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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oDAY Feb 16. 2019

한 우물만 파면 뭐든 된다

<극한직업> 리뷰

한 우물만 파면 뭐든 된다

1. 코미디 영화라는 장르는 '희극'이라는 문학 장르로부터 비롯되었다. 초기 영화가 연극을 그대로 영상화한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코미디 혹은 희극은 평균 이하의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며, 그 형태로는 주인공이 주로 행복한 엔딩을 맞으며 끝이 좋은 패턴을 가지는 것과 웃음 그 자체에 주목하는 2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그리고 희극에는 전형적인 인물상이 등장하며, 관객들은 그 인물들과 자신들을 비교하며 감정이입할 수 있고 또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극한직업>은 이러한 희극의 정의와 특징, 2가지 유형 모두에 가장 잘 부합하는 영화이며 그렇기에 이 작품은 예상을 뒤엎는 흥행을 기록할 수 있었다.  



2. 그간 만들어진 한국의 코미디 영화는 <7번 방의 선물>과 같이 위의 설명과는 대부분 어긋나는, '선 웃음 후 눈물'의 신파극 형태가 많았다. 단지 코미디 영화뿐 아니라, 다른 장르의 영화들도 한국영화는 그 장체가 장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무슨 장르의 영화를 찍든 간에 가족과 연인 간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가 핵심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극한직업>은 그 궤에서 벗어나 단 1% 신파도 허용하지 않고, 철저히 코미디 외길만을 걸어간다. 작중 유머 또한 기존의 한국영화들과 다르다. 슬랩스틱 같은 기본적인 코미디도 눈에 띄지만, 주인공들의 상황을 역으로 꺾는 유머도 인상적이다. 왜냐하면 이는 한국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지나치게 성적이거나 폭력적인 유머와는 거리가 멀기에 작품의 차별성을 강조할 수도 있고, 희극이라는 작품의 정체성을 강화할 수도 있는 좋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슬픈 사연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극한직업>은 주인공들의 사연마저도 다시 한번 유머의 소재로 활용하면서 코미디 외의 선택지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경찰서 내에서 평균 이하의 실적을 내는 직원들이고, 월급과 퇴직금, 적금에 경제적 기반이 달려있는 서민들이다. 관객들은 그들에게 자연히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으며, 극 중 그들의 삶과 자신들의 삶을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상황을 비꼬며 삽입된 유머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곱씹어 보면 다소 씁쓸할 수도 있는)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으며, 결말부는 자신들의 현실을 웃음으로 씻어주는 카타르시스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병헌 감독의 장편영화 필모그래피를 보면 이는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그는 <스물>과 <바람바람바람>, <극한직업>까지 코미디 영화만을 만들어왔으며 이 작품들은 신파가 전혀 없는 작품들이다. 한국영화의 법칙에서는 다소 벗어난, 그러나 계속된 도전을 통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놀라운 결과물이 <극한직업>이었던 셈이다. 



3. <극한직업>이 작품 내적으로는 우스운 인물들을 활용한 뚝심 있는 코미디의 향연으로 가득한 희극이라면, 외적으로는 현시대를 비판하는 풍자극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의 증가, 취업난의 심화 등으로 인해서 폭등한 자영업자들의 모습은 치킨 집을 인수해 잠복하는 경찰들의 모습으로 작품에 등장한다. 최근에 <백종원의 골목식당>으로 대표되는 맛집 프로그램을 둘러싼 여러 논란은 '수원 왕갈비 통닭'이 유명세를 얻어 프랜차이즈로 확대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이러한 프랜차이즈화의 과정은 전통적인 미디어와 SNS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자연스럽게 품어냈다. 시의 적절하게(?) 터져버린 클럽 버닝 썬 논란은 작중 등장하는 마약사건과 자연히 연관된다. 될 놈은 된다는 느낌일까. 그렇기에 <극한직업>은 현실의 불편함을 유머를 통해 비판하는 풍자극이기도 한 것이다. 



4. <극한직업>은 이외에도 많은 장점을 지닌 영화다. 전체적으로 빠른 호흡을 일관되게 유지해 코미디의 역량을 최대화 한 점이나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개성적인 캐릭터들을 구축한 것, 그리고 기대 이상으로 뛰어난 액션씬의 퀄리티는 장점이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 존재한다. 편집에 있어서 씬과 씬 사이가 편집점이 다소 길어서 영화의 리듬이 깨지는 문제가 있다. 촬영에 있어서는 거칠게 말해 무작정 카메라만 들이밀고 찍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상이 거칠다. 코미디 영화에서 개연성을 논하는 게 무의미하기는 하지만, 등장인물들을 보면 그들이 정말 억세게 운이 좋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기분 좋은 웃음이 모든 것을 덮어주니 아무래도 괜찮기는 하지만, 결국 <극한직업>의 성공이 영화 내적으로 아주 뛰어나기 때문은 아닌 셈이다. 



5. <극한직업>의 성공은 작년부터 이어 온 영화 관객들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는 흐름이다. 작년 한국 영화들의 흐름을 보면, 100억 이상의 투자가 이루어진 대작 영화보다는 장르적 재미에 충실한 <마녀>, <너의 결혼식>, <암수살인>, <완벽한 타인> 같은 작품들이 성공을 거둔 경우가 많다. 외화 중에서도 <보헤미안 랩소디>와 같은 전혀 예상치 못한 흥행작이 탄생하기도 했다. 이는 관객들이 스타 캐스팅과 신파극으로 가득한 기시감 넘치는 한국 영화들을 거부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한국 영화들이 흥행과 관련한 새로운 트렌드를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극한직업> 또한 장르적 본분과 재미에 충실한 '소품'으로 때마침 관객들의 변화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극한직업>은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 관객들의 요구에 완벽히 응답한 모범적인 장르 영화다. 



A (Acceptable 무난함)

충무로가 본받아야 할, 흥행 '당한' 모범적인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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