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삶을 정성스럽게 사는 법

미키 사토시,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by 무한한 사각우물


살다보면 존재감을 잃었다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쿠자쿠는 어렸을 때부터 스즈메의 친구로 스즈메보다 항상 더 나은 위치에 있었다. 모래성을 쌓는 것도, 스티커를 붙이는 센스마저도. 하루하루 강렬하게 살아가는 쿠자쿠에 비하면 스즈메는 매일 거북이 먹이를 주는 일 뿐이다. 늘 어중간한 삶 속에서 스즈메는 생각한다.


"다들 내가 안보이나봐."


"이대로라면 난 점점 희미해져 사라질거야."


sns를 하다보면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다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러 다니고 번듯한 직장이 있다. 다들 각자의 자리와 역할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가 하는 일은 너무 사소하고 평범하고 보잘 것 없어서 그럴 때 나는 마치 다른 장르의 드라마에 실수로 들어온 캐릭터 같다. 내 자리는 애초에 준비되지 않았던 것처럼. 나의 존재감을 아무도 인정해주는 것 같지가 않다.


스즈메는 우연히 스파이 공고를 발견하고 스파이가 된다. 스파이가 된 스즈메의 할 일. 평범하게 사는 잠복. 스즈메는 임무를 받은 후 평범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때부터 이 평범한 삶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너무 평범해서 반대로 비범한거 아니야? 스즈메의 평범함은 이제 스즈메의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거북군에게 먹이 주는 것도 스파이 활동의 일과인거다.


평범한 삶을 목표로 하니 뽑기에서 꽝이 나오기를 바라게 되고 음식점에서 점원이 나를 기억하지 않기를 바란다. 눈에 띄는 삶보다 더 가치있는 삶을 살게 된거다. 특별한 평범한 삶. 평범해지려고 노력하다보니 평범한 삶이라는 거 생각보다 어렵다. 평범하게 장을 보고, 평범하게 이불을 털고. 평소보다 신경써서 평범한 일상을 산 스즈메는 피곤함 마저 느낀다.


이상하다. 냉장고를 열어 활동지원금을 보며 휏휏휏 웃는 것만 추가 되었을 뿐인데. 달라진 거 하나 없는데 일상 속 모든 행동들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특별한 삶이라는 게 따로 있을까? 지금 특별해 보이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사는 내내 그랬을까. 나에게는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이 따분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특별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결국 다른 일상을 보고 부러워 하는 건 나에게 없는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스파이 임무 중 위험이 다가왔을 때 이별을 떠올리며 스즈메는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이별은 대단한 게 아니라 한 쪽이 죽고 난 후 처음으로 '그때 그게 마지막이였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 뿐."


삶이라는 것도 그럴지도 모른다. 지나고 나서야 그때 그게 특별한 삶이었구나. 행복했던 일상이었구나. 하고 떠올리게 되는 거.


영화를 보는 내내 스즈메의 따분한 일상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거북이 밥을 주고 하수구가 오징어순대에 막혔다는 말을 듣고 증거를 찾으러가고, 영구파마라는 단어에 홀려서 파마를 하러 가고, 빨대로 간을 만드는 일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일상에도 여러 이유가 있고 뒷모습이 있고 매력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조금 더 사랑할 필요가 있다. 육지에서는 느린 거북이가 물 속에서는 의외로 빨리 헤엄치는 것처럼. 평범한 스즈메의 일상이 스파이 활동을 하기에 적당했던 것처럼.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어중간한 라면이 스즈메의 입맛에는 딱 적당했던 것처럼. 괜히 울어서 맛있는 라멘의 미묘한 간을 망치지 말자. 스파이 활동을 하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정성스럽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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