 땅 속에서만 자란 이것들이 이렇게나 달짝지근한지.


이렇게 샐러드와 버섯구이, 고구마 두 입을 먹으니 한 시간이 흘렀다. 벌써 두 시네. 일요일의 행복한 오전 시간이 마무리되었다. 다시 작업에 들기에 앞서 무엇을 마실지 고민하고 또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계획을 세워본다. 역시, 뭔가 안 풀릴 때는 먹어보는 것이 최고다.(웃음) 텐션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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