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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Sep 15. 2023

'평정심'을 빨리 찾는 방법

암을 통해 배우게 된 것 5.


8월 22일

산부인과 교수님이 CT 소견상 난소의 혹이 악성인지 아닌지 판단 어려우니 MRI를 찍자고 하심

가장 빠른 일정인 9월 16일로 MRI 예약하고 체혈해서 난소암 표지자 검사 진행함


8월 31일

난소암 표지자 검사 결과가 좋지 않으니 빨리 MRI를 받는게 좋을 것 같다며 타 병원 촬영 후 판독만 아산병원에 맡기는 방법 안내 받음

감사하게도 엄마, 여동생, 막내고모가 여기저기 알아봐줘서 급히 타 병원에서 MRI 촬영 예약을 잡음


9월 4일

MRI 진행했는데, 봐주신 선생님이 난소암으로 판단되나 MRI 상에서 전이 소견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심

아산병원에 영상 자료 제출함


9월 11일

판독 결과는 여러 정황상 난소암일 가능성이 있으나 수술 전까지는 난소암이라고 확정은 어렵다고 함

19일에 교수님과 상황 및 수술 관련 논의를 위한 외래일자를 잡음




아쉽지만 아직은 암과 헤어지지 못할 것 같다.


항상 행복할 때 깨지는 소리는 더 크게 들린다. 8월 말에 시댁 식구들과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왔다. 15년 만에 후쿠오카에 가보고 싶다는 시어머님의 말씀에 생신 축하 겸 시부모님, 우리 부부, 아가씨까지 다섯 식구가 모두 출동을 했다.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한 순간, 아산병원에서 온 전화 한통이 들뜬 모든 감정을 순식간에 식혀버렸다. 여러 이야기가 오갔는데 머릿 속에는 난소암일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만 남았다.


귀국 후 바로 MRI 검사를 했고 난소암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받았다. 아산병원에서도 판독을 받았는데 난소암으로 보인다는 확정적 소견은 아니었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MRI를 봐주신 선생님이 워낙 판독 능력이 뛰어난 분이라, 암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행복회로를 돌리기 보다는 선생님 말씀대로 난소암인데 심각한 상황은 아니니 빨리 수술하고 극복하자로 생각을 정리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평점심을 찾았다.


난소암의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대두된 8월 31일은 울었다. 억울하고 또 억울했다가 우리 남편이 불쌍하고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울었다. 호텔방에서 20분 정도 울고 그래 기왕 놀러왔으니 일단 재미지게 놀아야 안 억울하겠다 하면서 노는 것에 집중했다.


그 후 2박 3일 내내 밤에 자기 전엔 울고 그 외 시간에는 조증 환자처럼 깔깔대고 시댁 식구들과 재미지게 놀았다. 시부모님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시다며 다음에도 지니투어 꼭 해달라고 하셨고 남편도 부모님과 여행이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며 좋아했다. 유쾌한 우리 가족들 덕분에 아픈 것에 대한 걱정이 희안하게도 정말 생기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좋은 건 다 했다. 맛있는 것만 먹었다. 정말 많이 웃었다. 시부모님은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앞으로도 없을 것처럼,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시며 그저 내가 준비한 모든 일정을 만끽하며 즐겨주셨다.


그러던 중 어머님이 내 손을 잡으시더니 "진희야, 나는 보지도 못한 손주때문에 큰 자식을 잃을 수는 없다. 그러니 만약 다 들어내는 방향이 너에게 맞다면 그냥 너희 부부 둘이 지금처럼 재밌게 살아가면 되지 않겠니?"라고 하셨다. 눈물이 울컥 날 수 밖에 없었다. (글을 쓰면서도 줄줄 우는 중 ㅎㅎㅎ) 어머님은 진심을 다해서 내가 내 몸만 생각해서 선택을 내리길 바라셨다. 내가 그 분의 며느리라서가 아니라 큰 자식이라서, 자식의 고통이 너무 힘드신 것이었다. 어머님 생신 여행에 선물 대신 대형 폭탄을 던진 불효자식으로서 한없이 죄송하면서도 감사할 뿐이었다.


귀국 후에는 동생의 병원 투어 수발과 언니 검사비는 내가 낸다며 거금을 줘서 감동해서 울고, 제부가 누나 걱정말라고 우리가 어떻게든 누나 케어할거라고 전한 말에 울고, 친정 부모님이랑 남편 생파하고 신나게 놀다가 괜히 남편이랑 우리 부모님 다 불쌍해서 울고, 친한 친구들이 억울하다고 같이 화내줘서 울고, 후배들이 별의별 먹을 것들 보내서 감동 받아서 울고, 뭔가 별의별 일로 짧게 5분씩은 운 것 같다.

하지만 오랜 시간 우울한 기분에 빠져서 펑펑 울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나오면 나오는대로, 억지로 울지도 않고 참지도 않고 토해낼 감정을 매일매일 천천히 토해내면서 평점심을 찾아갔다.


일상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유방암과 이별을 1년 앞두고 난소암으로 갈아타는 환승병애라니...난 원하지도 않았는데!!! 굉장히 억울해서, 나쁜 놈들은 건강하게 잘 사는데 나쁜 짓도 안하는 나는 아픈게 더럽게 불공평한 인생이라서, 저 위에 계신 높은 분이 너는 소명을 찾아 행하라고 하는 것 같아 반항심이 생겨서, 여튼 간에 암한테 열 받아서 나름 복수의 방법은 암이 내 일상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 일상이 암이 없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그 존재감을 없애버리는 거다.

그래서 평소처럼 일하고 재밌는 프로젝트들도 계속 하고 있다. 남편이랑 데이트도 고, 게임도 하고, 하임이랑 놀고 평범한 매일을 보내고 있다.


암도 경력자는 멘탈이 다른건가...굉장히 빠르게 평정심을 찾고 일상을 유지하고 있는 나 자신의 멘탈에 놀라며 진심 칭찬하는 마음이다. 이렇게 글로 이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 자체가 내 감정들을 내가 잘 갈무리하고 있다는 증거같아서 뿌듯하다. 나쁘던 좋던 간에 모든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는 거 같다. 그래, 또 이렇게 그런 넓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음을 인정할테니, 이제 더는 이런 경험은 안주면 좋겠다.

암을 두 번이나 이긴 여자 타이틀로 끝내고 싶다. "제 운명을 설계하는 어떤 분 보세요, 제발 이걸로 끝냅시다! 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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