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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Jan 17. 2023

나의 동료들은 나랑 일하는게 재밌을까요?

2023.01.14 2번째 일기

To.찌니님

얼마 전 커리어 글쓰기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나의 과거 경험을 돌이켜보며 신나서 재미있게 일했을 때, 혹은 스스로 만족스러운 성과를 냈던 때가 언제였나요? 물 만난 고기처럼 일한 환경이 언제였는지, 반대로 나를 힘들게 환경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이 질문을 받고 나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써 내려갈 수 있었는데 여기에 이어진 의문은 함께 일하는 나의 동료들은 과연 신나게 일하고 있을까? 에 대한 의문이었어요.


내가 신나고 재밌게 일한 순간 vs 그렇지 않은 순간

합이 맞는 동료들과 같은 방향을 향해 헤쳐나간다는 느낌을 얻었을 때가 가장 신나고 재밌게 일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에 어려움이 있어도 서로 격려하고 같이 이야기를 해나가고 해결방안을 찾으면서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보람됨은 제 직업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 아닌가 싶어요.

반대로 일하면서 가장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순간은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을 때 입니다. 같은 목표를 가진 프로젝트를 진행함에도 방안을 논의 해주는 동료가 없어 혼자 애타게 여기저기 방법을 찾아다녔던 경험. 혼자 머리를 싸매고 밤새 고민을 했던 시간들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런 경험들을 겪어오며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의 재미를 주는 환경의 기준은 마음이 맞는 동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동료들은 어떨까?

저의 팀에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일당백의 역할을 해주고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여주는 동료가 있고 저도 이런 동료를 만나게 되어 너무나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와중에 걱정이 많은 제가 고민을 하고 있는 건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제가 이끌어가는 이 환경에 만족을 하고 있을까?'에 대한 고민입니다. 저는 저도 우리의 팀도 재밌고 즐겁게 일하길 바래요. 찌니님은 함께하는 동료들의 행복을 느낄 수 있나요?




To. 낮잠님

저의 경우, 내가 신나고 재밌게 일한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은 늘 혼재되어 있던 것 같아요. 동일한 일임에도 그 양분화된 감정이 늘 함께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 이 질문이 있었던 것은 스스로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찾아보라는 의도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순간에 존재하는 감정은 나의 지난 행동에서 인사이트를 발견하는 회고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자신이 일을 하면서 감정선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를 확인하는 것이라면 적합한 질문인데, 낮잠님의 평소 성향을 판단했을 때 회고가 디폴트인 사람이라 애초에 이 질문을 통해서는 본인이 얻고자 하는 해답을 찾기 보다는 고민만 증폭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의 경우에는 회고를 할 때 늘 이 일의 Why가 뭐였고 내가 어떤 Motivation을 가지고 움직였는지부터 생각합니다. 저는 가능한 어떤 일의 시작과 끝에서 늘,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내가 이 일을 함으로서 무엇을 배울 수 있고, 무엇을 거둘 수 있고, 동료에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인지 등 명확하게 정리되도록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내가 일을 행복하게 하려면 그 전제 조건은 무조건 내가 컨트롤 가능한 범위의 조건들을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제 성향이 그런 면도 있지만…) 가능한 일에 감정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감정의 영역은 제가 도무지 컨트롤 할 수 없거든요. 하지만 앞에 말한 명료한 전제들은 제가 마음 먹는 것에 따라 컨트롤이 가능한 영역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일이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같이 하는 이들이 누군지 상관없이, 자신의 기준에서 그 일의 행복이나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저는 낮잠님에게 커리어 글쓰기를 중단하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씀 드리는 이유는 낮잠님은 커리어 글쓰기가 아닌 자기객관화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에요.

<이런 경험들을 겪어오며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의 재미를 주는 환경의 기준은 마음이 맞는 동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보고 당장 커리어 글쓰기 활동을 중단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맞는 동료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런 게 모호한 상황에서 그 동료들은 낮잠님이 인사권을 쥐고 있어도 모으기 쉽지 않을 겁니다. 요즘 모든 회사가 인력에 의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 여러 이유가 있죠. 그 문제 상황을 모두 돌파하고 그런 동료들을 모으는 게 쉬울까요? 심지어는 그런 환경이 무너지는 일도 일상다반사죠. 그럼 대체 낮잠님은 언제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걸까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의 환경은 내가 컨트롤 가능한 영역 안에 존재해야 합니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의 환경에 들어가는 순간 괴로움만 남을 수 밖에 없어요. 본인이 일의 재미를 주는 환경이 마음이 맞는 동료들이란 걸 알아낸 건 결과론적인 이야깁니다. 

낮잠님이 그런 동료를 알아낸 과정에 시선을 옮겨가 보세요. 장담할 수 있는데, 마음이 맞기까지 분명 마음이 서로 맞지 않는 시간과 과정이 존재했을 겁니다. 사실은 그걸 거쳤기 때문에 마음 맞는 동료를 찾아낼 수 있게 된 거죠.

그럼, 마음이 서로 맞지 않는 시간과 과정을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이건 나의 인내죠. 동료들의 인내구요. 그럼 그 인내의 이유는 어디에 있냐는 거에요.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 ‘우리가 이 일을 왜 하는가, 이 일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하는 질문에 도달하게 될 겁니다.


낮잠님 팀에 어려운 환경에서도 일당백의 역할을 해주고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여 주는 동료가 있고 저도 이런 동료를 만나게 되어 너무나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죠? 그 동료를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보고 있을까요?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 동료는 왜 낮잠님에게는 그런 사람일까요? 그건 낮잠님이 그렇게 움직일 마음이 들도록 만드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낮잠님이 팀원들과 어떤 일에 도전할 때 킥오프 미팅을 통해서 이 일을 왜 하고 우리가 이 일로 어떤 성과를 얻고자 하고 우리 회사에 어떻게 기여를 하고자 하고 각자의 어떤 역량들을 키웠으면 하는지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걸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게 낮잠님의 마음에 맞는 동료를 만들어주는 비밀입니다.


낮잠님은 자기객관화를 통해 본인이 이미 손에 쥐고 있는 행복을 마주 잡는 것부터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한테 물으셨죠? 찌니님은 함께하는 동료들의 행복을 느낄 수 있냐구요. 

네, 저는 느낄 수 있습니다. 왜냐면 저는 제 행복을 정확히 판별할 수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저는 제가 행복하다고 느끼는데 동료들이 안 행복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대체적으로 제가 행복할 때 동료도 행복했습니다. 그건 같이 일한 낮잠님이 제일 잘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힘들게 일했지만 정말 즐거웠던 때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잖아요? 그 때 낮잠님을 돌이켜보세요. 정말 그때 함께 일할 때 찌니님이 나랑 일해서 행복할까를 생각한 적이 있었나요? 낮잠님은 이미 제가 행복한지 알고 있었을 거에요. 

낮잠님이 그 때 행복했기에 다른 사람의 행복을 알 수 있었던 거거든요. 지금은 본인의 행복을 눈치채지 못하기에 남의 행복도 눈치챌 수 없는 거에요. 어제도 이야기 했지만 중심을 ‘나’로 옮겨가세요. 지금 낮잠님은 그것부터 하셔야 해요.


※ 이 글은 찌니와 낮잠이 공동으로 쓰고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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