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출산, 고령화 등의 문제와 맞물려 청년 실업과 같은 청년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 담론이 된 지도 오래다. 언제 어디서든 청년 담론을 다룬 뉴스, 책, 방송 등을 만날 수 있고, 많은 청년들이 대학에서의 졸업을 미루거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기술을 배우기도 하며 헬조선을 떠나 해외로 떠날 고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성 언론이나 미디어들은 이들을 88세대, N포 세대, 이태백, 아프니깐 청춘, 노오력과 열정 페이 등 무기력하고 수동적이며 개인적인 이미지로 한정시켜 왔다(<스물>과 <청년경찰> 등은 예외일 듯). 이러한 추세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미는 영화가 2019년 여름 흥행 전쟁에 끼어들었다. 바로 <엑시트>다.
2. 곧장 본론부터 말하자면, <엑시트>는 고층 빌딩을 배경으로 하는 액션과 조정석과 윤아를 얼굴로 하는 청년 담론에 집중해 이를 코미디로 유쾌하게 포장한 영화다. 따라서 이 영화는 예고편이나 홍보물과 달리 재난 영화로의 정체성에는 관심이 없다. 재난 자체에도 큰 관심이 없다. 화학가스로 인한 재난이라는 소재는 영화의 배경과 원인을 제공하는 것 외에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재난 묘사 또한 정말 필요한 정보 제공을 위한 장면이 아니면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재난 액션물을 표방하는 영화에서 재난이 그저 배경이라면 당연히 액션의 퀄리티가 훌륭해야만 한다. 그리고 <엑시트>는 훌륭할 뿐만 아니라 신선하기까지 한 액션을 선사한다. <엑시트>의 액션은 인물들의 동선을 이해하기 쉽고 그 액션이 필요한 당위도 명확하며 리듬감도 좋다. 관객을 조여야 할 때와 풀어줘야 할 때를 잘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반적인 재난영화에 등장하는 초인과 같은 주인공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엑시트>는 '등산부' 였던 주인공들의 과거를 단순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설정, 제시하며 효과적으로 액션씬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근래 본 한국 영화 액션들 중 가장 신선하면서 직관적이고, 몰입감이 좋은 액션이다.
3. 뛰어난 퀄리티의 액션을 수직과 수평의 이미지로 청년 담론과 연결시키는 연출도 인상적이다. 주인공인 용남(조정석)과 의주(윤아)는 죽을 고비를 여럿 넘기며 힘겹게 빌딩을 오르고 사람들을 구하고 전력으로 질주하며 생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사회의 기준을 맞추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현실을 연상시킨다. 또 수직, 수평적 액션의 이미지에 더해 본인들이 재난이라고 자조하거나, 높은 곳에 있어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등의 대사는 얼마 전에 천만 관객을 모은 <기생충>의 계급의식을 순간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현재 청년 세대들의 특징을 잘 활용한 연출들은 <엑시트>의 제작진들이 청년 이슈를 다루는 데 있어 많은 고민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지금의 청년들은 핸드폰과 인터넷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유롭게 활용하는 세대다. 따라서 어려움에 빠진 주인공들에게 여러 개인방송(실제로 여러 BJ들이 카메오로 출연한다)과 드론이라는, 뉴 미디어와 뉴 테크놀로지로 응원과 도움을 보내는 장면은 청년 세대의 고유한 특성과 능동성, 협동심을 부각하는 영리한 연출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연출은 기성 언론과 미디어가 만든 청년들의 이미지와 정면으로 대치하기에 더욱 눈에 띈다.
4. 하지만 그렇다고 <엑시트>가 비판받을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엑시트>는 투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고도 여주인공인 의주(윤아)에게 독립적인 내러티브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 결과 용남(조정석)으로 대표되는 남성들과는 달리, 청년들의 또 다른 절반을 이루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특정 장면들을 제외하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청년 담론의 확장, 다양성, 완성도를 한정시킨 아쉬운 영화적 구성인 셈이다.
또한 청년들의 현실을 세심히 관찰하고 그들의 심정을 재현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사회제도와 같은 본질적인 측면을 건드리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청년문제의 해결방안이 결국 개인의 노력, 각성에 달려 있다는 식의 용두사미에 그치는 듯한 결말이라든가. 영화 내러티브의 발단과 전개가 모두 만족스러웠기에 상업성과의 타협을 위해 지나치게 안전한 선택을 내린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이는 제작사인 외유내강의 다른 작품 <베테랑>을 연상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베테랑>도 조태오(유아인)라는 압도적인 악역을 앞세워서 개인의 일탈로 사회 문제를 덮으려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기 때문에...
5. 또한 <엑시트>가 영화적인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영화의 세부 플롯 간에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보니 불필요한 캐릭터가 등장하며, 몇몇 인물들은 개연성 없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다소 산만하게 이루어진 편집은 문제를 키울 뿐이다. 또 개인적으로는 주인공들이 방독면을 쓴 장면에서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았는데, 후시 녹음을 통해 보완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엑시트>는 단점과 아쉬움보다는 영화의 고민과 노력, 배우들의 열연을 기억하고 싶은 영화다. 여름 시즌을 노린 텐트폴 영화임에도 사회 현실을 최대한으로 반영하고, 왜곡된 청년 세대의 이미지에 맞서며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신선한 액션을 IMAX로 보여주는 등(세 번째 한국 영화) 새로움에 도전해 일정 부분 성취를 이뤄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또한 페미니즘처럼 이슈가 되는 담론을 어설프게 차용한 영화들도 많은 가운데, 영화를 감상하면서 <엑시트>의 제작진이 청년 담론을 단순히 흥행을 위한 미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고민 끝에 진정성을 담아 영화로 표현했다고 느낀 점도 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