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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Jul 19. 2019

인스타그램과 여행의 잘못된 만남

시베리아 횡단 열차 러시아 여행 후기

1.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즐긴다. 호텔에서 편히 쉬기도 하고, 발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니기도 하고, 한 곳에서 오래도록 분위기를 즐기기도 한다. 누군가는 철저히 계획에 맞춰서 움직이고, 또 다른 이들은 전날 저녁 내지는 당일 아침이 되어야 무엇을 할지 정하기도 한다. 자유여행보다는 패키지여행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제각각의 방식이고, 호불호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그 누구도 옳고 그르다고 이야기할 권리는 없다. 그게 다양성이니깐. 


여름 궁전 내에 있는 그리스 양식의 분수


2. 나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나는 여행을 가서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맞춰서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날은 3만 보를 넘게 걸어 다니기도 하고, 어느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장소에만 있기도 한다. 그래서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가족, 친구들은 아마도 매일 힘들 것이다. 어떻게 여행을 할지 종잡을 수가 없으니. 


그래도 나에게 한 가지 원칙은 존재한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보든, '그곳'을 내 마음껏 즐기는 것. 유명한 것보다는 내 마음에 드는 나만의 무엇인가를 찾는 것. 나 보다는 여행지의 고유한 매력을 맛보고, 기억하고, 저장하고, 내면의 경험으로 남기는 것. 이것이 나의 여행 방식이다. 이러니깐 일본 가서 자라도 먹어보고, 영국 가서 사슴도 먹어보고,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서 낮잠도 자고, 스페인에서 샹그리아를 마시다 만취하고, 관광지 갈 시간에 여행지 현지 영화관에서 영화도 보고, 남의 성당 가서 미사도 하고, 군인 시절에는 휴가 나와서 '북 스테이'도 했겠지. 


생애 첫 인스타그램 업로드 이미지


3. 여행의 원칙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나는 이번 러시아 여행에서 두 가지 변화를 시도했다. 하나는 에어비앤비였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인스타그램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인스타그램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지만, 주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인스타그램을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것들도 많다 보니 여행도 갈 겸 예쁜 사진들도 찍을 겸 겸사겸사 택한 변화였다.  


러시아 여행지 사진만으로 가득한 인스타그램


4. 인스타그램(Instagram)은 명칭 자체가 ‘즉석’이라는 단어인 인스턴트(Instant)와 사진과 같은 것을 보낸다는 뜻의 ‘텔레그램(Telegram:전보)’의 합성어로, 시각이 사람의 감각기관 중 가장 큰 중요도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사용자들이 가장 직관적이고 빠르게 정보를 수용하는 SNS일 것이다. 인스타그램의 스토리 역시 같은 특징을 지는 기능이다. 이에 더해 긴 설명 대신 간단한 해시태그를 이용해 사진에 대한 설명을 더하는 것도 흥미와 중독성을 선사하는 요소일 테고.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수치로 표현한 팔로워 또한 인스타그램의 핵심 기능인데, 자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타고난 허영심을 정확하게 찌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외식, 여행, 쇼핑 업계 등에서 인스타그램은 가장 중요한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는 어느 카페를 가든, 어느 레스토랑을 가든, 어느 여행지를 가든 음료와 음식의 맛, 그리고 여행지만의 매력을 판단하기 이전에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이미지를 통해 선제적으로 판단을 내리곤 한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mable)이라고도 불리는, 자신의 인생 샷을 찍을 수 있는 장소인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도 하고.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이 개인적으로 인스타그램을 싫어하게 된 이유였다. 


하바롭스크에서 만난 미국 분위기 물씬 나는 수제버거 집. 


5. 물론 나 역시 예쁜 카페, 예쁜 레스토랑, 예쁜 여행지에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그 사진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단지 이미지를 획득하는 것이 우선시 되는 분위기와 세태가 싫을 뿐이다. 왜냐하면 내게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으면서 이미지를 가져가는 것은 내가 봤던 그 광경, 그 당시의 기분, 그 흥분과 전율, 혹은 그 당시의 우울함과 피곤함을 떠올리고 희미하게나마 다시 느끼기 위한 부차적인 수단이기 때문이지 비율 좋고 멋지게 나온 나 자신을 보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솔직히 말해 스스로가 그렇게 멋있다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면 되겠지).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기껏 선택한 인스타그램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이칼 호수


6.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가던 중, 이르쿠츠크라는 도시에서 1박 2일간의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둘째 날 아침부터 친구와 함께 세계 자연유산이기도 한 '바이칼 호수'로 향했다. 운이 좋게도 관광객조차 몇 명 없던 바이칼 호수는, 정말이지, 환상적인 장소였다. 청명한 하늘, 약간의 구름, 서늘한 날씨, 티 없이 맑으면서도 깊은 푸른색의 잔잔한 호수, 그리고 홀로 떠 있는 부표와 흔들리는 선착장.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 더없이 완벽한 장소였다. 곧 관광객들이 몰려와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무참히 부서진 완벽함이었지만.  


물론 이해는 간다. 인생 샷을 찍고 싶은 그 마음을. 이토록 예쁜 자연환경 앞에서 누가 안 그러겠는가. 하지만 그 인생 샷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흥취마저 깨뜨려가며 수백 번의 사진을 찍어야 할 이유는 대체 뭘까. 바이칼 호수라는,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고 인생의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아름다운 공간에서 나만의 경험, 나만의 생각, 나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그 기회를 하트와 DM 몇 개(물론 많으면 수십만 개일 수도 있지만)와 맞바꿔야 할까. 모스크바의 크렘린에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 궁전에서도, 러시아의 여러 미술관에서도 차르들과 러시아 사람들의 욕망과 희망과 염원과 좌절을 보고 듣고 느끼고 마음에 담을 수도 있을 텐데 왜 이 기회를 걷어 차는 것일까. 


여름궁전


7. 물론 나도 유행에 휩쓸린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할 게 생기면 당연히 하고 싶다. 하지만, 그래서 굉장히 오만하고 부끄러워질 말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지 못하고

식당에서 갓 나온 음식의 냄새를 맡지 못하고

미술관에서 조용히 말 걸어오는 그림들을 외면하고

성당에서 화려함 이면에 숨은 거룩함을 느끼지 못하고

아름다운 궁전 앞에서 그 궁전이 담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과 희망을 알아채지 못하고 

경이로운 자연을 오롯이 두 눈에 담지 못하고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의 흥분과 전율에 공감하지 못하고

처음 만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그저 원하는 너의 모습만 담아 가는 

너는 참으로 불쌍하다. 


만약 이런 것이 세련되고, 시대에 적응하며, 얼리어답터가 되는 길이라면

나는 기꺼이 촌스러운 낙오자가 되련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여름 정원 가는 길. 정원에서 느긋하게 바람을 맞고, 나무 향을 맡으며 느긋하게 쉬는 것도 좋지 않을까.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 <스파이더맨: 파 프로 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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