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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Aug 24. 2023

Y야, 네가 하는 이야기라 울림이 더 크지 않을까?

Y에게 3화

언니, 저는 제가 쓸모없는 사람으로 살다 죽을까봐 무서워요.


우리가 걱정병 부사수와 교환일기 시리즈를 연재할 때, Y가 전날에는 <사람들에게 힘과 영감이 되고 싶어요.>라는 글을 쓰고 다음날에는 <죽음에 관하여>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얘가 왜 이렇게 극단의 감정을 경험하고 있나'하고 식겁했는데, 내용을 보면 결국 이어지는 글에 안심했던 적이 있다.


Y가 썻던 글을 보면, <사람들에게 힘과 영감이 되고 싶어요.> 편에서는 이런 말을 했고

제가 가장 기분이 좋은 순간이 언제인가를 생각해보면 저는 누군가가 저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거나, 힘을 얻었던 순간인 것 같아요. 
제가 일부러 의도한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그랬던 경우도 있고, 작은 한마디를 던졌는데 그게 크게 위로가 된 적도 있었데요. 빈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들이 너무 기뻐서 이런 보람을 많이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죽음에 관하여>에서는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기에 지금 사는 이 순간들이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언젠가 누구에게나 올 그 시기에 대해 생각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으면 좋겠어요.

내가 내린 결론은 'Y가 유한한 이 삶에서 본인이 누군가의 힘이 되고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구나' 라는 거였다. 


Y는 일면 유약해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다. 저런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Y라는 사람의 깊숙한 마음 속 강함이 없다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Y는 가끔 나에게 우울함에 져서 병원에 다니는 자신이 한 없이 약해 보여서 싫다고도 하지만, 나는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병원을 찾은 Y의 용기야말로 Y가 얼마나 마음의 코어가 강한 사람인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Y야, 너는 사실 건방진거야.


Y는 늘 자기 자신을 낮춰보기만 한다.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을 의미하는 '겸손'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남을 존중만 하고 자기를 내리깍을 때가 많다.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이 Y를 아무리 칭찬해도 Y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상대가 자신을 좋게 봐주는 마음에 무한 감사할 뿐, 그 선하고 좋은 사람의 말에 기대지 않고 자신은 부족하고 모자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Y에게 그런 너의 행동은 '건방지다'고 이야기 했다. 상대가 Y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도 없고, 진심으로 인정해서 말하는 명분이 명확한 칭찬마저도 '좋은 이야기'로 치부하면서, 상대의 '나를 향한 존중'을 받아 들이지 않는 것 또한 '감히' 건방지고 겸손하지 못한 태도라고 이야기 했다.

Y는 한대 크게 맞은 것 같은 멍한 얼굴로 '지금껏 그런 생각은 한번도 못해봤는데,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보는 저의 기준만 중요했어요.' 라고 했다. 자신을 애써 사랑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본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변인들의 깊은 마음마저 내리깍고 있던 것이라며, 이제는 스스로를 사랑함과 동시에 다시 그 마음들도 돌아보라고 했다.



주어진 삶에 가장 용기있게 살고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코 Y를 꼽을 수 있다.


Y는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내 입장에서는 Y의 사회생활은 내가 그 스승이라 할 수 있지만, 인생에 임하는 자세에 있어서는 Y가 내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Y가 내 옆에 있었기 때문에 나 역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인생에 임하는 자세가 나보다 높은 시선에 있던, 어찌보면 위대한 생각들로 보이던 후배 Y 앞에서 내가 부끄럽지 않기 위한 생각과 행동은 무엇인지, 어떤 삶이 부끄럽지 않는 방향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Y 이전에도 부사수가 몇 명 있었고 그 친구들 중에는 여전히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연락을 아예 하지 않는 친구도 있다. 누군가의 사수를 하기에는 마음도, 정신도, 실력도 미숙했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고 그로 인해 누군가 나에게 상처 받은 일도 내가 상처 받은 일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의 부족한 때를 돌아보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는 바로 Y에게 배웠다.



저도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Y는 자신이 최근 리더십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조직 구성원 뿐만 아니라 타 부서의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해주거나 도와주면서 자신이 쓸모있는 사람이 된 것 같고 가치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다만, 자신은 너무 평범한 사람이라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언니처럼 사람을 휘어잡는 매력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나는 확실히 사람들의 인상에 잘 남는 편이긴 하다. 흰 피부에 강한 인상의 외모도 특이하지만 말솜씨가 남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때문에 강하고 카리스마 있는 사람으로 비춰진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내가 하는 말이 신뢰할 수 있고 용기를 주고 조언대로 해보고 싶게 만드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나의 이야기가 본인에겐 비현실적이거나 나의 공감이 자신에겐 위로에 지나지 않는 경우들도 있다. 자신과 내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오히려 Y가 나보다 훨씬 남에게 울림을 주는데 유리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려보이고 조용해보이는 저 사람이 저렇게 열정적이고 진취적으로 자신의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무료한 사람이 아닌 이상,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멘탈이나 이미지의 강함과 약함을 떠나 무조건 울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것에 확신하는 것은 앞에도 말했지만, 인생에 임하는 자세에 있어서는 Y가 내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Y는 늘 지나온 삶에 대해 후회하면서도 배움을 찾는다. 지나온 나의 부족함과 미숙함에 대해 인정하고 더 채워나가기 위한 밀도 높은 고민을 한다. 나는 바로 이러한 수준 높은 Y의 삶이 이미 어른스럽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늘 그녀의 수준 높은 고민에서 울림을 얻고 있다.

때문에, Y에게 말한다.


Y야, 네가 하는 이야기라 울림이 더 크지 않을까?
누구보다 평범한 니가 위대한 삶의 궤적을 그려내고 있으니말야.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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