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요가 에세이 <생각은 멈추고 숨은 내쉬세요> 24화
나는 스펙 쌓기라는 이름으로 많은 공부를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원을 다녔고 주말 온종일을 논문 쓰는 데에 시간을 써서 어렵게 졸업했다. 토익, 토플, 영어 회화 이외에도 회사에서 쓸모 있을 법한 강의를 수두룩하게 들었다. 퇴근 후에는 온라인 강의를 듣고 주말에는 독서모임, 봉사활동 등 커리어에 도움이 될만한 일들을 했다. 처음에는 나름 보람도 있고 배우는 것들이 많아 성취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스케줄을 2-3년 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날마다가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러다 몸이 크게 아팠다.
나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요가를 시작했고 예전에 미처 알지 못한 내 몸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점심 이후 바로 마셨던 아메리카노가 내 위장을 얼마나 붓게 만들었는지, 좋지 않은 자세 때문에 생긴 거북목과 굽은 어깨가 얼마나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점점 안 좋은 습관들을 버리면서 속 쓰림이 사라졌고 좀 더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서 나의 퇴근 이후 생활은 자연스레 요가가 차지하게 되었다.
몸에 집중하는 일이 많아지자 운동하는 것이 즐거워졌고 어떤 자세를 할 때도 더 바른 자세로 정확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걌다. 또 예전에 비해 동작이 잘 될 때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퇴근 후 공부를 하거나 온라인 강의를 듣겠다는 의지는 좀 사라진 것 같았다. 이력서를 업데이트한 것도 굉장히 오래되었고 날마다 했던 외국어 교재도 어디 있는지 찾기 힘들 정도가 되니 괜히 불안해졌다.
"예전에 비해 커리어에 대한 열정이 많이 식은 거 같아요." 나는 달라진 일상 때문에 생긴 고민을 요가 선생님에게 털어놓았다. 다른 동료들을 보면 여전히 많이 배우고 세미나도 참석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나는 퇴근 후 요가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이다. 그러자 선생님은 내 고민을 듣고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이런 답변을 내어주었다. "정말 필요해서가 아닌, 그걸 하지 않으면 내가 못난 사람이 될까 봐 한 것이 아닌지 살펴봐요. 남들에 비해 스스로를 모자라다고 느껴서 이것저것 한 게 아닌지 말에요."
선생님 말대로 나는 정말 이것저것을 많이 했다. 남들과의 커리어 대결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말이다. 스펙을 많이 쌓아두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아무리 좋은 점수를 받아도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 잘하는 건 당연 헸고 못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 끊임없이 스스로 질책했다. 그런 나 자신에게 익숙하던 때에 요가를 시작하면서 나는 예전과는 다른 성취의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나는 과거의 내 스펙 쌓기와 요가의 차이점을 곰곰이 비교해봤다. 내가 생각한 가장 큰 차이점은 이것이다. 요가에는 시험에서처럼 탈락이라는 개념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매트 위에서는 실패는 없다. 벼락치기가 통용되지 않기 때문에 꾸준히 해야만 발전할 수 있다는 것도 차이다. 또 남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좋다. 그저 내 몸에 맞게 움직이면서 다른 누가 아닌, 예전에 비해 성장한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 요가이니까.
그러고 보면 내 이력서는 예전과 그대로지만 내 일상은 많이 달라졌다. 퇴근 후, 즐거운 마음으로 갈 곳이 있고 술을 마시지 않아도 잠이 잘 온다. 또 허리둘레가 줄어들어 청바지를 한 치수 아래로 사 입게 되었다. 영어 점수 100점 올린 것보다 빈야사를 100번 한 경험이 내게는 더 기념적인 일이 되었다.
예전에는 성장의 개념을 착각했었던 것 같다. 이것저것 많이 해서 어떤 점수를 획득하면 그게 성장이라고 생각했다. 이력서에 한 줄 넣을 수 있을만한 것들이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들이라고 오해했다. 그래서 스펙 쌓기에 전념했다면 요즘은 그야말로 내 몸과 내면을 강인하게 만들기 위해 시간 투자를 하고 있다. 상체 숙여서 발가락 잡기, 어깨서기, 바른 자세로 다운 독을 하기 등을 이력서에 넣을 수는 없겠지만 아무렴 어때, 나는 지금 하나 둘 이런 동작을 만들어 나가면서 성장의 빅 재미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