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전망대 방문기
2018년 9월 19일, 남북은 군사적 긴장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를 채택했다. 이후 합의서 이행의 일환으로 DMZ 내에서 GP(Guard Post, 비무장지대 내에 위치한 최전방 감시초소) 철수와 상호검증 및 6.25 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이 이루어졌다. 올해 4월에는 평화 둘레길 조성을 통해 DMZ 일부가 민간에 공개됐다. 하지만 군사 분야 합의서 채택과 이행이 과연 남북 평화에 기여했는지는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다. 최동북단에 위치한 금강산 전망대에서 DMZ를 바라보며 그 질문의 답을 찾아보았다.
금강산 전망대는 강원도 고성군에 자리 잡고 있는 대한민국 최동북단 관측소다. 해발 약 200m 고지에 서 있는 금강산 전망대는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검문소들과 가파른 보급로를 거쳐 힘겹게 도착한 금강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DMZ는 그 노력의 대가로 충분하다.
금강산 전망대 3층 브리핑실과 2층 테라스에서 만나는 DMZ의 풍경은 손이 저절로 카메라에 가게 만드는 절경이다.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과 푸른 바다가 인상적인 해금강은 우리가 닿지 못하는 금강산의 자태를 조금이나마 보여준다. 구선봉 바로 앞에 위치하고, ‘나무꾼과 선녀’의 배경이기도 한 감호는 산봉우리들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맑은 물이 인상적이다. 서쪽에 위치한 월비산은 동해와 대조를 이루며 전경의 균형을 잡아주고, 바닷바람과 산바람에 좌우로 흩날리는 푸르른 숲은 편안함을 선사해준다.
하지만 DMZ의 아름다운 자연을 마주한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전방의 절경은 자세히 볼수록 북한군의 GP, 초소, 철책과 굳게 닫힌 통문이 들어선 잿빛 그림으로 변해갔다. 지뢰 등의 장애물이 폭발해 듬성듬성 파인 해금강의 해변은 아직도 남북이 전쟁 중이라는 현실을 새삼 일깨운다.
GOP(General Out Post, 휴전선 철책을 지키는 경계초소) 철책은 전방의 DMZ를 가로지르고 있으며, 군인들과 여러 감시장비는 전방을 엄중히 주시하고 있었다. 전망대 서쪽 전방에 위치한 고성 GP와 전망대 동쪽에 위치한 동해선 철도는 용도를 잃은 채 황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올해 6월, 강원도 고성 GP는 ‘고성 최동북단 감시 초소’라는 이름으로 문화재 등록이 되었지만, 안전조치 등의 이유로 지금까지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동해선 철도 연결 사업 역시 작년 12월 남북 공동조사 이후 추가적인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금강산 전망대에는 현재 8군단과 22사단 소속 약 50여 명의 군인들이 상주하며 감시 임무를 수행 중이다. 그중 GP 시범 철수와 남북 상호검증, 동해안 철도 점검 등 남북 간의 이벤트를 모두 겪은 한 병사는 과거 동료였던 내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이번에 남북미 정상회담도 하고. 작년보다 (남북) 분위기 좀 더 좋아진 거 같아?” “알면서 왜 물어. 여긴 뭘 해도 똑같은 거.”
북한군의 활동은 그대로이고 따라서 최전방 분위기도 다를 게 없다는 뜻이었다. 그는 오히려 GP철수로 인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작년보다 감시 근무가 더 강화되었다고 덧붙였다.
“솔직히 GP 시범 철수나 평화 둘레길 다 너무 일렀지. 아직도 북한 애들 철책 넘어서 지뢰 점검하고 그러는데. 감시 공백 생긴다고 기껏 GP에서 철수한 장비도 다시 설치하는 마당에 보여주기로는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전역을 반년 정도 앞둔 상병은 같은 질문에 더 부정적이었다. 이른바 평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체감하는 불안감은 여전히 크다는 것이었다. 특히 그는 과거 GP에서 사용하던 감시장비와 무기들이 인접 기지들에 재설치되는 걸 보면서 “DMZ 근방에 화기들은 그대로인데 과연 GP 철수와 같은 이벤트들이 진짜 평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북한을 마주한 금강산 전망대에서 일출을 보다 보면 아침을 알리는 청아한 새소리가 들리곤 한다. 하지만 새소리도 이내 방탄조끼를 입고 총과 실탄을 든 채 교대하는 병사들의 군화 소리에 묻혀 버릴 뿐이었다. 금강산 전망대에는 여전히 낮게 깔린 긴장감이 가득했다. 직접 마주한 대한민국의 DMZ는 평화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