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길을 잃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왜 이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 이 책의 주인공은 월급을 대가로 자신의 시간을 모두 직장에 바치는 일상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고 휴가를 떠났다가 길을 잃고 한참 헤매다가 '세상 끝의 카페'를 발견하게 된다.
카페에 앉아 메뉴판을 보게 된 주인공은 뜻밖의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죽음이 두렵습니까?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카페 직원인 케이시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세상이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이 질문이 떠오르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게 존재 이유가 되며 하루 종일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고. 주인공은 반발한다.
"지금까지 그런 질문에 매달리지 않고도 잘 살아왔는데요."
케이시가 답한다.
"그래요? 진짜 잘 살아오셨어요?"
케이시의 질문에 나도 덩달아서 같이 생각하게 된다. 나는 잘 살아오고 있었나? 케이시가 이어서 말한다.
"많은 사람이 잘 살아가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냥 잘 사는 것 이상의 무엇을 찾는답니다. 뭔가 좀 더 의미 있는 것을요."
나는 전에 영혼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언제 내 안에 영혼이 있다고 생각이 드냐고. 나는 그때 바로 입을 열지 못했지만 답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영혼이 살아있는 게 느껴지는 날은 거의 없다. 하지만 영혼이 죽어가는 감각은 생생하게 다가온다. 좋은 인생이란 무엇일까. 남들이 봤을 때의 나는 아주 멀쩡해 보일지도 모른다. 적당한 학교를 가고 친구를 만나고 직장을 다니고. 그 안에서 내 영혼은 비명을 지른다. 마음 깊숙한 곳 어딘가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분명 하자 없는 인생인데 내 영혼은 소리친다. 이렇게 사는 게 진짜 맞는 거냐고.
우리는 내가 왜 여기 존재하는지, 그리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며 살아왔다. 지금 되돌아서 생각해 본다. 그렇게 사는 게 나에게 진정한 삶을 사는데 도움을 준 게 맞는지.
세상 끝의 카페는 주인공에게,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당신은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 질문을 하는 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들 수도 있다. 케이시는 이 질문을 던지면 답을 찾고 싶어지고 자기가 이곳에 있는 이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사는 이유를 깨달으면 깨달은 대로 살고 싶어진다고 한다. 잘 사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존재 이유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하면 된다.
이 책에서 마이크는 한 어부의 이야기를 해준다. 어부는 매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먹을 만큼의 고기만 잡고는 다시 바다에 놔준다. 마을에 휴가를 온 사업가는 처음에 그 어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기를 더 많이 잡아서 돈을 더 많이 벌어 성공하는 삶을 버리고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어부는 웃으며 묻는다. 뭐 하러 그렇게 하죠? 사업가는 답한다. 돈을 많이 벌고 은퇴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사업가가 다시 답한다. 그렇다면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겠네요. 제가 낚시를 좋아하니까 매일 낚시도 하고요. 사업가가 답했다. 그럼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어부는 이미 원하는 삶을 손에 얻었다. 그것에 꼭 돈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현재의 희생이 따르지도 않았다.
마이크는 자신이 깨달은 바를 이야기한다.
"나는 매일매일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있는 소중한 순간임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면서 만족스럽게 살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오늘이라는 걸. 퇴직할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왜 우리는 앞으로 할 수 있는 일, 앞으로 원하는 것에 대한 준비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사는 걸까? 그냥 지금 당장 이 순간 원하는 것을 하며 살지 않고.
우리는 자꾸만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룬다. 대학에 합격하면 해야지. 직장을 다니고 생활에 안정이 되면 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지금은 돈을 버는 게 우선이니까 은퇴하고 나면 해야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오래 살아서 차비라도 벌어놓은 사람은 언젠가는 기차를 타게 되겠지만 그때는 활동력과 여행 의욕을 잃고 난 다음일 것이다. 이처럼 삶의 가치가 가장 떨어지는 시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인생의 황금 시절을 돈 버는 일로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고국에 돌아와 시인 생활을 하기 위하여 먼저 인도로 건너가서 돈을 벌려고 했던 어떤 영국 사람이 생각난다. 그는 당장 다락방에 올라가 시를 쓰기 시작했어야 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쫓기듯이 인생을 낭비해 가면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때의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의 수고를 막아준다고 하면서, 내일의 아홉 바늘 수고를 막기 위해 오늘 천 바늘을 꿰매고 있다. 일, 일, 하지만 우리는 이렇다 할 중요한 일 하나 하고 있지 않다.
현대인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바쁘게 살아간다. 아침부터 일어나 계속 할 일에 둘러싸여 삶의 여유라고는 없이 눈앞의 돈을 좇는다. 과연 그것들이 모두 중요한 일일까?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면서 우리는 애써 외면해 왔을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삶을 충만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다른 사람이 인정하는 삶을 사는 게 어쩌면 더 편할지도 모른다. 나 혼자 뒤처진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정의 내린 대로 산다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본인 스스로 만족스럽게 느껴야 만족스러운 삶이 되는 거다.
주인공은 세상 끝의 카페를 다녀온 후 천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내어 원하는 일, 하고자 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배울 기회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일단 마음먹은 일을 행동에 옮기면, 그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존재의 이유를 찾아낸다.
이젠 우리가 변화할 차례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나도 오늘부터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