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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ul 16. 2019

에어비앤비와 횡단 열차가 만든 부조화의 여행

 시베리아 횡단 열차 러시아 여행 후기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그곳의 중심인 붉은 광장.


1. 우리는 여행을 좋아한다. 아니 단지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라 본인도 모르게 중독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대소사(입시나 취업, 시험이나 전역)가 끝난 후를 상상하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러 항공사 앱과 숙박 앱을 만지작거린다. 왜 그런 것일까. 여행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 것일까.


2. 흔히 여행을 두고 '일상에서의 탈출'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엄두도 못 내던 음식, 체험, 구경거리를 하는 것이 여행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을 '새로운 탄생'이라고도 생각한다. 아기가 세상을 처음 만나듯, 우리 역시 전혀 새로운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말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전혀 모르는 문화나 관습을 접하기도 한다.


러시아 전통 음식인 양고기 '샤슬릭'


보름간 이어진 이번 러시아 여행 또한 샤슬릭, 보르쉬와 꼴레르 등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음식을 먹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며 기차에서 1주일을 살아보고, 러시아 정교회 성당에서 미사도 드려보고, 세계 자연 문화유산인 바이킹 호수의 경관을 두 눈 가득 담아 왔다. 그 과정에서 마치 미국에 맞서던 자부심을 드러내듯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러시아의 현실은 놀랍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세상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번 여행이 일상에서의 탈출이자 새로운 탄생이었던 것은 자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과거의 여행들과 달리 이번 여행은 온전히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어째서일까. 김영하 작가의 말에 그 해답이 숨어있는 듯하다.


리스트비얀카에서 만난 바이칼 호수


3. tvn의 예능 프로인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 사전 3>에서 김영하 작가는 호캉스가 인기를 모으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호텔에는 일상의 근심이 없다'. 그리고 '우리가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가 있다'라고.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새롭고 아무런 과거의 그림자나 흔적이 없는 공간에 들어서는 것이고 그곳에서는 일상을 잊고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마련이다. 호텔은 머무르다 떠나는 곳이며, 머무르는 중에도 항상 새롭게 준비되는 장소이니. 하지만 이는 단지 호캉스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더 넓은 범주인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의 시작이었던 하바롭스크의 에어비앤비 숙소


4. 과거 여행들(필리핀, 후쿠오카, 오사카, 서유럽 여행)에서는 언제나 호텔 내지는 호스텔과 같은 숙박시설을 애용했었지만, 이번 여름 보름 간의 러시아 여행에서 나는 새로운 시도를 한 가지 했다. 바로 에어비앤비다. 그전까지는 언론에 오르내리던 사건사고들로 인해 꺼려하던 에어비앤비지만, 빠듯한 예산의 한계에 눌려 숙박비 절감을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단지 예산의 차이라고만 생각했던 에어비앤비는,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화를 선사해주었다.


하바롭스크의 '성모 영면 성당'에서 만난, 정교회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해준 친절한 러시아 신학생. 그에게는 일상일 성당에서의 시간이 나에겐 새로운 문화를 흡수하는 시간이었다.


5. 여행은 일상에서의 탈출이지만 동시에 일상의 관찰(더 격하게 말하면 관음증)이기도 하다. 내가 특정한 지역에 여행자로서 머무는 와중에도 그곳 사람들은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중이며,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것이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자 재미가 되기 때문이다. 호텔과 같은 전문 숙박시설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일상의 흔적을 지워주는 것이고, 그렇기에 여행지에서 일상과 여행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으로 벌려준다. 이는 곧 여행의 쾌감을 최대로 만들어주는 기능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지니던 '나'의 정체성이 여행지에서 이방인으로 고스란히 옮겨지는 것이기도 하다.  


힘이 넘치던 첫날하바롭스크에서의 야식과 힘이 빠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야식. 점점 요리할 필요가 없는 음식이 많아진다.


하지만 에어비앤비는 그렇지 않다. 호스트를 만나든 만나지 않든, 그들의 집을 빌려 체크인을 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그곳의 일상에 녹아들어야 한다. 머무는 동안의 청소, 식사(조식이 안 나온다!), 빨래, 설거지, 장보기 등등. 호텔에서의 서비스는 곧 전부 나의 일상과 가사노동이 된다. 그렇기에 하루 동안의 여행 전후로 나는 여행지에서 나만의 일상에 다시 빠지는 셈이고, 온전한 이방인이 아니라 현지에서의 삶을 (극히 일부지만) 공유한다. 그러니 호텔을 떠나 에어비앤비를 사용하는 여행은, 그전까지의 여행과 전혀 다른, 괴리된, 신선한 여정일 수밖에 없다.  


기차에서의 여유를 즐기는 러시아 가족.


6. 흥미로운 것은 기차 여행도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한정된 장소에서 24시간 이상을 살아야 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여행자들은 러시아 사람들의 삶을 접하고, 그들과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하며 이야기를 듣고, 함께 호흡하며 그들에게는 일상인 기차에서의 삶을 함께한다. 언제 잘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 기차에 타기 전에 무엇을 사고 준비해야 할지 등 그 자체로 이색적인 일련의 경험은 결국 러시아 사람들의 일상을 일부나마 체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7. 17일간의 러시아 여행이 지금까지의 여행들 중 가장 좋은 시간이었느냐. 그렇지는 않다. 여행을 떠나서까지 정리하고, 청소하고, 장보고, 요리하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이번 여행이 가장 새롭고, 신선하고, 여행 다웠느냐고 묻느다면 단언컨대 그렇다고 할 수 있을 듯싶다. 에어비앤비와 기차의 결합, 일상과 탈출의 부조화, 그리고 현지인과 이방인의 부조화가 빚어낸 여행은 그 무엇과도 다른 시간이었으니까.  


밤이 깔린 땅과 아직 밝은 하늘의 부조화가 인상적이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야경


부조화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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