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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Aug 25. 2023

결국 '끝'이 온다는 것

암을 통해 배우게 된 것 4.

남편이 꽃을 선물했다.


건강한, 건강할 너를 축하해주고 싶었다며 준비한 꽃다발은 희망이 가득한 색깔의 다양한 꽃들로 이루어져 내 가슴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오늘은 우리 둘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검진 예약을 하게 된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년 8월 마지막 검진 이후로는 서울 아산병원의 암 병동인 서관 쪽으로 갈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꽃을 사기 전 남편은 우연히 뜬, 나의 항암 마지막 시절의 우리 둘의 사진을 보고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했던 모양이다. 꽃집에서 건강을 기원하는 꽃다발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꽃집 주인은 꽃에 건강을 기원하고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은 모두 담겨있으니 가장 예쁜 꽃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고 한다.


[ 남편의 한결같은 애정과 응원 ]


그리고 그 마음이 가득 담긴 꽃다발은 남편이 지난 나의 투병 기간 내내 보내준 애정과 응원과 꼭 닮아 있었다. 투병으로 변해가는 내 외모도 예뻐해주고 사랑해주며 그저 살아있기만 해달라는 그의 마음은 전에도, 지금도 변함 없다. 그가 있었기에 나는 암과 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내년 8월, 마지막으로 봅시다.


서울 아산병원 암통합진료센터로 향하는 길은 이제 눈 감고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느덧 또 1년이 지나고 마지막 약을 처방 받으러 갔다. 이미 지지난주에 유방초음파, 지난주에 흉부 X레이와 유방촬영, 체혈 등의 검사 결과도 함께 듣는 날이었다. 이틀 전에 난소에 혹이 애매하니 MRI를 찍어보자고 해서 심장이 덜컹 내려앉은터라 괜히 걱정이 되었다.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담당의 선생님이 떨리는 심정으로 앉아있는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아무 문제 없네요. 깨끗합니다." 그 순간 안도의 기쁨이 몰려왔다. 왠지 한달 뒤의 난소도 에피소드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1년, 약 잘 드시고 마지막으로 내년 8월 이맘때에 봅시다."라는 선생님 말에 "그럼 그때 검사가 마지막인가요?"라고 물었다. "네, 마지막 검사네요. 관리 잘 하시고 1년 뒤에 건강하게 뵙겠습니다." 선생님의 마지막 인사와 함께 문을 나서는 순간 울컥하는 기쁨이 한번 더 몰려왔다.


마지막 1년치의 약을 받아왔다.


유방암 판정을 받은 지 9년 6개월이 지났다. 유방암 판정을 받자마자 항암을 6개월간 하고, 10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고, '타목시펜'이라는 약을 먹은지 9년. 이제 드디어 끝이 손에 잡힐 듯 하다.


[ 마지막 1년치 타목시펜 ]


지금까지 9년간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번 같은 시간(한 5번 정도는 1시간 정도 늦은 적은 있었지만 ^^;)에 꼬박꼬박 챙겨 먹은 타목시펜의 마지막 1년치를 손에 든 순간 잠시 멍해졌다. 지금부터 진짜 암과 이별하기 D-365이 시작된 것이다.


좋은 이별을 해야겠다.


무엇보다 이 1년간 몸의 건강 상태를 최적으로 끌어올려야겠다. 암을 겪어서 약해진 몸이 된 것이 아니라, 암을 이겨낸 강한 몸으로 '암의 기억'에 남아야겠다. 질려서 두번 다시 찾아오지 않도록 말이다.

1시간 이상 걷는 날을 주에 5회 이상 만들고 수영을 배우고 아쿠아로빅을 할 생각이다. 다리에 힘이 생기면 달리기를 해보고 내년 봄에는 나도 마라톤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먹는 것에도 신경써서 야채도 신경 써서 먹고 영양제도 잘 챙겨 먹고 집 밥도 잘 만들어 먹어야겠다. 내 몸에 들어가는 것들과 내 몸이 움직이는 것들이 내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하나씩, 조금씩, 차곡차곡 건강한 내 몸의 힘을 키워나가야겠다.


결국엔, 이렇게 끝까지 자기를 받아들여주지 않는 나에게 서운해서 암이 떠나가서 두번 다시 만나지 않길, 그렇게 그저 멀어지는 이별을 했으면 한다. 우리 죽을 때까지 보지 말자, 알겠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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