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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ul 26. 2019

우리가 집밥을 먹는 이유

<리틀 포레스트> 리뷰

1. 3년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때였다. 학업에도 열의가 없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져서 기숙사와 강의실만을 오가며 조용히 지낸 적이 있다. 먹는 것은 학교와 기숙사 내에 있는 편의점 도시락만으로 해결했었고.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편의점 도시락을 사서 기숙사 취사실로 향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도시락을 여는 순간 코를 찌르는 인공적인 화학품 냄새가 너무나도 역겨웠다. 마치 <리틀 포레스트>의 초반부, 주인공인 혜원(김태리)이 편의점 도시락을 도저히 못 먹겠다는 듯이 도로 뱉는 장면처럼. 순간 이후로 지금껏 편의점 도시락을 다시는 시도적이 없다. 만약 동일한 경험을 적이 있거나 현재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면 <리틀 포레스트>보다 든든한 식사를 찾기 힘들 것이다.  



2. <리틀 포레스트>는 영리한 영화다. 영화의 스토리와 전개 방식, 인물 간의 관계, 연출, 편집 등 식상하거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들을 흥미롭게 풀어내는 센스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 센스는 음식에서 비롯되는데, 사실 <리틀 포레스트>에서 음식 자체의 생김새와 특징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그보다도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 음식에 깃들어 있는 기억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서울에서 고시 공부를 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인간관계에서도 회의감을 느끼는 혜원은 시골로 내려와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의 진짜 문제를 깨닫고 해결해 나간다. 특히 각각의 상황과 시기에 맞는 집밥을 해 먹으면서 혜원은 과거의 기억을 꺼내보고, 이를 통해 자신을 괴롭히던 과거의 상처들을 마주하며, 현재의 사람들과 새로운 추억을 만들며 스스로를 치유한다. 집밥이라는 음식을 통해 희미해지던 자신만의 정체성을 되찾은 것이다. 아마 만든 음식들이 그녀에게 자연스러우면서도 그녀의 삶 본연이 녹아있는 것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혜원이 철저히 현실을 기반으로 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리틀 포레스트>의 호소력은 한층 강해진다. 경쟁적이고 피로한 사회 안에서 스스로를 잃어가는 청춘들에게 한 템포 쉬며 자기 자신 본연의 모습을 찾아보자는 메시지가 혜원 덕분에 결코 충고나 훈계로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인물이 싱그럽고 따뜻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며 더 쉽게 동질감을 느낄 따름이다. 



3. 그렇다고 맛스러운 음식들을 지나치지도 않는다. 요리 프로그램 뺨치는 수준의 정교한 카메라 구도로 가능한 한 가장 예쁘게 음식들을 담아내고, 다양한 상황에서의 레시피를 제공하며 관객들의 요리 지식을 한 뼘 넓히기도 한다. 또 제철 재료를 활용한 음식들은 든든한 한 끼 식사부터 제철 별미, 간단한 간식과 야식, 술안주를 넘나들기도 하니 그 모습으로부터 침을 참기도 힘들다. 영화를 보고 나서 팥떡이 그렇게 먹고 싶어 진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사실 <리틀 포레스트> 속 음식들은 결코 전통적인 의미의 한식은 아니다. 파스타, 오꼬노미야끼, 샌드위치, 디저트 등 외국 음식들도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엄밀한 의미의 한식 외에 다양한 음식들을 영화가 다루는 것은 결코 거슬리지도, 불만스럽지도 않으며 오히려 더 반가운 대목이었다. 사람들이 집에서 정말 '한식'만 해 먹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가능한 재료들로, 정성을 다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먹으면서 대단한 음식은 아니더라도 함께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집밥의 진짜 매력일 테니. 



4. 음식 외에도 <리틀 포레스트>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배우다. 사실 이 영화의 매력 중 7할은 배우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특히 그중에서도 김태리는 한 영화 안에서 배우가 어떤 영향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영화를 제작할 때 배우를 활용하는 방식은 크게 2가지가 있다. 하나는 감독의 소도구로서의 배우다. 이때 배우는 카메라의 피사체에 불과하다. 편집과 클로즈업을 통해 감독은 배우의 특정 부분만을 분절적으로 강조해 화면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반면에 배우가 영화 자체의 원동력이 되는 경우도 있다. 배우가 본인의 연기로 발걸음, 목소리 톤, 제스처, 감정의 표현 정도 등을 통해 살아있는 인물을 만들어내는 형태다. <변호인>의 송강호, <아이언맨>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캐리비안의 해적>의 조니 뎁 등이 대표적인 예시인데,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김태리가 그 역할을 해낸다. 



작중 혜원(김태린)은 자연스럽고 과하지 않지만 눈길이 가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싱그럽고 활기차면서 내면의 상처를 때로는 완곡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보여줄 수 있기에, 관객들이 앞서 언급했듯 자연스럽게 혜원이라는 인물에 감정 이입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이는 그저 작품 내적인 연기뿐만 아니라 그녀의 필모그래피로부터 느껴지는 힘, 소위 스타 파워이기도 하다. 


김태리는 <1987>에서는 현실을 외면하려던 소시민의 틀을 깨고 나온 인물을, 그로부터 30년의 시간이 흐른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희망을 잃고 헤매는 인물을 보여준다. 배역의 차이로부터 비롯된 이질감과 불협화음이 오히려 어두운 사회를 버텨내는 청춘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영화의 개연성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물론 류준열, 문소리, 진기주와 같은 다른 배우들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지만, 그만큼 <리틀 포레스트>라는 작품의 완성도와 영향력 등 모든 측면에서 김태리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5. 사람들은 바쁜 일상에 파묻혀서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힘들거나 삶에 의욕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밥을 챙기지 않고 간단히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밥을 먹는 시간마저 아깝거나, 밥을 먹을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삼시 세 끼를 챙겨 먹는 것이 아니라 균형 잡힌, 자신이 주도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흔히 '밥은 잘 먹고 다니냐'며 안부를 묻는 이유일지도 모르고. 


<리틀 포레스트>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그냥 편안하게 밥 한 끼 먹고 가라며, 같이 밥 먹으면서 꼭 거창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힘든 것도 이야기하고 서로 힘이 되어주자며 손짓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지치고 힘들어서 바닥을 친다고 생각할 때,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몸도 추스르고 마음도 다잡아 보면 어떨까. 혼자일 수도 있고, 가족 혹은 친구들과 함께 일수도 있지만 한 끼라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면 더 좋을 것이고. 


 

A(Acceptable, 무난함)

따뜻한 음식 냄새가 배우들의 모습으로 스크린을 뚫고 넘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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