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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Aug 17. 2019

바르셀로나의 촛불과 장미를 기억하며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기

2019년 8월 3일과 8월 4일 미국 텍사스와 오하이오에서 백인 우월주의자에 의해 연달아 발생한 총기난사 범죄로 인해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다. 노르웨이에서도 비슷한 테러 시도가 발생해 충격을 주었다. 8월 6일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무슬림 형제단’에 의한 차량폭탄테러가 발생했다. 인종, 종교, 정치로 인한 폭력과 테러의 뉴스를 접하면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테러 현장을 방문했던 기억을 되짚어 봤다. 



바르셀로나를 방문한 것은 2년 전인 2017년 8월이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기 하루 전, ISIL이 폭탄테러를 저질렀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바르셀로나에는 터질 듯이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통제된 지하철과 방탄복을 입고 자동소총을 들고 있는 경찰들. 테러 위험을 의식한 듯 리그 개막전임에도 빈자리가 수두룩했던 ‘캄 노우’ 축구 경기장까지. 이때까지만 해도 생애 첫 바르셀로나 여행은 악몽으로 기억될 예정이었다. 


여행 둘째 날에는 람블라스 거리로 향했다. 본래 재래시장, 상점, 극장 등이 모여 있는 도시의 중심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그 당시 람블라스 거리는 폭탄 테러가 발생한 비극의 현장이었다. 실제로 테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사람들과 희생자들을 기리는 장미와 촛불들이 거리의 광장을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테러 현장에서 발견한 것은 공포와 두려움, 슬픔뿐만이 아니었다. 람브라스 거리는 다양성이 공존하는 평화에 대한 바람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2017년 여름, 람블라스 거리에서 사람들이 희망했던 것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평화였다.


사람들이 정치나 종교 등을 이유로 싸우거나 다치는 일이 없기를 원했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설득하며 합의된 사회적 제도 하에서 정당한 방식으로 의사표시가 가능하기를 바랐다. 다양한 의견들과 관점들이 공생할 수 있고, 사람들이 더는 테러와 같은 강제적이고 물리적인 수단에 의지하지 않기를 염원했다.


이러한 사람들의 염원과 희망을 담은 광장의 장미는 아름다웠다. 우리의 바람과 믿음을 태우며 거리를 밝히던 촛불들은 따뜻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바라보던 내 마음에는 이내 안도와 용기가 들어섰다. 바르셀로나 여행은 더 이상 악몽이 아니었다. 


2019년 여름, 2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우리가 꿈꾸던 가치는 여전히 현실에 없다. 제각각 찢어져 무리를 이룬 채 혐오와 증오 속에서 대립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나 역시 자유롭지는 않다. 무지개처럼 서로 다른 색깔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는 민주적 의사표시가 가능한 사회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미 극복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골이 생긴 듯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르지만 함께 하는 세상을 향한 희망과 믿음의 끈은 놓지 않으려고 한다. 난민, 국적, 종교 등의 상이한 이해관계가 뒤섞인 테러 현장을 다양성, 관용,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가 변화시키는 현장을 목격했고, 또 함께 있었기 때문에. 순진하다고, 나이브하다고, 현실적이지 않은 이상일뿐이라고 비난해도 좋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소한 심경 변화일 테니까.  


2017년 여름, 여행 마지막 날 다시 들른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에 촛불과 장미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피어나는 믿음과 희망이 장미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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