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와 일상 언어
18~21개월 간 군대에서의 경험은 시간대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입대 전, 복무 중, 전역 후가 그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신기한 것이 하나 있다. 앞서 말한 세 시기 중 어느 시간대에 속해 있든 간에 주변 사람들이 해주는 말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입대 전에 "고생해"부터 "남자면 군대 정도는 가줘야지", "군대 가서 철들고 와", "이제 남자가 되겠네?"와 같은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면 복무 중이나 전역 후에는? "야 이제야 남자답네", "성숙해졌네. 어른 같다" "사람 됐네" 등등...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 말만 들으면 입대 전엔 그저 어리던 나는 군대에 있는 불과 2년이 안 되는 시간 사이에 어느새 진짜 남자, 어른, 사람이 되었다. 진짜 사나이가 된 것이지.
물론 안다. 군대에서 힘내라고, 군대가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격려해주기 위해 한 말들이라는 것을. 그저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하지만 그 선의가 품은 함의 때문에, 안타깝게도 나는 선의를 선의로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남자라서 군대를 가야 한다면, 군대를 가서 남자가 된다면 정당하게 군대를 않은 주변의 친구들은?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에 철심을 박고 무대에서 춤을 추는 것이 무리인 아이돌은? 그들은 죽을 때까지도 남자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면 남자가 아니라서 군대를 안 가는 것은 정상인 걸까? 헌법 상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 그런데 그 국민의 범주에서 우리는 왜 자연스럽게 여성들을 제외하는 걸까? 또 진짜 군대를 가야만 철이 들고 어른이 된다면 여성들은? 그들도 죽을 때까지 어른도 사람도 되지 못하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진짜 시민도 국민도 아닌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병역 의무 수행이 시민권뿐만 아니라 문화, 정서 의식 등 모든 차원에서 '인간됨'의 내용을 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러한 인식에서는 "어른, 사람=남성"을 뜻하게 된다.'* 따라서 앞서 들었던 모든 일상 언사는 철저히 남성 중심적 사고관에서 비롯되는 일상적 언설인 셈이다.
헌법 상의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병역 의무를 이행할 시스템은 전무하다(직업으로서의 군인을 제외하면). 대신 그들은 남성들을 보조하는 방식의 간접적인 국방의 의무를 떠맡는다. 군대가 병사의 애인과 여자 친구에 관심이 많은 이유다. 군대는, 그리고 군대의 관습을 용인하는 사회는 연애를 통한 여성들의 간접적인 병역 의무만을 부추기며 여성들이 병역의무를 통해 남성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는 것을 막는다. 젠더에 따른 위계질서를 굳건히 하려는 목적이기도 하고. 남성만이 진짜 어른이고 사람이며, 여성들은 철저히 부수적인 존재라는...
실제로 군대에서 신병이 전입을 오면 제일 먼저 파악하는 것 중 하나가 애인의 유무다. 이는 공식 기록에 남아서 중대장, 대대장에게 보고가 올라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신병은 선임과 간부를 비롯한 사실상 모든 사람으로부터 여자 친구와 관련된 질문 공세를 버텨내야 한다. 훈련소에서부터. 그 과정에서 각종 성희롱이 포함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렇듯 남성 중심적 위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철저히 계획된 군대이기에, 남성들은 군대가 자신들에게 특권을 가져다주는 고마운 존재로 여기는 것이 합리적이다.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하지 못하고 위계질서에서 밀려나는 여성들이 군대를 증오하는 것이 맞을 것이고. 하지만 정작 군대에서 현역으로 복무하는 병사들은 군대를 혐오한다. 자대가 있던 방향으로 볼일도 누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나 또한 자대였던 강원도 고성군을 다시 갈 생각이 전무하다. 동시에 그들은 시민으로서의 자격이 박탈된, 어떤 의미에서 그들보다 아래의 존재인 여성들도 혐오한다. 혜화역에서 열렸던 여성 집회 뉴스를 접한 대다수 현역 군인들은 '지랄하지 말고 니들이 여기 와서 군 복무하던가' 내지는 '꼴페미들이 나대네' 등 증오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어째서일까?
그 이유도 조금만 고민하면 쉽게 도출할 수 있다. 권력을 지니고 있는 기득권층 남성들에 의해서 여성들과 현역 복무를 하는 남성들이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래전 사라졌지만 아직도 뜨거운 떡밥인 군 가산점 제도를 보자. 제도의 취지는 사실 문제가 없다. 국가가 의무를 다한 시민들에게 보상을 해준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문제는 그 시민이라는 범주에 여성들과 군대를 가지 않은 남성들이 모두 제외된다는 점이다. 병역 의무를 이행할 방법이 없는 여성들은 물론, 국가에서 정당한 이유로 병역 의무를 제외시킨 남성들에게 군 가산점 제도는 취업과 생존에 직결된 불이익이다. 따라서 병역 의무와 관련된 시스템과 사회 인식 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군 가산점 제도보다 선행되어야 할 본질이다.
그러나 현실은? 남성과 여성으로 갈라져 서로를 적대시하고 혐오할 뿐이다. 여성들에게도 병역 의무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남녀 구분 없이 의무를 이행하는 이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주면 될 일임에도 불구하고. 즉 남녀가 대립할 문제가 아니라, 연대할 필요가 분명한데도 여성과 남성 모두 권력을 쥐고 있는 남성 지배 세력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아니라고? 청년 정당을 선언한 바른미래당의 행보만 보더라도 권력을 쥔 자들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군대를 갔다 온 남성들도 현역과 공익으로 나뉘어 서로 갈등한다. 한술 더 떠서 현역 중에서도 어느 부대가 더 힘들었는지, 어느 보직이 더 힘들었는지를 두고 싸우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남성들끼리 싸움이 젠더 갈등으로 변한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서로 싸우며 군대의 본질적인 문제를 공론화시키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웃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는 점이다.
군대를 가는 것은 분명 국가와 국민을 위해 주어진 중요한 의무다. 하지만 현재의 시스템 상에서 병역 의무는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연대할 사회 구성원의 절반 이상을 2등 시민으로 만들고, 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청년 남성들도, 제도적으로 병역 의무를 할 수 없는 청년 여성들도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최소한 병역 문제를 두고) 서로를 혐오할 이유도 없으며 내가 제대했으니 보상을 달라고 요구함과 동시에 손 쓸 도리 없이 제도상으로 피해를 보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도울 수 있는 시스템, 사회 제도, 사회적 인식을 고쳐 나가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말처럼 쉽게 되는 게 아니라서 문제지.
군대를 간다는 것. 이것은 결코 남자, 어른, 사람으로 성장하는 일이 아니다.
*<페미니즘의 도전> 247페이지, 정희진, 교양인,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