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5일, 결혼한지 2년이 채되지 않았을 때 나는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동생에게 전화를 받고 급히 조퇴한 남편이 현관문을 들어서던 순간은 마치 박제된 것처럼 내 머릿 속에 생생하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표정으로 들어선 남편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나를 끌어안고 통곡했다. 지금까지 남편이 나에게 보여준 가장 큰 감정이었다.
그날밤 남편은 나를 뒤에서 끌어안은채로 속삭였다. '너를 꼭 살릴거야, 니가 죽으면 나도 죽을거야'라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했다. 같은 소리가 내가 잠들 때까지 반복되었다. 남편의 다짐같은 그 소리가 억울하고 화나고 무섭던 내 마음을 위로하는 노랫소리 같았다.
암의 크기가 크고 공격성이 강했던 관계로 우선 선항암을 8회 진행하고 수술을 하기로 결정되었다. 항암은 정말로 힘든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보는 남편의 심정은 아마도 만신창이였을 것이다. 가끔 엄마와 동생에게 나를 맡겨두고 남편 혼자 만의 시간을 보낼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는 남편이 홀로 발이 닿는 곳에 있는 사찰에서 108배를 올리러 가는 날이었다.
사실 우리 남편은 무교다. 무교인 남편에게 그나마 정서적으로 가깝고 쉬운게 불교였던 것 같다. 절하는 방법도 잘 모르지만 그냥 우리 와이프 몸의 암세포 좀 죽여달라며 108배를 해봤다고 한다. 힘들었지만 끝나고 나면 정말 자기의 소원대로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정말 남편의 기도빨인지 뭔지, 나는 실제로 수술 후 진행된 최종 검사에서 암세포가 소멸했다는 의미인 완전 관해라는 결과를 얻었다.
총 8번의 항암은 중간에 약을 교체하는 과정도 있어서 더욱더 힘들었다. 부작용은 늘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익숙해지는 일이 없었다. 그 독한 항암제를 맞으면서도 혈관이 잘 버텨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첫 항암을 한 날, 남편은 나를 뒤에서 끌어안고 나중에는 이 모든 시간을 돌아보면 웃는 날이 올거라며 지금은 비극같지만 이 모든 게 희극의 한 부분일 거라면서 이 극을 한번 잘 써보자고 했다. 그러자고 다짐했지만 아직 여물지 않은 30대 초반의 나에게는 힘든 나날이었다. 스스로의 감정을, 몸을 컨트롤 할 수 없는 순간들이 견딜 수 없이 슬펐다.
그러던 어느날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샤워를 하던 도중이었는데 머리카락이 숭숭 빠져서 욕조의 수체구멍이 막혀서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싶었고 슬펐지만 딱히 충격적인 감정이랄 것이 없었는데, 오히려 다음날 차라리 머리를 시원하게 밀자며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밀었을 때 뒤에서 숨죽여서 우는 엄마를 본 순간이 충격을 받았다.
그냥 왠지 그렇게 나도, 엄마도 넋이 나가버렸다. 그런데 퇴근한 남편이 나를 보더니 "뭐야 이 예쁜 달걀은!!! 어머니 얘 비구니 되었으면 불교계에 큰 분란을 일으킬뻔 했어!"라면서 내 머리통을 부여잡고 미친듯이 뽀뽀를 해댔다. 정수리는 또 왜 이렇게 향기로운 거냐며, 어디까지 자길 반하게 할거냐고 너스레를 떠는 남편의 유난에 엄마도 나도 그야말로 빵 터졌다. 그리고 그 날부터 매일 밤마다 남편은 내 머리에 뽀뽀를 하다가 잠드는 것이 남편의 잠자기 전 루틴이 되었다.
심지어 우리 막내 이모네서도 이랬음...
아직 신혼이고 가임기였던 나의 상황 때문에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나는 항암을 하는 동안 난소를 보호하기 위해 졸라덱스라는 난소 보호 주사를 맞았다. 이 주사는 액체가 아닌 고체 주사라서 주사바늘이 젓가락만한 굵기와 사이즈라 아픈 건 둘째치고 비주얼의 공포감이 컸다.
