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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Oct 11. 2023

1년에 1.2대 바꾸는 차에 미친 남자

본격 남편 자랑 에세이 '빵세 리포트' 6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 남편, 너무 좋은 사람이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100 중에 99를 잘하는 사람이고 어쩌다 한번 1을 못하는 사람인데, 그 1이 99에 맞먹는 임팩트를 가진 사건을 친다. 이번 이야기는 아마도 와이프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가 막혀하지 않을 수가 없을 거다. 바로 이 훌륭한 남편님께서 나와 연애를 시작하고부터 총 16대의 차를 바꾸셨다는 것이다.


집에서 게임이나 가끔 하고 애니메이션이나 보고 책이나 보고 남들처럼 돈이 별로 안 드는 취미 생활들을 가지신 우리 남편께서는 차를 바꾸는 '돈이 매우 많이 드는' 취미 생활을 하나 가지고 계신다. 본인은 이것은 취미가 아니라 인생의 유일한 낛이라는데, 약 13년 동안 16대의 차를 바꾼 건 취미 생활도 넘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나에차는 이동 수단일 뿐, 기술이 어쩌고 디자인이 어쩌고 뭐가 되었던 별로 차에 대한 관심이 없다.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차의 헤드라이트만 봐도 무슨 찬지 알았고 비교적 높은 층에 살았던 본인 집에서 어렸을 때부터 지나다니는 차가 뭔지 맞추는게 놀이였을 정도로 차를 좋아했다. 지금도 신차가 나오면 시승 예약을 해서 다 타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고, 차에 대해 정말 모르는게 없을 정도이다. 차를 너무 좋아해서 일부러 차와 관련된 직업은 선택하지 않으려고(좋아하는 게 일이 되어서 싫어질까봐 싫었다고) 했다고 할 정도다.


결혼 전에는 차를 바꾸던 말던 내버려뒀지만, 결혼 후에는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부부 공동의 재산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결혼 초기에는 차를 바꿀 때 각서도 받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정말 대단한게...자기가 원하는 일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집요하기 이를 때가 없는 사람이라, 결국 자기 원하는대로 상황이 되도록 만들었다. 허락을 받는 것보다 용서를 구하는 게 낫다며 혼나기를 여러 번, 내가 관심이 있든 없든 차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는 등 결국 지금은 내가 포기를 했다. '그래 이거 하나로 일년에 한번 크게 기뻐하면 뭐...그냥 원하는 대로 해주자, 내가 더 많이 벌면 되지'라고 생각하게 되기에 이르른 상태다.


얼마전 현재 스코어 마지막 차를 바꿨을 때, 나는 남편에게 13년 간 당신을 거쳐간 16대의 차에 대해 기록을 해보라고 했다. 본인이 과거를 돌이켜보며, 굳이 바꿀 필요가 있었나, 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낭비를 한 건가 생각해보라는 의미에서 준 미션이었다. 그러나 내 의도와는 다르게 아주 그냥 세상 제일 소년미가 넘치는 우리 남편께서는 자기의 16대의 차들과 추억의 연대를 끈끈하게 하는 행복의 시간으로 승화하시며 나를 또 한번 절망시켰다.


1. 올뉴마티즈 (08년~10년 4월)

남편의 감상 : 첫 차. 뒤지게 작았지만 혼자타긴 나쁘지 않음. 열선시트가 운전석에만 있는 기묘한 옵션을 보여줌. 이차를 팔기 직전 와이프를 만남.

나의 감상 : 처음 차에 탈 때 바닥에 각종 쓰레기가 춤을 추고 있어서 당장 치우라고 혼냈음. 이 차를 타고 전국 여행을 했던 이야기나 대우자동차가 GM대우로 합병되기 직전 구매해서 마크가 이렇느니 했던 이야기가 생각남.


2. 쏘울 (10년 4월~11년 4월 정도)

남편의 감상 : 1년 남짓 탄 차이지만 당시엔 매우 만족. 쉽게 보기 힘든 디자인과 나름의 괜찮았던 옵션 보유. 여담으로 엄마가 제일 마음에 들어함 왜지?

나의 감상 : 남편이 차 안에 나를 위한 온갖 편의아이템을 갖춰두었던 것이 생각남. 나를 만나기 전에 늘 깨끗한 내부 상태로 와서 기분이 매우 좋았음. 분명 남편이 계속 이 차는 오래 탈 거라고 마음에 든다고 했었는데 1년 뒤에 바꾼다고 해서 황당했음.


