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쓰긴 썼다
자발적인 작가 되기를 실천하기 위해서 4월은 '공모전'을 목표로 두고 글을 썼다. 다행히 마감까지의 기간이 약 한 달가량 남았을 때쯤 소설 초고를 마무리했고 퇴고를 하면서 쓴 글들을 공모전에 업로드를 했다.
그리고 오늘로 약 100장가량의 소설의 퇴고를 마무리 지었다.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말처럼 출력해 둔 초고는 정말 구김이 지고 너덜거려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내가 쓴 초고 안에 x자가 가득하다. 정말이지 초고에 썼던 내용 절반 이상을 드러내야 했다. 초고를 쓸 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등장인물의 이름도 바꾸고 어떤 챕터는 아예 새로 쓰기도 하면서 '아. 이래서 쓰레기라고 하는구나.'라는 공감 아닌 탄식을 내뱉게 되는 일이 많았다.
사실 퇴고를 마무리했다고 해서 글이 엄청 마음에 들거나 자랑스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뭔가 계속 모자란 구석이 있는 것 같고 처음에 쓰려고 했던 것이 마지막까지 잘 전달되었는지 확신이 없는 데다가 심지어 전편에 걸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름을 틀리지 않고 동일하게 썼는지 헷갈리기까지 하다
이런 불확실 속에서 내가 얻은 것은 착잡한 마음과 더불어 손목 통증과 늘어나는 장비다.
착잡한 마음은 위에서 언급을 했으니까 제외하고 손목에 대해서 말하자면 요 며칠간 손목이 정말 아팠다. 퇴고를 하면서 두세 시간을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나마 요가를 해서 이 정도지 평소 손목 운동을 전혀 안 하는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심했을 것이다.
다행히 최근 약국에서 바르는 파스를 하나 사서 손목에 바르고 있다. 스위스제로 비싼 제품인데 그걸 바르면 플라시보인지 몰라도 덜 아프다. 또 효과를 떠나 위안이 되는 것 같다. 통증을 느끼며 이 또한 작가의 몸이 되어가는 과정이려니 생각하게 된다.
지난주부터는 어떤 자세로 글을 쓰면 덜 아플까를 고민하다가 '작가 키보드', '작가 장비' 등을 검색해 봤고 키보드라는 신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대부분 키보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작가 아님 개발자인 것 같다. 글을 쓸 때 자판 소리가 나는 것과 아닌 것, 키보드를 누를 때의 그 무게감이 가볍고 무거운 것 등 선택의 옵션이 많다. 이런 분류를 따라가다가 내가 마주한 것은 리얼포스와 해피해킹 키보드였는데 마침 개발자 동료가 중고로 팔려고 한 것이 있어 얼떨결에 그것을 구매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갑자기 크고 무거운 키보드가 생기니 노트북을 공중에 띄워 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생겼고 따라서 노트북 거치대와 키보드 위의 손목에 날개를 달아줄 팜레스트를 추가 구매하게 되었다. 자발적인 작가 되기를 위한 쇼핑이 한참 진행되었다가 이제는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장비가 다 도착하지 않은 시점에 퇴고가 끝나버렸다. 뭐 앞으로도 계속 쓰긴 할 거니까...
내가 자발적으로 작가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나서 참 다행인 것은 참여할만한 공모전들이 줄지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교보문고의 공모전인 '창작의 날씨'가 두 차례에 걸쳐 나와있고 5월부터는 웹소설 플랫폼인 문피아에서도 큰 공모전을 진행한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브런치 공모전이 있다.
모든 공모전이 순차적으로 예정되어 있는 가운데 나는 이번 창작의 날씨 공모의 시놉시스만 마감을 치면 잠깐 소설에서 떨어져 에세이 쓰는 데에 시간을 더 투자할 생각이다. 에세이를 쓸 때는 노트북 거치대와 팜레스트를 쓰고 따닥 거리는 소리가 없는 리얼포스의 자판기에서 우아하게 작업해야지...
오늘 퇴고를 마무리하며 이 찜찜함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앞으로도 좋은 공모 기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