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noDAY Sep 09. 2019

공포 영화의 탈을 쓴 영웅 서사

<그것: 두 번째 이야기> 리뷰

1. 여태껏 공포 영화 속 공포의 대상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전설 속 괴물, 귀신, 유령, 살인마, 사이코패스를 거쳐 알고 지내던 지인까지. 영화 속 공포의 대상은 시대가 지나면서 조금씩 관객인 나와 친밀한 대상으로 변해왔다. 더욱 복잡해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단순히 알 수 없는 대상보다도 이미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것이 더 충격적이고 두렵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2년 만에 돌아온 <그것>의 속편, <그것: 두 번째 이야기>(이하 <그것 2>)는 공포를 불어 일으키는 대상과의 싸움을 자기 자신과 내면의 공간으로까지 축소시킨다.



2. <그것 2>는 전편의 시점에서 27년 후의 일을 다룬다. 영화 초반부만 해도 '루저 클럽'에 속한 주인공들은 제각기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이크(이사야 무스타파)'의 '그것'이 돌아왔다는 전화 한 통에 그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포기한 채 데리로 다시 모인다.


영화는 주인공들을 과거로 데려간다. 들은 각자의 과거를, 특히 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일들을 다시 대면한다. 거부당한 사랑, 동생의 사망, 정체성, 부모와의 관계와 재난에서의 생존. 물론 전편에서 루저 클럽은 내면의 두려움을 극복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은 두려움을 인식하고 부정하는 데 성공했을 뿐, 딛고 나아가지는 못했다. 몸은 성장하고, 사회적으로는 어른이 되었지만 그들의 내면은 여전히 1편의 아이들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의 이름을 듣자마자 외면해 오던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고, 엄청난 공포에 휩싸인다.


다시 만난 페니와이즈는 루저 클럽에게 그들의 과거를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주인공들에게 그들의 과거는 한때 그들이 지녔던 공포심보다 더 무서운 대상이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두려움, 죄책감, 실망감이 현재 그들의 삶을 좀먹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현재의 삶에 만족할 수 없었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저 클럽에게 페니와이즈는 더 이상 과거의 악몽이 아니라 현재를 살기 위해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그것'이 살아있는 한 그들은 자신의 현재를 감당할 힘도 없고 계속해서 과거에 발목 잡힌 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현재로 돌아온 루저 클럽은 그것을 죽이기 위해 지하 깊은 곳으로, 그들의 내면 깊은 곳으로, 심연으로 내려간다.



3.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 우리가 아는 수많은 영웅들은 언제나 어둠과 지하로 내려가곤 했다. 헤라클레스는 하데스가 지배하는 지하세계로 내려갔고,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가 사는 미궁으로 들어갔다.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에서 브루스 웨인은 우물 깊은 곳으로 떨어진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영웅들은 어둠을 대면한다. 하지만 그들이 대면하는 것이 그저 바깥 세계의 어두움과 두려움 은 아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미궁으로 내려간 테세우스에게 단지 '실'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테세우스를 미궁에서 살려낸 것은 뭔가 거창한, 신비하고 위대한 힘을 지닌 사물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실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테세우스는 미궁이라는 어둠 안에서 본인 스스로 가리고 있던, 영웅으로서의 새로운 자아를 찾기에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귀환할 수 있었다. 그에게 실은 부차적이었을 뿐이다. 이처럼 영웅은 어둠, 지하 그리고 심연에서 기존의 모습에 가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해서 돌아온다. 헤라클레스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테세우스가 아테네의 영웅이 되고,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 재탄생한 것처럼.