3. 뉴카렌스 (11년 4월~11년 9월 정도)

남편이 사진이 사라졌다고 통곡하며 찾아준 이미지

남편의 감상 : 당시 친구의 렉스턴을 타보고 큰 차에 대한 갈망이 커지던중 LPG 연료를 사용하고 RV차량으로 내부가 굉장히 컸던 이유로 중고 구매. 태어나서 현재까지 유일하게 차량 내부 조명 튜닝을 해본 차량.

나의 감상 : 소울과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었던 차. 차량 내부 조명 튜닝까지 한 것 치고는 반년도 안되서 너무 빨리 바꿨음. 왜 시간과 애정을 투자하는 듯한 행동을 한 건지가 이해 안되었음.


4. 스포티지 (11년 9월~11년 11월 정도)

이건 안 남기고 싶었다고 하며 찾아준 이미지

남편의 감상 : 이 차는 내가 왜 중고로 주워와서 타고 다녔는지 아직까지도 의문. 모든게 구림, 심지어 기어버튼을 누르지도 않았는데 후진으로 가는 치명적인 결함도 있던 차량. 모든게 구렸음.

나의 감상 : 나는 어땠겠냐고 묻고 싶은 차. 대체 왜 바꿨는지를 모르겠음.


5. 아반떼HD (11년 11월~12년 4월)

남편의 감상 : 결혼식 차량의 역할까지 잘 마쳐준 차. 당시 직장선배형님의 차량을 중고로 업어옴. 현대자동차로 입문한 차량. 대부분의 부분들이 만족스러웠던 기억. 본네트를 검은색 카본 시트지로 발라버렸던 바보같은 추억을 안겨준 차.

나의 감상 : 앞의 실패를 무마해줄만큼 분명 잘 타고 좋았던 찬데...그놈의 카본 시트지를 때어냈어야 했지만...이때 잘 버텼어야 하는건데, 이 때 이 차를 지켜내지 못한게 천주의 한임.


6. 골프TDI 6세대 (12년 4월~13년 4월)

남편의 감상 : 신혼여행 가기 전 미리 직장선배와 견적도 내보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이 가던 차량. 선배가 하얀색으로 먼저 출고를 하여 이성을 잃었던 기억. 신혼여행지에서 와이프를 설득하느라 참으로 고생했던 추억.

나의 감상 : 신혼여행 내내 나를 조르고 졸랐던 차. 남편이 나를 설득한다고 독일의 아우토반이 어쩌고, 독일의 차량 기술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음. 차를 더는 바꾸지 않겠다는 첫 각서를 쓰고 바꿈.


7. YF소나타 하이브리드(13년 4월~13년 11월 정도)

남편의 감상 : 골프를 구매한 운용리스를 잘못 이해하고 계약한 결과 손해가 제법 있었음. 와이프에게 겁나혼나고 반납을 서둘러야했기 때문에 급하게 알아본 차량. 현재까지 운행중인 하이브리드의 입문 차량. 거의 모든 부분이 만족. 다만 완전 초기형의 현대 하이브리드여서 배터리 부분의 에로사항이 상당했던 기억.

나의 감상 : 골프 리스 이슈로 진짜 터져서 남편도 눈물 쏙 빠지게 혼나고 바꾼 차라 애정은 없었음. 차를 더는 바꾸지 않겠다는 두번째 각서를 쓰게 했던 차.


8. 올란도(13년 11월~14년 7월)

남편의 감상 : 마티즈 이후 오랜만에 쉐보레. 이 차는 정말 우리에겐 별로였음. 컴포트 함을 추구하는 우리 부부에 절대적으로 맞지 않는 승차감. 옵션인 이 차량은 심지어 내부도 작음. 거기에 리무진시트 작업까지 해서 작은 내부가 더 작아짐.

나의 감상 : 각서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승질났고, 이때부터 약간 포기의 감정이 들면서 각서를 쓰지 않기로 함. 승차감이 나빴고 항암할 때 속이 뒤집히게 해서 타기 싫었음.


9. SM3 (14년 7월~15년 5월)

남편의 감상 : 첫 르노삼성 차량. 인터넷에서는 크루즈와 더불어 어마어마한 준중형차량으로 알려져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차는 그다지 생각이 없었지만 암 수술과 앞으로의 항암에 있어 와이프가 올란도는 힘들어했기 때문에 구입. 항암으로 힘들어하던 와이프와 같이 오리역 르노삼성 매장에 갔음.