내가 처음 주사를 맞고 나와서는 울먹이며 남편에게 젓가락만한 주사가 내 배를 찔렀다며 구멍이 뽕 났다고 했는데, 사실 남편은 그런 주사는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어서 내가 아프더니 어리광이 늘었다고 생각했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한 5~6번 맞았을 때였나...우연히 간호사 선생님이 왠 무시무시 주사를 들고 가길래 놀라서 봤는데 그 분이 내가 있는 침대로 들어가는 걸 보고 남편이 큰 충격을 받았다. 주사를 맞고 온 내 손목을 붙잡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남편은 '나는 자식은 필요없어, 너에게 이런 잔인한 시간을 견디게 만들고 싶지 않다'며 주사를 중단하자고 했다. 그러나 결국 내가 원했기에 주사를 맞기로 했고 끝까지 내가 주사를 맞는 것을 피하지 않고 지켜봐줬다.
10시간 반 가까이 되는 대수술을 마치고 나온 나에게 남편은 정말 멋있다, 자랑스럽다, 대단하다며 칭찬을 퍼부었다. 목숨을 건 싸움에서 이겼으니 대단한 사람이라며 이런 사람을 와이프로 둔 자신이 너무 뿌듯하다고 했다. 나는 마치 뭔가 나라라도 구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입원 기간 내내 활기차고 경쾌해 보이던 남편은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야 속내를 털어놓았다. 정말 버텼다고 아파하는 나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밝은 기운이라도 주고 싶어서 죽을만큼 노력했다고. 그리고 내가 수술을 들어가기 전 남편은 유서를 썼었다고 했다. 내가 만약 잘못되면 필요한 정리를 해두고 일주일 뒤에 스스로 생을 마감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남편이 쓴 유서에는 나와 함께 묻어주기를 바란다는 말과 양가 부모님들께 죄송하다는 말, 나와 자신의 보험금 및 재산 전반에 대한 처리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내 보험금은 친정 부모님과 내 동생에게 균등하게 나누고, 자신의 보험금은 시부모님, 아가씨, 친정 부모님, 내 동생에게 균등하게 나누고, 우리 재산에 대해서는 나의 기여도가 더 높았기에 친정 부모님과 내 동생에서 더 나누는 식으로 정리를 해두었고, 강아지들에 대해 내 동생에게 부탁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유서를 부여잡고 펑펑 우는 나에게 이제는 필요없는 쪽지가 되어서 너무 행복하다며 내가 사람을 여럿 살린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 유서를 찢어버렸다. 그 때 나는 내 인생에 이런 사람이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은 진실로 죽을만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수술 전에도 민머리가 되면서 여성으로서 매력이 감퇴하는 부분에 우울했는데, 수술 후에는 그보다 더한 몸의 데미지와 변화가 나타나면서 특히 더 여성으로서의 자존감이 하락했다. 그러던 중 수술 후 첫 목욕을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나의 수술 부위를 보게 되었는데, 그 때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울게 되었다.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으며, 가슴 복원을 위해 잘라낸 내 배 부분은 마치 크리스마스의 악몽에 나오는 잭의 입과 같았다.
그런 나를 거울에서 돌려세운 남편은 갑자기 내 배에 뽀뽀를 하면서 캐릭터 같아서 너무 귀엽다고 했다. 그러더니 꼭 끌어안고 "자기야, 이 상처들은 모두 훈장이야. 자기가 나를 위해서 목숨 걸고 싸워서 이겨낸 멋진 흔적이야. 고마워, 자기는 진짜 너무 멋진 사람이야. 나는 너무 감동 받았어, 이 작은 몸으로 이겨냈구나. 이렇게 열심히 싸워줬구나. 진짜 고마워!"라고 까슬까슬하게 머리카락이 새로 나기 시작했던 내 머리통에 또 뽀뽀를 퍼부었다. 그러더니 양가 가족들이나 주변 지인들에게 '우리 와이프는 암도 못 이긴 여자, 승리의 아이콘'이라고 말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암 투병은 나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모두가 목숨을 건 전쟁이었다. 그리고 병원은 전쟁터였다. 그 전쟁터에 남편은 단 한번도 함께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만사를 뒤로 하고 항상 나와 병원에 가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남편은 목숨을 건 암과의 전쟁에서 나를 끝까지 지켜준 둘도 없는 전우였다.
우리에게 또 다시 난소암이라는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지만, 이번에도 내 든든한 전우와 함께 잘 이겨낼 것이다. 남편이 사람 여럿 죽는 꼴 보기 싫으면 무조건 이번에도 이기라고 했다. 더불어 이번에도 잘 해내면 나에게 '암이 또 못 이긴 여자'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주겠다고 했다. 이것 참...이번에도 해낼 수 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