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통해 배우게 된 것 6.
30대에 암에 걸리고 40대에 또 암에 걸리고, 운도 더럽게 없는 팔자다 싶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사실 운이 좋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병원 나이 30살에 유방암 3기, 젊고 건강해서 진행 속도가 빠르고 생존율의 위험이 컸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젊고 건강해서 항암을 잘 이겨낼 수 있었고 긴 수술을 버텨내고 그보다 더 긴 회복의 시간들을 잘 견뎌낼 수 있었다. 특히 항암을 통해 완전 관해가 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경우라 담당 교수님이 직접 전화를 주실 정도였으니, 당시에는 남편에게 '나 로또 운을 여기에 써 버렸나봐'라고 했었다.
가장 좋은 건 암에 걸리지 않는 것이었겠지만, 걸린 상황에서는 내 운이 가장 좋았던 건 틀림없다. 일단 나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만 보면, 30여년의 짧은 내 인생에 가장 충격적인 사건 앞에서 내 삶에 대한 생각을 심도깊게 해볼 수 있었고, 인생관에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우리 엄마 말에 따르면, 나중에 나랑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 딸이 마치 30년 뒤로 미래 여행을 했다가 돌아온 것 같은 사람의 깊이를 보여줘서 놀랐다고 했다.
내가 아둥바둥 잡으려던 미래에 대한 확신과 미래를 위한 행복은 결국 내 생명에 주어진 시간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부질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지금 현재'를 어떻게 후회없이 잘 살 것인가에 대한 것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내 인생은 좀 더 간결해지고, 좀 더 임팩트있게 변했다.
원래 난소암은 췌장암처럼 굉장히 조용히 숨어있는 암이라, 증세로 인해서 난소암이 발견될 정도면 거의 말기 수준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정기 검진 중에 우연히 발견된 것이고, 난소암이 아닌 경계성 종양일 확률도 있다고 거론된 상황이니, 따져보면 운이 좋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어떻하냐 보다는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크게 벌인 일이 없어서 잠시 쉬어가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상황인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도 우선 복강경으로 시도해 보신다고 하니 개복할 가능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개복을 안하고도 해결될 가능성이 더 높으니 얼마나 운이 좋은가!
운을 타고 난 사람은 운이 떨어지기가 어려우니, 나는 앞으로 계속 운빨 하나는 끝내 줄거다. 그러니 30일에 있을 수술도 잘 될 거다. 오늘은 수술 전 검사를 받고 수술 동의서를 쓰고 왔다. 9년 만에 쓰는 수술 동의서는 여전히 내용이 무시무시했다. 최악의 경우로 상정되는 모든 상황이 진짜 최악이었다. (웃음) 내 머릿 속에는 그냥 '수술'인 하나가 따져보면 총 4가지 항목에 대한 수술이 된다고 했다. 따라서 예상되는 문제 상황도 굉장히 많았는데,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싶다가도 그냥 왠지 잘 모르겠지만 복강경으로 문제없이 끝날 거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차피 수술대 위에 누워 마취에 들면 그 다음부터는 내 소관이 아닌 것, 내가 지금 속앓이를 해봤자 나만 힘들고 나만 괴롭지 뭐 하나 좋아질 게 없지 않은가. 수술 전까지 내가 할 일은 몸도, 정신도, 마음도 건강하게 갖춰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주에는 동생과 에버랜드를 가야겠다. 취업술사 책을 런칭하는 펀딩도 시작해야겠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하임이와 산책도 해야겠다. 내가 가지고 있음이 분명한 '운'의 기운으로 남은 2주의 일상 역시 지켜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