나의 감상 : 내가 바꾸자고 해서 바꾼 차. 덕분에 편하게 잘 타고 다님.


10. K7 (15년 5월~15년 10월)

남편의 감상 : 5월에 제주도로 이사를 가게 된 우리는 연비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편한 차량을 찾다가 중고로 좋은 매물이었던 이 차량을 발견. 차 내부는 2010년에 구매했던 소울과 다를바없는 인테리어였지만 차량 자체는 매우 만족스러웠던 차량. 이 차 덕분에 내가 준대형만 좋아하게 됨.

나의 감상 : 그냥 남편이 또 바꾼 차.


11. 싼타페 더 프라임(15년 9월~16년 11월)

남편의 감상 : 당시 와이프 직장동료들과 합심하여 와이프를 꼬드기고 꼬드겨 구매. 현대자동차에 대한 인식이 매우 긍정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의 차량. 제주에서 분당으로 다시 이사올 때 배에 실어 완도에서 내린 후 이삿짐까지 옮겼던 효자 차량.

나의 감상 : 그냥 남편이 또 바꾼 차.


12. 알페온(16년 11월~17년 10월)

남편의 감상 : K7의 안락함을 잊지 못한 나는 중고로 알페온을 낼름 구해옴. 알고 지내던 딜러형님 손절하게 된 계기의 차량. 싼타페를 엄청 손해보고 판매하게끔 함.

나의 감상 : 그냥 남편이 또 바꾼 차.


13. 그랜저IG 하이브리드(17년 10월~20년 4월)

남편의 감상 : 내 인생 가장 오래 탄 차량. 그만큼 초만족스러웠음. 준대형은 이런 느낌이다의 표본 같은 차량. 너무 만족스럽다보니 딱히 할말도 없음.

나의 감상 : 가장 오래탄 차. 남편이 10년은 탈 거라고 해서 또 믿고 속음.


14. 쏘렌토 MQ4 (20년 4월~22년 4월)

남편의 감상 : 준대형이 좋으면서 싼타페의 기억이 또 떠올라 계약한 차량. 하지만 이 차량 덕분에 당시 근무했던 직장에서 자재 가지고 다니기 너무 편했던 기억. 8월 한여름 잠깐의 틈으로 손가락 두개 만한 여치가 들어가 온갖 난리를 폈던 일도 있음

나의 감상 : 그냥 남편이 또 바꾼 차.


15. 더뉴그랜저IG 하이브리드(22년 4월~23년 6월)

남편의 감상 : 결국 그랜저를 잊지 못하여 회귀. 다만 코로나로 인한 뱐도체 수급 이슈로 쏘렌토를 더 좋은 가격에 판매함.

나의 감상 : 그냥 남편이 또 바꾼 차. 양가 부모님들이 좋아했던 차.


16. 디올뉴그랜저IG 하이브리드 (23년 6월~현재)

남편의 감상 : 현재의 차량. 만족 그 자체. G80, GV70, GV80 모두 시승해봤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랜저의 승리.

나의 감상 : 제일 마음에 드는 차인데, 남편이 언제 바꿀지 모르겠어서 늘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음.


나는 이렇게 정리된 것을 보고 한숨이 나왔는데, 남편은 '자기 덕분에 너무 좋은 회고의 시간이었다'느니 열 받는 소리를 했다. 그저 순수하게 정말로 해맑게 추억하고 행복한 남편을 바라보며 복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래 나는 이 남자에게 콩깍지가 씌여도 단단히 씌였으니 그의 행복을 위해 웃기로 했다.


언젠가 한번은 남편에게 무리를 해서라도 드림카로 바꿔주겠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남편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거절의 이유는 우리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가 아니라, 드림카를 가지게 되면 차를 바꿔달라고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타볼 차도 많고 앞으로 새로 나올 차도 많은데, 자신은 그 기회들을 놓치고 눈 앞의 달콤함을 탐하는 바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_-^


그래, 바보는 나다. 결국 다 허락하고 용서하는 내가 문제지 뭐. 근데 남편아, 제발 좀! 응? 빵세야, 우리 인간적으로 양심이 있으면 앞으로는 3년은 타자, 응???




다음에 계속.


* 그 뒤에 밝혀진 더 큰 미침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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