<그것 2>의 루저 클럽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갇혀 있다. 그래서 페니와이즈는 그들을 손쉽게 농락한다. 그들은 다시 한번 지하로 내려가지만, 페니와이즈를 죽일 수단을 잃고 패닉에 빠진다. 바로 그 순간에 그들은 마침내 오래 기간 자신들을 억누르던 과거의 자아를 극복하기로 마음먹는다. 어린 시절 두려움과 그로부터 비롯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진짜 자아를 마주하고 지상으로 귀환하는데 성공한다. 그 어떤 도움의 손길 없이 온전히 자신들의 힘만으로. 마치 테세우스에게 실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지상으로 귀환한 루저 클럽은 그들의 삶을 온전히 영위한다. 과거의 두려움을 딛고, 스스로에 대 확신을 지닌 채. 그들은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영웅으로, 온전한 하나의 성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따라서 <그것 2>는 공포 영화이면서 동시에 성장 영화다. 특히 세상과 내면의 지하로 내려가 새롭게 태어난다는, 원형적인 영웅 신화의 모티브를 그대로 차용한 성장담이다.



4. 사실 이러한 원형적인 영웅 신화와 성장담의 메시지는 많이 접할 수 있는 만큼 진부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기 쉽다.  하지만 <그것 2>는 공포 영화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관객들의 흥미를 유지하는데도 성공한다. 물론 전반적으로 잔인한 장면이나 유혈이 낭자한 부분들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등장하는 페니와이즈의 여러 모습들은 그 자체로 기괴할 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서 등장하면서 공포 영화의 핵심인 서프라이즈효과적으로 선사한다. 그러나 <그것 2>에서 서프라이즈보다 인상적인 것은 영화 전반에 흐르는 서스펜스의 향연이었다.


중 인물은 알고 관객 모르는 정보가 있는 상황이거나, 혹은 그 반대일 때 발생하는 긴장감을 서스펜스라고 부른다. 따라서 영화 전반에 서스펜스가 많거나 뛰어나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가 스토리가 쫄깃하고 집중하기 쉽다는 뜻이다.


리고 <그것 2>는 두 가지 다른 상황을 적절히 활용해 손에 땀이 찰 정도의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우선 단편적인 씬이나 시퀀스에서는 관객들은 알지만 주인공들은 모르는 상황을 설정해 짧고 굵은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반대로 영화 전체의 흐름을 놓고 봤을 때는 주인공은 알지만 관객들은 모르는 특정한 설정을 제시해 영화 후반부의 서스펜스를 극대화한다. 특히 영화 후반부의 서스펜스는 공포영화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할 뿐만 아니라, 루저 클럽의 내적 성장과 이어지면서 영웅 신화 서사를 완성하기도 한다.   



5. 하지만 공포 영화로서의 장르적 특성을 제대로 챙긴 것과는 별개로 아쉬운 부분도 있다. 우선 긴 러닝타임은 감상에 있어서 부담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간혹 가다 등장하는 다소 유치한 연출 옥에 티이고 또한 중반부까지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주던 페니와이즈는 후반부 들어서 평범한 판타지 영화의 전형적인 빌런 같은 존재감을 보여주다 퇴장해 버린다. 전체적으로 주인공들의 분량을 배분하려는 노력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끝내 빌(제임스 맥어보이)과 베벌리(제시카 차스테인)에게 분량이 쏠리는 점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 모든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그것 2>는 볼만한 가치가 있다. 지금 현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또 과거의 자신을 회피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나를 옥죄는 '그것', 그것을 찾아내 해치우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과거의 나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이유를 깨닫고 긍정적인 효과를 체감할 수 있을 테니까. 누구든 스스로를 옥죄는 '그것'이 하나 정도는 있을 테니까. 이는 <그것>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다른 공포 영화들을 압도하는 흥행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것: 두 번째 이야기>는 과거로의 여정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성장담이다. 동시에 내면이라는 심연으로의 탐험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획득하는 영웅 신화이고, 장르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훌륭한 공포 영화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나를 옥죄는 강렬한 두려움그것의 발원지를 찾아내 무찌를 때의 쾌감

매거진의 이전글 당장 보이고 들리는 것 이상은 없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