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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Feb 15. 2023

암과 완전 이별 1년 전입니다.

프롤로그

2014년 2월 15일,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오늘은 내가 암에 걸린지 9년째 되는 날이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완치 판정을 받는 10년을 앞두고 드디어 D-365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요즘은 5년도 괜찮아서 완치 판정을 받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의 경우에는 병원 나이 서른 살에 걸린 암이었고 굉장히 공격적이고 빠르게 진행되었던 데다가, 암의 진행 기수도 3기로 추정되어 꽤 위험한 편이었기에 10년을 채워야 했다. 그리고 오늘까지 9년 동안, 관리를 잘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면서 도 건강하게 잘 치료하면서 매일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괴로움도, 두려움도 많았던 지난 9년이지만, 깨달음도 많았다. 나는 9년 전 오늘을 기점으로 인생을 바라 보는 관점이 바뀌었고 자신의 인생의 중심과 가치관이 바뀌는 등 수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겪었다.

2014년의 오늘은 인생 최대의 비극의 날이지만, 2023년 오늘은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낸 날이고, 앞으로 1년 뒤인 2024년 오늘은 인생 최대의 희극의 날이 될 예정이다.

완치까지 365일을 앞두고 앞으로 1년을, 유방암과 싸웠던 기록들, 인간적으로 어떤 성장을 했는지 등을 회고하고 남은 1년 동안 잘 헤어질 준비를 어떻게 할지 기록하면서, 남은 1년 간 건강하게 나답게 유방암과 영원히 이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스스로 얻고자 한다.




9년 전 오늘, 남편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자꾸 왼쪽 가슴을 긴 대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생리가 끝나도 왼쪽 가슴만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편이 내 왼쪽 가슴에 이상한 멍울이 만져진다고 했다.

이 모든 게 일주일 사이에 경험한 것들이었다. 그 전까지는 아무런 이상 반응을 느끼지 못했고 나는 누구보다 건강한 사람이었다.

2014년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였다. 남편은 가슴을 만지작거리다가 뭔가 느낌이 좋지 않다며, 발렌타인데이 선물 대신 병원에 가서 문제 없다는 결과를 달라고 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발렌타인데이 다음날인 15일, 동네에 있는 유외과에 갔다.

건강 그 자체인 나였기에 문제가 생길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검사 끝나고 맛있는 거 같이 먹으러 가자며,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엄마와 동생도 같이 갔다. 병원을 나서는 순간, 나도, 엄마도, 동생도 어떤 기분이 될지 도통 모르고 말이다.


'형부. 놀라지 말고 들어. 언니가 유방암이래' 동생은 울먹이며 말했다.

병원 문을 나서며 가장 차분하게 정신을 차린 동생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건낸 첫마디였다. 병원을 나서면서 남편에게 '나는 아무 문제 없어, 괜찮아' 라고 전화를 했어야 했는데, '나 유방암이래, 꽤 진행이 많이 되었데, 죽을 수도 있데' 그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가벼운 검사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이미 원장 선생님은 내 왼쪽 가슴을 촉진할 때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유방 엑스레이를 찍으시더니, 유방 초음파 검사를 하자고 하셨고, 초음파 검사 도중 갑자기 주변이 어수선해지더니 조직 검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이거 뭔가 큰일 났구나 라는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검사를 마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장 선생님이 '유방암이다,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확실하다, 현재 최소 2기 중반 ~ 3기로 보인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순간 머리가 멍해지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엄마도, 여동생도 모두 순간 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 와중에 회사는 어떻게 하면 좋냐는 내 헛소리에, 그때까지도 인자한 표정이시던 원장 선생님이 정색을 하시며 '지금 회사가 문제가 아니에요, 본인이 죽을 수도 있어요' 라며 지금 나의 유방암은 매우 위험한 상태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왜 니가 이런 병에 걸려!!!' 라던 남편의 절규가 아직도 생생하다.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병원을 나선 이후의 기억은 아빠가 우리집에 와서 울었다는 것, 엄마가 울고, 동생이 울고, 나도 울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의 기억은 소리로 남아있다.

급하게 복도를 뛰어오는 소리, 비밀번호가 입력되는 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울음으로 뭉개지는 남편의 원망 가득한 '왜 니가 이런 병에 걸려야 하냐, 왜 나쁜 놈들은 잘 사는데 너한테 이런 병이 찾아오냐' 던 소리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아내를 데려가지 말아주세요.'라며 울던 남편의 고통 또한 생생하다.

2014년 2월 15일, 그날 밤이 우리에겐 가장 괴로운 밤이었다. 어제와 똑같이 끌어안고 있었지만 어제처럼 웃을 수 없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눈물만 계속 흘렀다. 남편은 계속 내 왼쪽 가슴을 만지면서 '괜찮아, 내가 어떻게든 지켜줄게, 너 안 죽어, 괜찮을거야' 라고 다정하게 말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하던 남편이 더이상 말하지 않고 내 등이 축축하게 젖어가는 것을 느끼는 순간, 툭 뱉어져나온 '아내를 데려가지 말아주세요' 소리에 다시 울음이 터졌다.

그리고 그날 새벽까지 세상에 온갖 신을 다 욕하다가, 다시 세상의 온갖 신에게 부탁하는 남편의 혼잣말을 들으며 지쳐서 잠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 눈물이 계속 났다.

9년 전의 그 날의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결혼한지 1년 반만에 생긴 믿을 수 없는 사건...신혼을 병마와 보낸 우리 부부가 너무 불쌍했다.

무엇보다 남편에게 사랑하는 아내를 잃을 수도 있는 공포감에 살게 한 것이 미안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기쁨과 감사함에 눈물이 계속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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