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든 예술은 기본적으로 내면의 외면화다. 창작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작품의 메시지, 감정, 정서, 철학, 세계관 등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외면화한 결과물이 예술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때 예술 작품들은 장르에 따라 외면화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소설은 글, 음악은 악기, 연극은 무대, 그림은 붓과 물감을 통해 내면이 외면화가 이루어진다. 영화 또한 카메라라는 영화 본연의 수단이 있다. 따라서 영화 속 모든 상황 설정, 대사, 이미지, 움직임은 카메라를 통해 전달되며 뛰어난 영화들은 카메라를 활용해 관객들을 자극할 줄 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긴장했을 때 내레이션으로 긴장했다고 설명할 수도 있고, 인물 간의 대사를 통해 알려줄 수도 있고, 식은땀을 흘리고 손을 벌벌 떠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 이때 관객들이 영화가 제시하는 정보를 가지고 스스로 인물의 정서나 내면을 유추하고 파악할 수 있을 때, 그들은 영화에 몰입할 수 있고 그 영화는 영화의 본질에 충실한 작품이 된다. 왜냐하면 관객들에게 인물의 내면이나 상황에 대한 정보가 소설이나 연극처럼 설명과 대사로만 전해진다면, 굳이 영화라는 매체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슈퍼맨이 등장한 <맨 오브 스틸>은 안타깝게도 영화만의 특징을 그리 잘 활용하지는 못했다.
2. <맨 오브 스틸>은 <슈퍼맨 리턴즈> 이후 제작된 첫 슈퍼맨 영화이고 DC 필름스 유니버스(DCFU)의 시작인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슈퍼맨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한다. <맨 오브 스틸>은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완성된 슈퍼히어로, '슈퍼맨'이 아니라 아직 미숙하고 성장해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두 가지 정체성 '클라크 켄트'와 '칼 엘'의 고뇌를 조명한다.
이를 위해 <맨 오브 스틸>은 슈퍼맨의 모티브인 예수의 모습을 의식적으로 스크린에 노출시킨다. 예수는 완전한 신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인간인 존재다. 신의 권능은 물론 인간의 모든 감정을 느낀다. 그가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에 빠졌던 것도, 유대인에게 잡혀가기 전에 겟세마니 동산에서 다가올 운명에 고통스러워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라고 가르친 것도 그 스스로가 완전한 '인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맨 오브 스틸> 속 클라크 켄트도 다르지 않다. 그에게는 모든 인류의 희망이 되어야 하는, 신이 되는 것과 다름없는 운명이 주어져 있다. 클라크 켄트가 자신의 운명을 마주하기 전까지 그는 본인의 능력을 처음으로 자각하고, 텍사스의 평번한 농부로서의 인간과 인류의 희망이 되어야 하는 히어로라는 정체성을 각각 키워주는 두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사람들을 도우며 세상을 방황한다. 즉, <맨 오브 스틸>의 스토리 라인은 성경 속 예수의 이야기와 시공간적 배경만 다를 뿐 사실상 똑같은 이야기다.
이처럼 캐릭터의 정체성과 관련한 모티브를 영리하게 이용하면서 <맨 오브 스틸>은 필연적으로 비교될 수밖에 없는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는 물론, 기존의 슈퍼맨 영화들과도 다른 차이점을 확립한다. 인간의 감정과 신의 책임 사이에서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며 한 뼘씩 자라나는 성장하는 슈퍼맨을 묘사하고 다른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보여줄 수 없는 '숭고함'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3. 시리즈의 변화와 슈퍼맨이라는 주인공의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맨 오브 스틸>은 분명 자신만의 독창성을 보여주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결코 잘 만들어졌다고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말하고자 하는 스토리를 풀어내는 방식이 영화답지 못하다는 점이다.
<맨 오브 스틸>은 스토리를 '제시'하지 못한다. 영화라는 매체의 영상적인 특징을 활용하지 못하고 '칼 엘'이라는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말 그대로 '설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중반부에 크립톤 우주선에 저장되어 있던 '조 엘(러셀 크로우)'의 형상이 등장해서 크립톤의 모든 역사를 설명하고 클라크 켄트의 탄생 배경과 그의 의무와 책임을 브리핑하는 장면이 가장 대표적이다. 사실 이 장면 속 문어체 대사, 입체적이지 못한 '조 엘'의 캐릭터, 지나치게 긴 시퀀스 길이들은 영화의 전체적인 문제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부분들은 영화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핵심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 치고는 지나치게 상투적이고, 일차원적이며 안일해 보인다. 그 결과 <맨 오브 스틸>은 클라크 켄트의 내적 고민, 각성, 성장을 적절히 환기시키는데 실패하며 전체적으로 늘어지고 지루할 뿐이다.
이 외에도 작중 다른 문제들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맨 오브 스틸>은 <배트맨 비긴즈>처럼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진행되는데, 이는 현재와 과거의 대비를 통해 히어로로 성장한 클라크 켄트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배트맨 비긴즈>와 달리 이 작품의 교차편집은 현재와 과거의 에피소드를 자연스럽게 연결하지 못하고 리듬을 끊이면서 극의 몰입을 방해할 뿐이다. 또한 로이스 레인과 극 중 군인 및 과학자들 같은 단편적인 캐릭터 구축과 일차원적인 활용, 그리고 영화 중반부터 과도한 액션 시퀀스들로 인한 피로도 증가 등도 <맨 오브 스틸>의 숭고한 메시지에 잡음을 일으킬 뿐이다.
4. 물론 <맨 오브 스틸>만의 장점도 있다. 지구의 범위를 초월하는 크립톤인의 스피드를 화려한 영상미와 적절히 결합시킨 액션 시퀀스 등은 이 영화의 확실한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잭 스나이더 감독은 본인의 특기인 슬로 모션까지 크립톤인의 스피드를 표현하기 위해 포기했다). 희망과 자유를 상징하는 클라크 켄트의 아치 에너미인 의무와 신념의 조드 장군은 작중 입체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유이한 캐릭터 중 하나로 영화에 품격을 더해준다. 또한 클라크 켄트가 걷는 여정의 비장함과 숭고함을 극대화시키는 Hans Zimmer의 사운드트랙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결국 <맨 오브 스틸>은 예수를 모티브로 하는 훌륭한 내러티브를 지녔지만 영화로 만들기엔 창작자들의 역량이 다소 부족했던 작품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영화의 외적인 영상미, 액션, 음악 등은 어느 영화와 비교해도 모자르지 않지만(사실 아주 뛰어나다), 신에 가까운 존재로 성장하는 한 인간의 갈등, 고통, 고뇌를 담아내는 방식은 결국 누군가의 설명에 의존할 뿐이고 이는 결코 영화만의 방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맨 오브 스틸> 정도의 영화라면 더 세련된 상징, 구도, 이미지를 통해서 인물의 내면을 환기시킬 수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작품이 DC 유니버스에서 가장 뛰어난 영화들 중 하나라는 사실이 놀라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