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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Sep 17. 2019

한 장점에만 올인하면 벌어지는 참사

<나쁜 녀석들: 더 무비> 리뷰

1. 캐릭터 쇼. 이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영화들이 몇몇 있다. 뚜렷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 간의 갈등, 대립, 협력 등의 관계 변화로 스토리를 전개하고 캐릭터의 개성을 적절히 변주해가며 서스펜스, 액션, 유머, 카타르시스 등 다양한 재미를 뽑아내는 영화들. 이 영화들은 영화 초반 각 인물의 차별적인 매력과 동기를 인상적인 방식으로 소개해야만 한다. 캐릭터의 매력이나 과거사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할 경우캐릭터성의 부딪힘에서 전개되는 스토리 몰입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도둑들>과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두 영화 모두 십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도둑들>은 간단하고 효과적인 대사와 쇼트로 인물들 고유의 특징을 제사하면서 적절한 분량을 배분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 결과 단순하고 익숙한 서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캐릭터들로 인해 생동감 넘치게 느껴졌다. 반면에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인물들 간의 비중도 이상하면서 그들의 명확한 매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인물들 간의 관계 변화, 갈등과 협력 등 스토리의 굵직한 변곡점에서 캐릭터들의 행보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쁜 녀석들: 더  무비>는 안타깝게도 후자의 경우다. 



2.  <나쁜 녀석들: 더 무비>는 추석 시즌을 겨냥한 영화로 명확한 콘셉트가 눈에 띈다. '범죄자를 잡기 위해 더 악한 범죄자들이 나섰을 때의 일탈적인 통쾌함 혹은 퇴폐미.' 탈옥에 성공한 범죄자들을 더 악한 범죄자들이 팀을 구성해 추적하고, 흑막에 숨어있던 더 큰 범죄와 맞서다는 줄거리부터 이 콘셉트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설사 스토리가 부실하고 CGI가 어설프더라도 영화 분위기만 잘 전달하면 된다는 의지가 느껴질 정도다.


그러니 원작 드라마의 세계관 설정과 설명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저 몇몇 인물들을 통해 드라마와의 느슨한 연결고리를 만든 후 영화만의 매력을 뽐내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화의 핵심이 되어야 할 인물들을 구축하고 소개하는 방식이 너무 안일하고 진부하다는 점이다. 


우선 영화는 주인공 4명이 어떤 측면에서 '나쁜' 녀석들인지를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 주변 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미친개, 천하의 사기꾼, 무시무시한 용역 깡패와 같은 인물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애를 쓰기는 한다.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 4인방이 순전히 '악행'을 저지르는 직접적인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과거사를 풀어놓기 급급하다. 그 결과 관객들은 자막 상으로 등장하는 악독한 범죄자들 대신 누명을 쓰고 옥살이 중인 억울하고 착한 피해자 4명을 만날 뿐이다. 



3. 각각의 캐릭터들도 문제가 많다. '곽노순(김아중)'은 팀의 브레인으로 소개되지만, 그녀의 역할이 드러나는 부분은 없다. 곽노순이 직접적으로 범죄자를 잡을 때도 영화는 그녀의 뛰어난 지략을 활용하지 않는다. 그저 범죄자와의 과거사가 중요할 뿐이고, 이러한 역할은 굳이 곽노순이 아닌 다른 캐릭터가 맡을 수도 있는 부분이다. '고유성(장기용)'의 경우 영화는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성에서 그의 동기부여나 개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오구탁(김상중)'과의 인연도, '박웅철(마동석)'과의 갈등과 대립도 잘 부각이 안 되다 보니 무색무취한 캐릭터로 등장할 뿐이다. 따라서 두 캐릭터 모두 플롯 상 반드시 필요했던 캐릭터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구탁과 박웅철은 예상 가능한 이미지 안에 안전하게 머물고 있다. 범죄자를 브리핑하는 오구탁의 모습, 압도적인 힘과 귀여움이라는 반전 매력을 지닌 박웅철은 하나의 인물로서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것이 아니다. 관객들이 배우들에게 기대하는 전형성을 정확히 충족시킬 따름이다. 특히 <부산행> 이후 마동석은 일관된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는데, <나쁜 녀석들: 더 무비>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인물들을 구축하는데 얼마나 안이했는지가 정확히 드러난다. 인물들의 설정이 진부하니 그들의 갈등과 화해, 협력도 예상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배우들은 제 역할을 해낼 뿐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영화가 내세운 캐릭터라는 장점이 장점으로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아이러니를 맛보는 것이다. 



4. 영화의 유일한 장점이 퇴색되었으니 나머지 부분들이 매력적일 리는 만무하다. 드라마와의 연계점이 크지 않아서 처음 보더라도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그러나 이는 곧 장르물이었던 원작의 매력을 버렸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영화의 빈약한 플롯은 통쾌함, 시원함, 퇴폐미라는 영화 콘셉트의 발목을 끝내 잡고 놔주지 않는다. 스토리 전개와 유머를 위해서 영화적 허용 우연을 남발하며 개연성도 희생한다. 교통사고에서 경찰과 교도관이 전부 죽는 와중에 범죄자들은 모두 살아남거나, 후반부에서 단 한 번도 소개되지 않았던 인물이 갑자기 등장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또한 팀이 만들어지는 경위, 탈옥의 발생, 범죄자를 잡는 과정, 시시한 유며, 속편을 위한 떡밥 등 그저 흥미를 끌 자극적인 요소들이 플롯 곳곳에 포함됐지만 이를 일관된 톤으로 엮는 연출도 부족하다. 


마지막으로 비빌 언덕인 액션도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공간이나 독특한 배경에서 독창적인 액션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흔하디 흔한 어느 공장 부지에서 싸울 뿐이다. 편집이 단순하다 보니 그저 맞고 때리고 아파할 뿐 액션의 강약이나 리듬감이 전무하다. 마동석의 존재감은 액션 시퀀스 전체에서 아무런 서스펜스가 느껴지지 않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심지어 마동석의 이미지를 핑계로 액션씬의 디테일은 포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인물들의 능력을 잘 살리지도 못한다. 특히 곽노순의 경우 액션 시퀀스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다. 특히 후반부 액션 시퀀스는 작중 전체적인 흐름이나 연출 면에서 <극한직업>과 유사한 부분이 눈에 띄는데, 덜 웃기고 덜 창의적이면서 덜 통쾌하다. 



5. 근래 추석 시즌을 비롯해 성수기에 개봉하는 작품들을 보면 정해진 틀 안에서 예상 가능한 재미를 주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웃음과 액션, 약간의 감동과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통쾌함 정도. 참신하게 느껴질 소재는 있지만 이를 영화화하는 수단이 형식적인 것이다. 그러니 영화들은 각자의 개성을 지닌 작품보다는 전부 공업화된 상품처럼 보이고, 유사한 영화들을 접하는 관객들의 피로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나쁜 녀석들: 더 무비> 역시 좋은 소재와 훌륭한 배우들이 투입된 영화다. 하지만 영화가 담고자 한 재미와 주제가 안일했던 결과 영화의 완성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드라마와 영화 간의 연계를 통한 새로운 제작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이 위안이지 않을까. 추석 시즌의 승자가 되기는 했으나, 그 뒷맛은 찝찝한 영화 <나쁜 녀석들: 더 무비>다. 



D(Dreadful, 끔찍한)

한국판 <수어사이드 스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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