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noDAY Jun 25. 2019

뚝심 있고 장르적이지만 어설픈

더 보이(feat. <크로니클>&<맨 오브 스틸>)

1. 미국 '브라이트 번'이라는 마을에 불시착한 한 우주선. 그 우주선에 있던 한 갓난아기. 그를 발견하고 입양해 친아들처럼 키우는 젊은 부부. 사춘기에 접어들고 점점 초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변하기 시작하는 '브랜든'. 주인공의 이름이 클라크 켄트가 아닌 것을 제외하면 <더 보이 Brightburn>는 누가 봐도 슈퍼맨 영화다. 특히 빨간 망토, 농장, 낡은 그네 등의 도상적인 측면에서 <맨 오브 스틸>을 오마주한 것이 명백해 보이기도 한다. 또한 청소년들의 정체성과 관련된 고뇌를 장르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크로니클>의 내러티브와의 유사점도 있다. 단지 '특별함'에 대해 <맨 오브 스틸>만큼 설명하지는 못했고, 청소년기의 특징을 <크로니클>처럼 깊게 표현하지도 못했을 뿐.


<맨 오브 스틸>(좌)과 <더 보이>(우) 스틸샷


2.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사람들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 자신을 (과하게)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신체적 성장이 끝나듯 정신적으로도 이미 성숙하다고 느끼며, 사회의 일면만을 보고 불만을 갖고 극심한 내적 갈등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청소년들은 아직 사회적으로 성인이 져야 할 의무와 책임감은 물론 자신의 권리가 갖는 무게에 대해서 명확히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사회 안에 포용할 수 있느냐가 청소년들이 사회의 축복이 될지 저주가 될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단지 <더 보이>와 <크로니클>과 같은 영화 속 아이들에게는 타인과는 다른 '초능력'이 추가적으로 있을 뿐이다.


'초능력'이라는 소재는 돌풍의 청소년 시기를 시각적으로나 극적으로 표출하기 적합한 소재다. 초능력의 발현을 통해 신체적 성장을 암시하고, 그 초능력으로 인한 정서적 변화의 양상을 통해 청소년들의 독특한 심리와 내적 성장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크로니클>이다. <크로니클>은 10대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초능력을 갖게 되어 펼쳐지는 스토리를 담은 영화로, 청소년들의 불안정성, 분노, 에너지 등을 그들의 초능력에 대입시켜 푸티지 기법과 같은 독특한 연출로 설득력 있게 풀어낸 작품이다. <더 보이> 역시 슈퍼맨의 어린 시절, 그것도 타락한 슈퍼맨이라는 참신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기에 <크로니클>만큼이나 인상적인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단지 그러지 못했을 뿐.



3. 브랜든이 타락하는 동기나 원인 설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더 보이>의 가장 큰 문제다. 학교에서의 괴롭힘과 따돌림은 스쳐 지나갈 뿐이고, 출생의 비밀 때문에 부모님에게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 정도가 그나마 이유가 될 법하다. 하지만 배신감마저도 부모님은 물론 이모와 이모부까지 그를 이해하고 걱정하며 도우려는 모습을 거듭 묘사하는 연출 상의 문제로 잘 느껴지지 않는다. 브랜든 본인이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변화 역시 그럴만한 에피소드가 없어 설득력이 떨어진다(추측은 가지만). 또한 브랜든이 타고 온 우주선은 물론, 그가 외계어를 이해하는 경위처럼 반드시 설명이 필요한 부분마저 생략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 결과 영화를 보다 보면 액션, 서스펜스, 서프라이즈에 단발적으로 반응할 뿐 ' 재가 왜 저러지?'와 같은 근본적인 의문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맨 오브 스틸>을 시각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도 참고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 보이>와 대조적으로 <맨 오브 스틸>은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점을 클라크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자신의 능력을 타인들을 위해 어떻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영화적 문법 상 아쉬움이 남는 방식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특별함이 축복임과 동시에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저주일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그 과정 안에서 클라크의 책임감, 부담감, 내적 갈등을 충실히 전달한 것은 <맨 오브 스틸>의 장점이기도 했다. 이처럼 <더 보이>에서도 브랜든이 겪어야 했던 배신감, 자괴감, 고뇌 등에 대해서 한 씬이라도 명확히 짚고 넘어갔다면 영화의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더 빛을 발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크로니클>이 PPT가 화려하지는 않아도 필요한 말을 영리하게 전달했고, <맨 오브 스틸>이 말은 잘 못해도 PPT와 내용이 좋았다면, <더 보이>는 그냥 아이디어만 있고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셈이다.



4.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단점들 덕분에 <더 보이>의 장르적 특성이 잘 살아났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기도 하다. 이 영화는 호러 장르에 걸맞은 잔혹하고 높은 수위의 액션과 시각적 효과, 이를 도와주는 영리한 서스펜스와 서프라이즈가 가득한 작품이다. 즉 '신과도 같은 슈퍼맨이 사실 악마라면?' 내지는 '불안정한 청소년 슈퍼맨의 모습은 어떨까'라는 영화의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가장 충격적이고 쾌감 가득하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호러가 가장 적합했기에(슈퍼맨이 타락하면 상상만으로 공포스러운 것도 사실이고) 호러 영화가 제작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또 영화의 아이디어를 스크린에 구현하기 위해 다른 조건들을 앞뒤 재지 않고 밀어붙인 듯 보이는데, 그 동력이 영화의 결말까지 계속해서 이어진 것만큼은 완성도와 별개로 인상적이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더 보이>는 본래 목표를 충분히 달성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P(Poor, 형편없는)

안티 히어로의 고뇌가 아닌 중2병의 잔인한 투정.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집밥을 먹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