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이야기 1화
절친봇과 지난 번에 결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절친봇이 우리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브런치에 써 보기를 추천했었기에 어디 한번 써보려고 한다.
그녀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신여성이었기에, 그녀의 딸들인 우리 자매는 시대를 잘 타고난 신여성으로 자랄 수 있기를 바랬다. 엄마가 없었다면 경제적으로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억눌려서 내가 나를 잘 살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도 못했을거다.
우리 엄마는 우리 자매에게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환경을 선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늘 미안해 했다. 대신, 정서적으로는 왠만한 재벌집보다 더 풍요롭게 키워냈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한 엄마 덕분에 나는 어린 시절 내내 많은 책과 미술 작품과 음악에 둘러 싸여서 살았다. 물론 그것들 대부분이 무료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엄청난 것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터넷도 없던 그 때에 엄마가 그 정보를 얻기 위해 얼마나 동분서주 했을지...
나는 당시에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을 엄마의 모성애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릴 따름이다.
우리 아빠는 자기 사위에게도 늘 포옹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경상도 남자인 우리 아빠를 사랑 표현이 가득한 사람으로 만든 것에는 엄마의 기여도가 높았다.
우리 아빠는 원래부터 참 다정한 사람이지만, 안타깝게도 표현이 서툴렀다. 남자가 울거나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는 엄마와 결혼을 하고 우리를 키우면서 애정이 넘치는, 따뜻한 표현을 할 줄 아는 남자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어린 시절 아빠는 늘 우리를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사춘기일 때도 우리와 대화를 자주하려고 먼저 다가오는 아빠였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가족은 같이 모여서 대화하는 시간이 매우 많았다. 단순히 하루의 이야기를 하는 것 외에도 어떤 책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떤 현상이나 경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나의 경우에는 책이나 음악, 특히 클래식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와 많이 했는데, 그 덕분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가가 라흐마니노프(풀네임: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가 되었다.
엄마는 우리 자매에게 책을 읽으면 반드시 독후감을 적게 하셨는데, 글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글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를 적게 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내가 가진 생각과 마음에 대해서 엄마는 어떻게 느껴지는지, 그 책을 엄마도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피드백을 주고 받는 방법에 대해서 훈련해왔던 것이다.
우리 엄마는 사상적으로도 다른 엄마들과 달랐다. 내가 지금도 엄마가 나를 이렇게 어그레시브한 여성으로 만들었다고 하면서 등장하는 엄마의 몇 가지 명언이 있다.
초등학교 때는 "노는 물을 달리하라"면서, 앞으로 성인이 되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상상하라고 했고, 중학생 때는 "결혼은 선택이지만 직업은 필수다."라고 했으며, 고등학생 때는 "사회에 나가면 남자다, 여자다 말고 사람으로 겨뤄라."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책을 많이 읽게 했으면서도, 정작 내가 성인이 되어서 더 많이 책에 욕심내고 자기계발에 욕심내며 뭔가 아는 것을 늘리려고 할 때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남겨라."라고 늘 지식의 방만함을 가진 사람이 되지 않게 경계심을 가지게 했다.
만만하게 굴면 안된다고 당하는 사람으로 살지 말라며, 딸들이 누구보다 사회에서 똑부러지게 자기 세계를 만들기 바랬던 우리 엄마는 정작, 자신은 늘 남에게 퍼주고 손해 보더라도 선한 쪽을 택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어려운 분들을 돕고 싶다며 재가복지센터를 운영했던 엄마, 아빠는 정말로 어려운 분들만 돕다가 경영난으로 센터를 접게 되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왠 무연고자인 분의 마지막을 돕게 되었다.
그 분이 돌아가시면서 '송선생 고맙네, 얼마 안되는 재산이지만 자네에게 주고 싶네'라고 몇 백만원의 현금을 주셨다고 한다. 그 분의 장례를 치르고 엄마, 아빠가 우리에게 와서는 그 돈을 그 분이 계셨던 요양병원에 모두 기부하고 싶다고 하시며, 이거를 너희에게 줘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하셨다.
우리는 엄마, 아빠에게 뜻하시는 대로 하시면 된다고 정말 존경스럽다고 말씀 드렸는데,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나줘서 고맙다며 도리어 엄마, 아빠에게 감사 인사를 받았다.
나는 지금도, 이렇게 엄마의 삶 속에서 내 삶을 만들어 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