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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Sep 03. 2023

생각의 전환

13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렇게 책임감 없이 나가면 어쩌라는 거예요?"


처음으로 열정을 쏟아 노력한 일인데 빌런같은 상사가 다 망쳐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노력했던 일들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아 울적했다.


나의 하소연을 한참 듣고 있던 손 대표가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몰라요. 저도...일단 뭐라도 해봐야죠. 다행히 시간은 좀 있어요. 손 놓고 있으면 안됐는데…이제 와서 보니 다음 프로젝트의 진행도 절반 밖에 안되었더라고요. “


회사 일을 생각하자 자연스럽게 한 차장이 떠올랐다. 맨날 잘난 척, 다 할 수 있는 척, 여유로운 척하더니 대체 뭘 믿고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속에서 열불이 났다.


"속상한 건 알아요.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일을 해결하는 거예요."


손 대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런 인수인계도 없이 잠수와 다름없는 퇴사, 그 때문에 나는 마치 빚보증을 잘못 선 사람처럼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그의 일을 대신하고 있었다. 해결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배신감에 온몸이 파르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열정적으로 일해서 이번에는 제대로 성과 내보려 했는데. 다 엉망이 된 기분이 들어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그는 재킷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지난번 받았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카드였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서 천천히 살폈다. 분명 처음에는 빳빳한 재질이었을 그 카드는 손때가 묻어 여기저기 빛이 바랜 모습이었다. 카드 테두리에는 금테로 둘린 장식이 있었고 그 안에는 새로운 키워드가 쓰여 있었다.


"새로운 카드를 드릴 때가 되었네요.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책임'이에요." 


나는 카드에 새겨진 글자를 바라봤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어쩌면 책임 카드를 전하기 위해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지에 집중해 봐요."


"그러니까 대표님 얘기는...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얘기죠? 좋게 좋게 생각하라는 거잖아요."


"아뇨, 것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는 말이에요. 긍정적이란 건 모든 일을 좋게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긍정은 눈앞에 일어난 일을 인정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다음을 향해 가는 거죠. 그게 진짜 긍정적인 행동이에요."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게 긍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나쁜 일이 일어나도 별일 아닌 것처럼 웃어 넘기는 사람, 상사에게 혼나도 천연덕스럽게 괜찮다고 웃어넘기는 사람, 그게 내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김 과장님도 알잖아요. 그건 진심이 아니란 거요. 정말 화나는 상황에서 겉으로만 괜찮은 척하는 건 긍정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죠."


"그런 생각은 해 본 적 없어요.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했으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래요."


나는 다시 카드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 손 대표가 일러준 다음 단계의 일이었다.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풀어야 할 숙제를 얻었다. 그러고 보니 회사 다니고 나서 한 번도 책임지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든 책임을 떠맡지 않으려고 했고 일이 잘못될 기미라도 보이면 피하느라 바빴다.


"지금부터는 다를 거예요. 책임지려고 하는 순간 오히려 모든 일이 잘 풀릴지 몰라요."


손대표는 어려운 문제가 생길수록 도망가곤 했던 내 행동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몇 마디를 더 건넸다.


"김 과장님,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다고 생각하죠?"


"네. 당연히요."


"성공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점이 뭔 줄 아세요?”


"뭐... 날 때부터 뒷배경이 좋았다?"


"그것도 맞죠.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성공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했다는 것이에요. 남들보다 더 열정을 내고, 더 책임지려고 한 것, 그게 나중에 큰 차이를 만들죠."


예전에 읽었던 많은 자기계발서 책들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그저 책에 쓰인 좋은 구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 것이 지금은 힌트처럼 느껴졌다.


"열정 다음은 책임이네요.."


손대표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썬샤인 투자사도 모든 고객의 자금운영을 제대로 책임지려고 노력했을 때 큰 성장을 이뤘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얼마 전 포털 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가 떠올랐다. 가장 상단에는 그가 포브스와 한 인터뷰가 올라와 있었다.

손대표가 내세웠던 회사의 핵심가치는 열정, 책임이었다.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그건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손대표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하필 또 나인지, 어째서 한 차장이 망쳐놓은 일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지 생각하느라 바빴다.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손 대표가 건넨 카드를 조심히 챙기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지금의 모든 상황이 하나의 과정 일지도 모른다.


"시선을 바꿔 생각해 보면 어때요? 늘 방해를 일삼던 한 차장이 나간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르잖아요. 김 과장님이 한 차장의 일을 대신하면서 능력을 키울 수 있다면요?"


손 대표의 말처럼, 지금 이 상황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니 기분이 나아졌다. 더 이상 시무룩해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당장의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을 방해하던 한 차장이 나간 것이 다행인 것일지도 모른다. 최근의 일들이 나중에 후일담으로 남아 나의 성장을 더 빛나게 해 줄지 모른다.


"그럼 다음에 또 봬요."


 나는 손대표에게 손을 흔들고선 회사를 향해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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