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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Feb 06. 2024

캐나다 게스트가 보낸 긴급 문자

12월 한파를 뚫고 게스트가 도착했다. 캐나다 퀘벡에서 20시간 넘게 걸려 우리 집에 도착한 게스트는 긴 백발 머리를 질끈 묶고 큰 배낭 두 개를 매고 온 그야말로 여행자 그 자체였다. 프랑스어, 스페인어에 이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왔다는 게스트는 아주 어색한 말투로 내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이름은 제시카, 한국 여행은 처음이며 5주 동안 전국 곳곳을 돌아다닐 계획이었고 심지어 제주도에서는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어학당에 등록해 두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3일, 이후에 제주도를 거쳐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질러 충청권을 돌아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면서 들뜬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제시카와 나의 짧은 동거가 시작되었다.



제시카가 받은

첫 번째 긴급문자


시차 적응으로 괴로워하던 제시카는 다음 날 아침, 다소 걱정된다는 투로 물었다. 어젯밤에 ‘긴급 문자’를 받았다며 내게 ‘너도 받았어?’라고 물었다. 나는 평소 긴급 문자를 꺼놓고 있어 어떤 알람이 왔는지 몰랐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제시카가 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자신의 핸드폰을 건넸다.


“한국어로 되어있어 잘 모르겠는데… 혹시 이거 북한에서 어떤 일이 생겼다는 내용이니?”


문자의 내용을 보고 픽 웃음이 나왔다.

‘한파주의. 가급적 외부 활동을 자제해 주십시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제시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날씨가 춥다고 알려주는 거야. 너무 추우니까 나가지 말라고.”


그러자 제시카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북한 소식인 줄 알고 깜짝 놀랐어. 휴우… “

그러면서 추운 날씨를 이유로 긴급 문자가 온다는 것에 신기해했다.


“캐나다는 지금 이것보다 더 추워. 영하 50도 정도야.”


그날은 영하 10도를 웃도는 날씨였다. 나는 ‘핍틴(15)‘을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다시 확인했다.

그러자 제시카는 정확히 말해주었다.

“노 핍틴, 핍-티이”


우리는 남한과 북한에 대한 얘기를 짤막하게 나눴다. 한국에 처음 온 게스트를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북한이슈에 둔감한 쪽은 역시 내 쪽이다. 큰 전쟁이 두 건이나 있는 현재, 휴전 상태의 나라에서 이렇게 안전함을 느낀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시카가 보낸

두 번째 긴급 문자


제시카는 12월 한파를 뚫고 야무지게 전국 투어를 했다. 그리고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제시카가 부탁하고 남긴 짐이 5주 동안 우리 집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상하게 제시카가 돌아왔을 때, 오랜 친구가 돌아온 것처럼 친근함을 느꼈다.


여전히 등산화와 등산가방을 멘 제시카는 우리 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한국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며 남은 시간 동안 한국에서 최대한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갈 거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그녀는 점심, 저녁까지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어느 목요일, 저녁 8시 즈음해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제시카가 보내온 것이었다.


“도와줄래요? “


나는 그 한 줄 메시지를 받고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게스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혹시 사고라도,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쩌지 싶어 몇 초 동안 심각해했다. 적어도 제시카가 어떤 주소를 보내주기 전까지 말이다.


나는 낯선 주소 링크를 눌렀고 그 링크는 바로 카카오맵으로 연결되어 '버들골 이야기'라는 상호를 보여줬다.

이어 제시카가 다급하게 한 장의 사진을 더 보내왔다.


"만나실래요?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 있는데 큰 접시인지 모르고 주문했어요." 문자만 보면 완전히 플러팅이다.


사진을 보니 엄청나게 큰 전골냄비에 떡볶이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멋모르고 주문한 떡볶이


몇 분 뒤, 나는 제시카를 구하러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술집으로 갔다. 때는 오후 8시 즈음, 대학생들의 왁자지껄함 속에 혼자 멀뚱이 앉아 초초해하는 제시카의 뒷모습이 보였다. 큰 전골냄비를 앞에 둔 채 그녀는 혼자서 막걸리를 따라 마시고 있었다. 노란 놋그릇 접시 위에 젓가락과 숟가락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으로 봐서 다행히 젓가락질은 능숙해진 것 같아 보였다.


"제시카, 엄청 큰 떡볶이를 시켰네요."


"이렇게 큰 것인 줄 몰랐어요."


"막걸리도 마셨어요?"


"이거 너무 괜찮아요. 한 잔 마실래요?"


그렇게 나는 제시카가 따르는 막걸리 한 잔을 받았다. '짠'하며 우리 둘은 잔을 부딪혔다. 누구에게 배운 것인지 모르지만 제시카는 나름의 예의를 갖춘다고 고개를 돌려 술을 마셨다.


"한국의 술 예절을 배웠어요."


"나이가 더 어린 사람이 고개를 돌리는 거예요."


우리는 이런 술 예절에 대해 얘기하고 또 한국의 떡볶이의 훌륭한 맛에 대해 논했다. 그렇게 제시카가 보낸 긴급문자에 술 한잔을 나눠마셨다. 내 생애 처음 캐나다 사람과의 술자리였다.


제시카를 만나기 전까지 캐나다에 대해서도, 그 나라의 추위와 음식 그리고 거기에서 자라는 나무 종류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대화를 나눌수록 내가 아는 세상의 반경이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제시카는 돌아가고 없지만 종종 그녀가 불러낸 술집을 지날 때마다 큰 대접의 떡볶이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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